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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한 낙연씨, 경쾌한 부겸씨…'2인 2색' 민주당 당권 레이스

중앙일보

입력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 후보들의 초반 유세전이 뜨겁다.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사망 사건으로 잠시 주춤했지만 오는 20, 21일 후보자 등록을 앞두고 전당대회 분위기가 다시 달아올라서다. 이낙연 의원과 김부겸 전 의원의 초반 동선으로 ‘2인 2색’ 선거 전략을 살펴봤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왼쪽) 의원과 김부겸 전 의원이 지난 15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창립 50주년 기념행사에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왼쪽) 의원과 김부겸 전 의원이 지난 15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창립 50주년 기념행사에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톱다운(Top-Down) vs 바텀업(Bottom-Up) 

지난 7일 당권 도전을 선언한 이 의원의 열흘 간 행보를 요약하면 당내 세력 구축을 위한 ‘악수 정치’다. 이 의원은 지난 13일 서울 여의도 모처에서 당내 주한 미8군 한국군지원단(KATUSA·카투사) 출신을 포함한 의원 10여명과 만찬 회동을 했다. 자신도 카투사 출신인 이 의원이 후배들을 모아 밥을 샀다고 한다. 민주당 한 의원은 “최근 이 의원이 언론인·카투사 출신 등 여러 콘셉트로 의원들을 두루 만나 접촉면을 넓히고 있다”고 했다.

이 의원은 이달 초에도 수도권 중진 의원이 주선한 한 만찬 자리에 참석해 의원들을 여럿 만났다. 동료 의원들이 모이는 자리면 빠짐없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 의원의 공식 일정만 봐도 8일 2개, 9일 1개, 14일 4개씩 후배 의원실 주최 토론회 참석 일정이 잡혀 있었다. 그는 17일 오전에도 토론회 두 군데를 돌며 의원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당내 세력이 취약하단 평가를 받는 그로써는 각 지역·분야별 조직을 보유한 의원들을 만나는 게 효율적인 선거운동이 될 수 있다. 이 의원 측 관계자는 “전국 순회를 시작하기 전까진 당분간 의원 공부모임이나 행사에 참석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의원과 이상민 의원이 지난 1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국회세종의사당 건립을 위한 정책 토론회에서 악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의원과 이상민 의원이 지난 1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국회세종의사당 건립을 위한 정책 토론회에서 악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의원(가운데), 이미경 코이카 이사장(오른쪽), 전혜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코로나19 감염병 대유행과 KOICA(코이카) 보건 ODA 방향 토론회에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뉴스1]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의원(가운데), 이미경 코이카 이사장(오른쪽), 전혜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코로나19 감염병 대유행과 KOICA(코이카) 보건 ODA 방향 토론회에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뉴스1]

광주→전북→서울→울산→충남→충북→대전→경남→경북. 김부겸 전 의원의 최근 열흘 간 동선이다. 박 전 시장의 장례 기간을 제외하곤 지역 여론을 좌우하는 기자·당원을 두루 만났다. 김 전 의원은 지난 9일 당대표 출마 선언 전부터 경쟁자(이낙연)의 지역 기반인 호남부터 돌며 바람잡기에 나섰다. 18일에는 경남 김해 봉하마을을 방문, 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했다.

김 전 의원의 출마 회견 분위기는 이틀 전 이 의원 캠프와 확연히 달랐다. 이 의원이 설훈(5선)·오영훈·최인호(이상 재선) 의원 등을 대동한 반면, 김 전 의견은 현역 의원을 대동하지 않았다. 김교흥·박재호(이상 재선)·고영인·이해식(이상 초선) 의원 등이 이미 공개적으로 그를 돕고 있지만, 세 과시 없이 ‘밑바닥 당심’에 호소하려는 전략을 반영한 풍경이다. 이를 두고 민주당 당직자는 “열린우리당 시절부터 김부겸의 전국 조직으로 자라 온 지지자 모임 ‘새희망포럼’이 있어 가능한 전략”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3월 19일 이낙연 당시 국무총리(앞줄)가 국회 본회의장에서 대정부질문 전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뒤쪽으로 김부겸(오른쪽) 당시 행정안전부 장관, 박상기(가운데) 당시 법무부 장관, 조명균 당시 통일부 장관(오른쪽부터)이 대화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지난해 3월 19일 이낙연 당시 국무총리(앞줄)가 국회 본회의장에서 대정부질문 전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뒤쪽으로 김부겸(오른쪽) 당시 행정안전부 장관, 박상기(가운데) 당시 법무부 장관, 조명균 당시 통일부 장관(오른쪽부터)이 대화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신중 vs 경쾌

