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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남정호의 시시각각

‘트럼프 올인 외교’의 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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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호
남정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남정호 논설위원

남정호 논설위원

오는 22일은 11월 3일 미국 대선을 딱 100일 앞둔 날. 지금 판세는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10%포인트 이상 따돌린 상황이다. 1940년 이래 현직 대통령이 나선 미 대선은 모두 13번. 이들 선거를 통틀어 독립기념일(7월 4일) 무렵의 여론조사에서 50% 이상의 지지율을 얻은 후보가 진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요즘 바이든은 대부분의 조사에서 50% 선을 넘기고 있다. 이변이 없는 한 바이든이 이길 거라는 얘기다.

바이든 당선 시 북·미 일괄타결 난망 #트럼프 패색 짙으면 북 도발할 수도 #민주 캠프 측과 활발한 소통 시급해

외교 전문가인 바이든이 집권하면 동맹을 강화하면서 북한에 대해 ‘전략적 인내’ 정책을 다시 펼 게 거의 틀림없다. 부통령으로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외교정책을 도왔던 그였기에 그때의 대북전략을 이어가지 않겠는가. 실제로 지난 1월 바이든은 민주당 후보 토론에서 “전제조건 없이는 김정은과 만나지 않겠다”고 못 박았다. 비핵화 등에 대한 구체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북·미 정상회담은 없다는 말이다.

이렇게 되면 당장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이 결정타를 맞게 된다. 문재인 외교의 특징은 뭘까. 올인, 그것도 ‘북한 올인’이다. 어떻게든 남북 교류의 물꼬를 터 한반도에 평화가 깃들게 하겠다는 게 최고의 목표요 관심사다. 이런 터라 모든 외교력을 여기에 쏟아붓고 있다. 이는 지난 3일 통일부 장관에 이인영 의원, 국가안보실장에 서훈 국정원장, 그리고 국정원장에 박지원 전 의원 등 대화론자들이 대북 정책 핵심 포스트를 죄다 차지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대미 외교의 초점 역시 트럼프를 설득해 대북 제재를 푸는 데 맞춰진 것도 당연한 일이다.

현 정부가 추구하는 해법은 김정은-트럼프 간 ‘빅딜’에 의한 일괄타결 방식이다. 두 사람 모두 톱다운(top-down)식 의사 결정 스타일이라 정상끼리 합의만 하면 일사천리로 일이 풀릴 거로 현 정부는 기대한다.

하지만 올인 전략엔 태생적 한계가 있는 법. 모든 판돈을 거는 승부인지라 여기에서 실패하면 대책이 없다. 지금처럼 트럼프에 올인하다 11월 대선에서 바이든이 이기면 김정은-트럼프 간 빅딜 방식도 말짱 헛일이다. 문 정부가 대선 전 북·미 정상회담 개최에 목을 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 정치판에는 ‘10월의 충격(October Surprise)’이라는 선거전략이 있다. 11월 대선 승리를 위해 10월에 선거판을 흔들 깜짝 이벤트를 선보이는 거다. 갈수록 힘들어질 트럼프로서는 이변을 기다리기보다 스스로 만들어내야 할 처지에 몰렸다. 10월께 북·미 정상회담이 열릴 수 있다고 문 정부가 기대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하지만 여기엔 위험한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트럼프의 패색이 짙어지면 북한이 정상회담에 응하기는커녕 10월께 도발할 수도 있다. 그래야 바이든이 대통령이 된 뒤에 북한 문제에 관심을 기울일 거라고 여기는 탓이다. 북한이 도발하게 되면 미 본토를 직접 위협할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실험이 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문가들은 본다. 어떤 형태로든 도발이 이뤄지면 트럼프는 큰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다.

그럼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가장 절실한 일이라면 이제라도 바이든 캠프 인사들과 소통하고 인맥을 다지는 거다. 4년 전 트럼프가 당선된 뒤 그쪽 인맥과 선이 닿는 국내 인사들을 못 찾아 발을 동동 구르던 일이 지금도 생생하다. 이런 와중에 지난 6월 북한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자 이도훈 한반도교섭본부장이 부랴부랴 미국을 찾았다. 5개월 만이라고 한다. 코로나19 때문이라지만 앞으로도 한·미 간의 직접 접촉은 사라지고 화상통화 정도에 그친다면 큰일이 아닐 수 없다. 어느 세월에 바이든 쪽과 대북 정책을 조율할 수 있겠는가.

워싱턴 정가에 밝은 한 미국 전문가는 이렇게 한탄한다. “코로나에도 불구하고 요즘 워싱턴 양당 대선 캠프 주변엔 미국 인사들보다 외국인들이 더 복작거린다”고.

남정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