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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손해용의 시시각각

당신의 사모펀드는 안녕하십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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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손해용 기자 중앙일보 경제부장
손해용 경제에디터

손해용 경제에디터

경기도에서 중견기업을 운영하는 A씨(77)는 지금은 환매가 중단된 디스커버리펀드에 총 90억여원을 투자했다. 45년간 회사를 일구며 평생 모은 돈이다. 그는 당초 원금 손실 가능성이 없는 국채에 투자하려 했지만, 오랜 기간 거래해 온 기업은행 지점의 ‘확실한 안전장치가 확보돼 있다’는 권유에 마음을 바꿨다고 했다. 이 펀드는 현재 원금의 3분의 2 이상을 날릴 위기에 처했다.

자료에는 ‘매우 높은 위험’이라고 나와 있는데도 은행은 이를 알리지 않았다. 미국 현지 운용사에 문제가 생겼는데도 추가로 펀드를 팔았다. 스트레스에 암수술까지 받은 A씨는 금융감독원에 탄원서를 넣었다. “잠깐 눈을 붙여도 억울함에 눈이 번쩍 떠진다. 차라리 뭐가 잘못됐다고 하면 수긍이라도 하겠는데 억울해서 복장이 터진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

사모펀드 환매 중단 피해 사례가 계속 터지고 있다. 확인된 환매 중단 펀드만 22개고, 판매 규모는 5조6000억원에 이른다. 라임·옵티머스·디스커버리 등 사고 펀드에 계속 회자되는 인물은 공교롭게도 모두 여권 관계자다. 권력형 비리 의혹까지 나온다. 금융당국이 뒤늦게 전수조사를 하겠다고 나섰지만 전형적인 ‘사후 약방문’이다.

이 사태는 펀드 운용사의 사기·편법·불법이 곪아터진 것이다. 기본적으로 운용사 잘못이 가장 크다. 하지만 판매사와 금융당국도 책임을 면하기 힘들다. 결과론적이지만 2015년 금융위원회가 최소투자금액 기준을 5억원에서 1억원으로 낮추는 등 규제완화 조치를 내놓은 것이 발단이다.

환매 중단된 주요 사모펀드 판매 규모.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환매 중단된 주요 사모펀드 판매 규모.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시장이 커지자 은행·증권사 등 판매사들은 검증도 제대로 하지 않고 경쟁적으로 사모펀드를 팔았다. 일반 공모펀드를 팔면 수수료를 0.3% 정도 받지만, 사모펀드를 팔면 1%를 얻는다. 실적을 위해 만기를 6개월 단위로 쪼개 시리즈로 팔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예금만큼 안전한 상품’이라고 고객을 속이고, 금융을 잘 모르는 80~90대 노인이 가입하며, 고객의 투자 성향이 ‘안전추구형’에서 ‘적극투자형’으로 둔갑하는 등의 꼼수가 판을 쳤다. 금융당국은 이런 도덕적 해이를 인지하지 못했다. 금융위는 감독을 소홀히 한 금융감독원을 탓하고, 금감원은 금융위가 만든 제도 탓을 한다. 서로 손가락질만 하는 형국이다.

손해를 본 책임은 투자자 스스로 지는 게 원칙이다. 다만 전제가 있다. 판매사가 손실 가능성과 상품 구조를 제대로 설명했다는 가정하에서다. 금융상품에 대한 정보에 있어 압도적인 우위에 있는 판매사가 이를 숨기거나 왜곡했다면 문제가 된다. 바로 불완전 판매다. 오랜 기간 경제부처·금융권을 출입하며 금융상품에 대한 이해력이 제법 된다고 생각하는 기자도 요즘 나오는 상품은 낯설기만 하다. 일반 투자자들은 오죽할까. 감언이설을 앞세운 판매사의 무책임한 투자 권유와 미비한 금융보호시스템이 대형 사고를 일으켰다.

기대수명이 길어지면서 노후 대비 자금마련은 필수가 됐다. 하지만 은행 예금금리는 연 1%대다. 한 푼이라도 더 많은 수익을 기대하고 전문가에게 운용을 맡기는 이가 늘 것이다. 사모펀드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한 이유다.

수익 구조가 복잡하고 손실 위험이 큰 펀드는 판매사와 대등한 정보·협상력을 가진 투자자만 투자하도록 제한해야 한다. 벨기에·노르웨이에선 수익 구조가 복잡해 불완전 판매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 금융상품은 아예 개인투자자에게 판매를 금지하고 있다(박래수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 자료).

불완전 판매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미국은 판매사가 정보를 충분히 주지 않고 손해를 입힌 경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으로 간주해 징계한다. 영국은 광고와 권유를 동일한 행위로 간주해 피해자를 구제하고 있다는 점도 참조할 만하다.

손해용 경제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