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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3개월 앞두고 트럼프 "주한미군 감축" 테이블에 올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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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국방부가 백악관에 주한미군 감축 옵션을 보고했다는 내용이 공개된 이튿날 18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버지니아 스털링의 트럼프 내셔널 클럽에서 골프를 치고 있다. [EPA=연합뉴스]

미 국방부가 백악관에 주한미군 감축 옵션을 보고했다는 내용이 공개된 이튿날 18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버지니아 스털링의 트럼프 내셔널 클럽에서 골프를 치고 있다. [EPA=연합뉴스]

미국 국방부가 18일(현지시간) 백악관에 주한미군 감축 옵션을 보고한 데 대해 "우리는 세계 전력 배치를 통상적으로 재검토한다"라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방위비 분담에 관해선 명확한 입장"이라고 재차 강조하면서다.

WSJ "펜타곤, 주한미군 감축 옵션 보고" #국방부, "세계 전력 배치 통상적 재검토" #"대통령은 방위비 분담금엔 일관된 입장" #대선 전 13억 달러 받아내겠다는 압박 #재선 위기 엄포일지, 실행할지 예측 불가

주한미군 감축 옵션까지 방위비 분담금(SMA) 협상 테이블에 올라와 있음을 기정사실로 한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 위기에 몰린 상황에서 단순한 협상용 엄포로 그칠지, 실제 결정으로 이어질지 예측 불가능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전날인 17일 "펜타곤이 트럼프 대통령의 방위비 분담금 대폭 인상 요구로 한·미가 갈등을 빚는 가운데 여러 개 주한미군 감축 옵션들을 백악관에 보고했다"고 보도했다. 지난 3월 이미 아프가니스탄·독일 외에 주한미군 감축 옵션을 마련해 보고했고 트럼프 대통령이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신문은 같은 날 사설을 통해 "두어 달 전 트럼프 대통령의 한국 등 3국에서 미군 철수 추진에 대해 들었을 당시 미 관리들은 '탈레반과 평화협상을 통해 감축을 진행 중인 아프가니스탄이 초점'이라고 했지만 오판이었다"고 취재 과정도 공개했다.

2020년 2월 24일(현지시간) 미 워싱턴 펜타곤에서 정경두 국방장관(오른쪽)과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왼쪽)이 한미 국방장관 회담 이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정효식 특파원]

2020년 2월 24일(현지시간) 미 워싱턴 펜타곤에서 정경두 국방장관(오른쪽)과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왼쪽)이 한미 국방장관 회담 이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정효식 특파원]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달 6일 트럼프 대통령이 주독 미군 9500명 감축을 지시했다고 특종 보도했다. 열흘 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방위비를 더 낼 때까지 주독 미군을 2만5000명으로 줄이겠다"고 확인하면서 "독일 얘기 만이 아니다"라고 한국을 겨냥한 예고까지 했다.

미 국방부 관리는 이날 중앙일보에 "언론의 추측에 관해 언급하지는 않겠지만 우리는 통상적으로 세계 미군 배치 태세를 재검토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 군대는 어떤 위협에 대해서도 대응태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주한미군 감축 옵션이 한·미 방위비 분담금(SMA)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진 데 따라 마련된 것인지에는 "대통령은 방위비 분담금에 관한 한 분명하고 일관된 입장"이라고 답했다.

한·미는 지난해 대비 13%를 인상하는 5개년 안(한국)과 2020년 분담금 13억 달러 1년 안(미국)을 서로 최종 제안이라고 제시한 뒤 협상을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을 포함해 미 국방부·합참은 지난해부터 주한미군 감축 연계설은 수차례 공개적으로 부인해왔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그래픽=김주원 기자

그러다가 주한미군 감축안까지 검토 중이라고 언론에 흘린 뒤 "통상적 검토"라고 한 건 미국 대선을 3개월 앞두고 분위기가 급변한 셈이다. 고위 소식통은 "결정하기 전 검토 단계에서 한국 정부와 협의하거나 통보할 의무가 없다"고 했다. 하이노 클린크 동아시아 방위담담 부차관보는 지난달 말 한국전쟁 70주년 본지 기고에서 "한국은 미국과 진정으로 동등한 파트너"라며 "동등한 파트너는 동등한 역할과 더불어 동등한 책임과 비용도 부담해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국무부 국제안보 차관을 지낸 토머스 컨트리맨 군축협회 회장은 본지에 "트럼프 대통령의 주한미군 감축 위협은 미군은 후하게 돈을 받는 용병이며, 한국과 다른 동맹은 무임승차자라는 그의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당연히 이번 위협은 협상의 지렛대를 얻겠다는 의도인 동시에 선거용"이라고 해석했다. "지금 시기 행정부의 모든 움직임은 선거운동 하나에만 전념하는 대통령에 영향을 받는다"고 하면서다.

그는 "이것이 트럼프의 단순한 엄포로 끝날지, 실행할지를 예측하는 건 불가능하다"면서도 "주한미군 규모를 줄이는 어떤 조치도 미 의회의 강력한 반발을 살 것"이라고 단언했다.

미 국방부가 지난해 12월 23일 한국 특수전사령부와 주한미군의 근접전투 훈련 사진 12장을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사진은 주한미군 군산공군기지 훈련 모습. [미국 국방부 홈페이지 캡처=연합뉴스]

미 국방부가 지난해 12월 23일 한국 특수전사령부와 주한미군의 근접전투 훈련 사진 12장을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사진은 주한미군 군산공군기지 훈련 모습. [미국 국방부 홈페이지 캡처=연합뉴스]

벤 새스 공화당 상원의원은 성명을 내고 "이 정도의 전략적 무능은 (주한미군 철수를 공약한) 지미 카터급 약체"라며 "우리가 한국의 복지를 위해 미사일체계를 배치한 게 아니며 미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군대와 무기를 두는 것인데 그게 왜 이해하기 어렵냐"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우리 목표는 중국 공산당 지도부와 북한 주민을 폭압하는 핵 미치광이가 우리를 건들기 전에 무언가 생각할 거리를 주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월스트리트저널도 "이번 주한미군 감축안 누설이 얼마만큼 협상용 엄포인지 알 수 없지만 지난해 탈레반의 캠프 데이비드 방문 안을 언론에 띄운 이래 최악의 국가안보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현행 2020년 국방수권법과 지난달 상원 군사위원회를 통과한 2021년 국방수권법안은 지역 안보를 훼손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증하지 않는 한 2만 8500명인 현 수준 이하 미군 감축을 위해 예산을 쓸 수 없게 하고 있다. 불과 3개월 앞둔 미 대선 전에 실제 감축을 밀어붙이기 힘든 이유다. 또한 주한미군지위협정 등도 한반도에서 미군의 대규모 이동은 우리 정부와 협의하도록 하고 있다.

수전 손턴 전 국무부 아태차관보도 "나는 이를 협상용 지렛대로 평가하며, 병력의 주요 변화는 대선 이전에 실행할 수 없을 것이라고 거의 확신한다"라고 말했다.

빅터 차 전략국제연구소 한국석좌는 이와 관련,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다면 한국, 일본, 독일 등에서 병력을 철수할 것으로 생각한다"며 "그는 미군 해외주둔이 가치가 있다고 보지 않으며, 그것이 미국의 힘의 투사에 중요하다고도 생각하지 않으며, 오직 다른 나라 방어를 위해 미국에 초래된 비용으로만 여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는 초등학교 3학년생이 국제관계를 이해하는 단순한 시각"이라고 했다.

워싱턴=정효식 특파원 jjp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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