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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한 사과의 부재가 혼돈을 야기한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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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김정기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김정기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지금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즉시 대피하시기 바랍니다. 엘리베이터를 타지 말고 계단을 이용하기 바랍니다.” 요란한 사이렌 소리음과 함께 실내방송이 반복되었다. 베란다로 가서 창문을 열고 아파트의 아래쪽과 위쪽을 살펴보았다. 반대쪽으로도 가서 밖을 살폈지만 화재 연기는 보이지 않았다. 상당 시간이 지나간 후에 기기 오작동으로 방송이 잘못 나갔다고 했다. 다른 설명은 없었다.

진정한 사과가 선행되어야 #2차 가해 악순환 막을 수 있어 #허망한 정쟁의 대상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거울로 삼아야

몇 주 뒤에 화재경보 방송이 또 울렸다. 또다시 창을 열고 불길이 솟는지 살핀 것은 동일했다. 방송이 아주 오랫동안 계속되니 마음이 다급해졌다. 우선적으로 챙겨야 할 것을 궁리하다가 작업 중이던 성적산출 자료를 책가방에 넣었다. 통화 중 신호에 속을 태우다가 어렵게 관리소 근무자와 연결되었다.

“원인을 잘 모르겠다. 공사 때문에 발생할 수 있다.”

“그럼 빨리 알아보고 조처를 해야 하지 않느냐.”

그 법석 중에 경보방송이 멈추었다. 이런 해프닝이 되풀이되면 정말 화재가 났을 때 대피를 하지 않아서 주민이 다치는 큰 재난이 발생할 수 있다고 읍소했다. 늑대가 나타났다고 마을 사람들에게 거짓말 장난을 일삼다 정작 늑대가 나타났을 때 도움을 못 받고 기르던 양을 모두 죽게 한 양치기 소년의 우화를 예로 들었다. 관리소장에게 주민의 불안감을 알리고 대처방안을 의논하고 주민들에게 알려달라고 요청했다. 한참 뒤에 “인테리어 공사 중에 전선을 잘못 건드려서 화재경보방송이 나갔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딱 거기까지였다. 주민들을 놀라게 하여 죄송하다는 말도, 앞으로 어떻게 관리하겠다는 내용도 없었다. 사과가 부재한 방송은 오히려 미래에 대한 불안감만 증폭했다. 서로 물어본 건 아니지만 나 자신과 아내와 주민들도 안전하게 살고 싶을진대 앞으로 화재경보 방송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저러다가 멈출 터이니 그냥 무시하면 되는 것인지, 계단으로 뛰어나가야 하는 것인지…….

소통카페 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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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인 3종경기의 유망주 선수가 감독, 팀 닥터, 선배 선수의 가학행위에 시달리다가 자살하고 말았다. 인생의 절정기에서 20대 젊은이는 인면수심의 폭력을 대한체육회, 도 체육회, 경주시, 국가인권위원회 등에 6차례나 진정하며 자신의 사정을 제발 좀 들어달라고 몸부림을 쳤다. 그러나 계속되는 외면을 겪고 한 줌의 재가 된 것이다.

그 억울한 죽음을 앞에 두고 가해자들은 처음에는 그런 일이 없고 사과할 일도 없다고 했다. 사과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행위다. 인간이 짐승과 다른 동물인 것은 양심과 공감이 작동하여 사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잘못에 대해 용서를 구하고 책임을 지고 재발방지책을 담은 진정한 사과는 좋은 관계로 돌아갈 수 있는 치유의 힘을 지닌다. 임시변통이 아닌 시의적절하고 진정한 사과는 그래서 귀중한 가치를 지닌다.

온 나라가 박원순 서울시장의 죽음을 둘러싸고 혼란스럽다. 사건이 발생하고 일주일이 넘도록 서울시와 집권여당의 확실한 사과의 부재가 문제였다. 서울시의 지각 기자회견은 상식적인 의문에 대한 답변도 준비하지 않은 상태였다. 거리에 내건 현수막 “님의 뜻을 기리겠습니다”는 “모두에게 죄송하다”는 유서와는 동떨어진 것이었다. 민관합동조사단을 구성해 진상을 밝히겠다는 발표는 조사의 대상인 서울시가 조사의 주체가 된다는 점에서 적절치 않다. 분명한 사과가 선행되어야 2차 가해자, 극단론자, 기회주의자들이 피해자를 모독하고 대한민국의 도덕성과 정의를 퇴행의 나락으로 몰아가는 것을 멈출 수 있다.

인간 박원순에게는 명과 암의 두 개 사실이 존재한다. 좋은 사실은 대한민국의 보통사람과 여성의 권리와 복지를 신장시키려고 애쓴 것이고, 나쁜 사실은 누구보다도 도덕적 사고, 도덕적 의지, 도덕적 행위의 일치(『실천이성비판』, 칸트)를 주창하던 그가 사고와 행동의 불일치인 미투의 피해를 노정한 것이다. 이 모순은 안타깝지만 이미 역사가 되었다. 내 편과 네 편으로 갈라져 한쪽의 사실로 다른 쪽의 사실을 덮거나 가리려고 하면 이 비극은 그저 또 하나의 비극으로 그치고 말 것이다. 박 시장의 죽음의 의미를 정쟁에 부침하는 모호함으로 끝내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해 들여다보는 거울로 삼아야 한다.

김정기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