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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만에 불발된 그린벨트 카드…부처도 당청도 제각각이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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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대통령이 20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대통령이 20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20일 서울시 그린벨트 해제 백지화를 선언했다. 정세균 국무총리와의 주례회동에서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은 미래세대를 위해 해제하지 않고 계속 보존해 나가기로 했다”고 결정했다고 이날 총리실이 발표했다. 그린벨트 해제 카드가 등장하고 2주간 청와대와 정부, 여당은 중구난방 엇박자를 내며 부동산 시장 혼란을 키워왔다. 부랴부랴 수습책을 내놓았지만 원점으로 돌아갔을 뿐 당초 제기된 서울 주택 공급 확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기(起)=6일 이해찬

당초 그린벨트 해제 추진에 앞장섰던 건 ‘부동산 민심’에 놀란 더불어민주당이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6일 당 고위전락회의에서 “획기적인 공급 확대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비공개 회의에선 그린벨트 해제 주장도 나왔다고 한다. 하지만 같은 날 박 전 시장은 서울시 기자간담회에서 “그린벨트는 미래 세대를 위해 남겨놔야 할 보물과 같은 곳”이라고 말했다.

13일 오전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의 영결식이 열리는 가운데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조사를 하고 있다. [현장풀]

13일 오전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의 영결식이 열리는 가운데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조사를 하고 있다. [현장풀]

이틀 뒤(8일) 이 대표와 박 전 시장은 비공개 회동했다. 마음 급한 민주당은 일단 그린벨트 해제 공론화에 돌입했다. 7·10 후속대책 초안에 ‘여의도 면적 10배’, ‘그린벨트 해제’ 등 문구를 넣기로 내부 논의를 마쳤었다고 한다.

승(承)=9일 박원순

박 전 시장의 사망 소식은 그린벨트 해제 추진에 제동을 걸었다. 민주당 핵심관계자는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원래 7월 9일 (고위당·정·청) 논의 때 ‘그린벨트 등 공급대책’이 들어가 있었는데 박 전 시장이 갑자기 그렇게 되면서 10일 발표에서 그걸 뺐다”고 말했다. 박 전 시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자마자 고인이 반대했던 그린벨트 해제를 추진하는 건 난감하다는 설명이었다.

시장 유고 상태에서 서울시와 추가 논의는 막혔다. 민주당 정책위 관계자는 “실무적으로 (그린벨트 해제를) 진척시킬 수 없는 상태다. 서울시는 이전 정책을 바꾸기 어려워하며 ‘우리는 기존 안대로 갈 수밖에 없다’고만 한다”고 말했다.

그린벨트 둘러싼 난맥상 일지.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린벨트 둘러싼 난맥상 일지.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전(轉)=14일 홍남기·김현미

박 전 시장 장례식(13일) 직후엔 혼란이 더 가중됐다. 14일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그린벨트 문제를 점검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고 했는데 같은날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라디오에서 “공급은 부족하지 않다”고 했다.

다음날(15일)엔 정부 부처 세 곳이 입장 발표를 통해 자기들끼리 찬반 공개 논쟁을 벌였다. 기재부·국토부에 서울시까지 가세해 “검토한다”, “아니다” 중구난방 메시지를 내 시장 혼란을 가중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10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6·17 부동산 정책 후속 대책 발표 브리핑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왼쪽은 홍남기 경제부총리. [연합뉴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10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6·17 부동산 정책 후속 대책 발표 브리핑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왼쪽은 홍남기 경제부총리. [연합뉴스]

이와 관련 총리실 관계자는 통화에서 “정세균 총리가 17일 김현미 국토부 장관과 김용범 기재부 1차관을 불러 해제 시 정책 실효성 논란, 투기과열 등 부작용 우려 등을 총리가 직접 설명했다”고 말했다.

수수방관하던 청와대도 숟가락을 얹는 듯했다. 김상조 정책실장은 17일 “당정이 (해제 검토 쪽으로) 의견을 정리했다”며 그린벨트 해제에 무게를 싣는 듯했다. 하지만 18일엔 민주당 대표 출신인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그린벨트를 풀어서는 안 된다”며 혼란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결(結)=20일 정세균

여권내 ‘아무말 대잔치’에 정 총리는 진화에 나섰다. 19일 KBS에 나와 “그린벨트는 훼손 후 복원이 안 된다”고 말한 뒤 오후 경제상황점검회의에서 “중구난방, 백가쟁명식으로 나가면 정책 신뢰만 떨어진다”고 지적했다고 한다. 정 총리는 이날 저녁 민주당 지도부가 참석한 고위 당·정·청 회의에서도 같은 당부를 반복했다. 한 참석자는 “당에서도 특별히 해제론을 고집하며 반대 주장을 펴지 않았다”고 했다.

민주당에서는 그사이 이재명·이낙연·김부겸 등 차기 권력 주자들이 ‘신중론’에 힘을 실었다. 이 지사는 20일 라디오에 출연해 “그린벨트를 풀어 아파트를 공급하게 되면 사상 최대 로또가 돼 투기 광풍이 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8일 “해제 여지가 있는 곳이라면 (서울시가) 내놓을 수 있겠다”고 했던 이낙연 의원도 이날 “그린벨트를 손대는 것은 극도로 신중해야 한다”고 선회했다. 김부겸 의원 역시 “그린벨트는 최후의 보루”라고 했다. 당권·대권 재편을 앞둔 민주당 의원들 여론은 현 지도부보다 이들과 함께 움직였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2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서해5도지원위원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정세균 국무총리가 2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서해5도지원위원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대통령은 원래 그린벨트 해제가 내키지 않는다는 입장이었다”, “총리는 한 번 훼손되면 돌이킬 수 없는 것을 손대선 안 된다는 신념이 확고하다.” 이날 그린벨트 해제 백지화 발표 직후 복수의 당·정 고위관계자들에게선 이런 말이 나왔다. ‘개발보다 보전’이라는 가치 고수 프레임으로 논란을 매듭지으려는 모습이다.

공은 다시 국토부에 넘어갔다. 민주당 일각서 “고밀도 개발과 재개발·재건축 조건 완화”(노웅래 의원) 주장이 나오는데 이 역시 우려 목소리가 적지 않은 상황이다. 국토위 소속 한 의원은 “이제 정부가 행정력을 갖고 풀어나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날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는 홍남기·김현미 장관과 구윤철 국무조정실장, 이호승 청와대 경제수석 등이 관계장관회의(녹실회의)를 열었다.

심새롬·김효성 기자 saer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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