이 의원은 출마 선언 전 측근들과 “민주당은 모든 역량을 결집한 최선의 태세로 위기를 이겨내야 합니다. 저도 열외일 수 없습니다”라는 출마선언문 대목을 두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고 한다. 이 의원 측 관계자는 “한 의원이 ‘열외’보다는 ‘예외’라는 단어가 더 대중적이라는 견해를 냈는데, 이 의원은 의미상 더 알맞다는 이유로 ‘열외’를 고집했다”고 전했다. 단어 하나하나에 신중한 이 의원 스타일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화다.

이 의원은 지난 14일 박 전 시장 성추행 의혹에 대한 입장을 묻는 기자들에게 “때가 되면 나도 할 말을 하겠다”며 말을 아꼈다. 그러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공개 입장을 내자 그 역시 2시간 뒤 페이스북에 정제된 입장문을 올렸다. 과거 국무총리 시절에도 국회 대정부질의 등에서 짧고 정제된 답변으로 ‘사이다 총리’라는 별칭을 얻은 그다. 익명을 원한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말을 아끼는 건 이 의원의 자산이지만, 한편으론 정치인으로서의 매력을 떨어뜨릴 수 있는 ‘양날의 칼’과 같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출마를 선언한 김부겸 전 의원이 16일 충북 청주시 문화제조창에서 워킹맘들과 간담회를 갖고 있다. [뉴스1]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출마를 선언한 김부겸 전 의원이 16일 충북 청주시 문화제조창에서 워킹맘들과 간담회를 갖고 있다. [뉴스1]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전 의원이 17일 오전 대전시의회 브리핑룸에서 기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있다. [뉴스1]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전 의원이 17일 오전 대전시의회 브리핑룸에서 기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있다. [뉴스1]

김 전 의원은 상대적으로 발언을 주저하지 않는다. 그는 박 전 시장 성추행 의혹에 대해 지난 14일 김택수 대변인을 통해 “객관적 사실 확인 및 재발 방지를 위한 진상규명은 필요하다. ‘서울시 인권위원회(위원장 한상희)’의 조사가 한 방법”이라고 논평했다. 이 대표의 직접 사과(15일)보다 하루 빠른 대처였다. 내년 보궐선거 공천에 대해서도 활발히 의견을 개진했다. 그는 출마 회견 때 부산 보궐선거 후보 공천 문제를 두고 “(귀책사유가 있을 때 무공천을 원칙으로 한다는)당헌은 지켜져야 한다. 국민과의 약속 자체가 편의에 따라 해석돼선 안 된다”고 했지만 닷새 뒤 “당원들이 당헌을 바꾸더라도 후보를 내야 한다고 한다면 국민의 양해를 구하고 그렇게 할 것”이라고 입장을 바꿨다. 박 전 시장 사망이라는 변수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모습이다.

‘사고’도 있었다. 김 전 의원은 지난 16일 충북도청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KTX세종역 신설은 (충북이) 양해해야 한다. 세종역이 들어섬으로써 충북이 위축된다는 건 지나친 걱정이고 광역적 시각으로 봐야한다”고 말해 일부 충북도민들의 반발을 샀다. 논란이 가중되자 그는 지난 17일 “대단히 부적절하고 충북도민에게 상처를 드리는 표현이었다”고 사과했다.

당 안팎에선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서울대 복학생이던 김 전 의원이 서울대 아크로폴리스 광장 1만여명 앞에서 했다는 연설을 회상하는 사람들이 많다. “탁월한 대중 연설 능력”(수도권 중진)이 그의 강점 중 하나로 꼽힌다. 다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라 비대면으로 치러지는 이번 전당대회에선 현장 연설로 기대할 수 있는 ‘컨벤션 효과’에 한계가 있을 거란 예측이 나온다. 수도권 3선 의원은 “김 전 의원이 대중 연설로 마음을 휘어잡는 능력을 발휘하지 못해 답답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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