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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호정의 왜 음악인가

무료 체험이 끝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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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김호정 기자 중앙일보 기자
김호정 문화팀 기자

김호정 문화팀 기자

많은 것이 처음에는 공짜다. 영화·드라마를 볼 수 있는 서비스, 음악·책을 듣고 볼 수 있는 사이트가 한 달은 무료 이용권을 준다. 어느 날 불현듯 카드 사용 문자가 날아오면 안다. 무료 체험에는 늘 끝이 있다.

올 상반기는 공연 감상의 행사기간이었다. 코로나19로 온라인에 신기한 세상이 열렸다. 카라얀이 지휘하는 베를린필 영상이 공짜가 됐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는 오페라 전막을 매일 하나씩 무료로 공개했다. 이후 온라인에 무료 공연을 올리지 않는 공연단체나 공연장을 찾기가 더 힘들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문체부는 아예 공연단체들의 온라인 공연을 한 곳에서 볼 수 있도록 플랫폼까지 열었다. 이 중 유료 공연은 없었다.

이제 돈을 낼 시간이다. 코로나19가 길어지면서 무료 공연은 칼날이 돼 공연 단체를 정면으로 겨누고 있다. 인건비, 공연 제작비 등 지출은 그대로이고 여기에 영상화 비용을 추가해 만든 무대들이다. 이걸 반년 이상 무료로 제공할 여력이 있는 곳은 없다.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단체들이 먼저 유료화의 총대를 멨다. 120년 된 음반사 도이치 그라모폰은 쟁쟁한 연주자들의 공연을 제공하는 유료 사이트를 5월 만들었다. 공연마다 8.9~12.9 유로(약 1만2000~1만7000원) 정도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는 인기 많은 성악가 12명을 추려 독창회를 만든다. 티켓 값은 20달러(약 2만4000원)다.

무관중으로 녹화해 온라인 상영하는 공연 현장. [연합뉴스]

무관중으로 녹화해 온라인 상영하는 공연 현장. [연합뉴스]

유료화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 요건이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피터 겔브 총감독은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수익화가 시급하다. 공연 셧다운으로 1억 달러(약 1200억원) 손실을 봐서 음악가를 비롯한 스태프들이 무급 휴직 상태”라고 했다. 유료화의 수익금은 이들의 고용 유지에 쓰인다.

문제는 우리가 돈을 낼 준비가 돼 있는가다. 원래 유료였으면 몰라도 무료였던 것에 새삼 지갑을 여는 일은 쉽지 않다. 호주의 한 매체는 “무료였던 온라인 뉴스가 유료화를 위해 얼마나 힘들게 투쟁하는지 공연계가 참고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해결할 일은 한둘이 아니다. 기술적으로는 제대로 된 과금 시스템이 없다시피 하고, 예술 콘텐트의 촬영과 연출 노하우도 부족하다. 하지만 더 큰 벽은 심리적 저항이다. 설득력을 갖춘 유료화 논리가 있어야 한다.

얼마 전 국내에서도 공연 유료화에 대한 시도가 있어 결과를 살펴봤다. 온라인으로 생중계된 공연은 누구나 볼 수 있고 원하는 사람만 기부 형식으로 돈을 내는 방식이었다.

온라인 청중에 대한 일종의 심리 테스트였다고 본다. 총 8000명 넘게 시청했는데 100여명이 평균 1만1000원씩을 냈다고 한다. 굉장히 의미 있는 시도였지만 갈 길이 멀다.

김호정 문화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