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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글로벌 아이

53 대 27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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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박성훈 기자 중앙일보 베이징특파원
박성훈 베이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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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보안법 시행 첫날인 지난 1일 한 중국 기사가 눈길을 끌었다. 세계 53개 국가가 보안법을 지지했다는 중국 외교부 발표였다. 이날 UN 인권이사회에서 쿠바가 대표로 공동 지지문을 낭독했다는 것이다. 한국에선 27개국이 보안법에 반대 성명을 냈다는 기사가 나오고 있었다. 순간 어떤 나라가 동참했는지 궁금해졌다. 이들이야말로 중국의 우방 아닌가. UN 홈페이지를 찾아봤다.

보안법 지지국 중 최다는 가봉, 수단, 소말리아 등 아프리카 국가였다. 25곳(47%)으로 거의 절반이었다. 그리고 미국과 대립하고 있는 이란, 이라크 등 중동 국가 11곳(21%), 아시아에선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네팔, 파키스탄, 스리랑카에 북한까지 7개 나라(13%)가 지지에 동참했다. 대부분 중국의 글로벌 확장 정책인 일대일로(一帶一路) 협력 국가들이다. 나머진 쿠바와 태평양 섬나라들. 정작 러시아는 없었고 지지했다는 53개국 중 하나는 중국이었다.

글로벌아이 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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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영국 등’의 보안법 반대 27개 국가 중 20곳은 유럽이었다. 중국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일본,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가 이름을 올렸고 나머지 세 나라는 팔라우, 마셜제도, 벨리즈다. 보안법은 중국의 외교 전선(戰線)의 리트머스 시험지였다.

중국은 최근 사방에서 국제 갈등을 겪고 있다. 미국은 무역 관세, 신장·위구르 인권 탄압, 홍콩 보안법을 문제 삼아 중국을 압박하고 있다. 일본은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에 자국 주소를 명기해 중국의 심기를 건드렸다. 인도와는 국경 분쟁이 벌어져 사상자까지 나왔다. 미국이 재점화시킨 남중국해 문제는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영유권 요구로 확산되고 있다. 영국과 캐나다는 화웨이 문제로, 호주와 뉴질랜드는 코로나19로 중국과 사사건건 맞섰다.

중국 외교부가 편할 리 없다. 왕이 외교부장은 인도 외교장관과 국경 분쟁 문제를 풀기가 무섭게 남중국해 문제로 필리핀 외무장관과 잇따라 회담을 열었다. 중국 외교관들이 소셜미디어나 언론을 통해 전방위로 응전하는 ‘전랑(戰狼) 외교’도 이런 상황과 무관치 않다.

그런 중국 정부가 한국에 가장 먼저 양국 간 전세기 운항을 허가했다. 지난 12일 주 3회 운항에서 주 10회로 항공기를 증편해 준 것도 미국에 이어 우리나라가 두 번째였다. 지린성 창춘에선 한·중 국제 협력 시범지구도 첫발을 내디뎠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시기가 불투명해졌지만, 시진핑 주석 방한을 계기로 한·중 관계에 새로운 협력의 장이 열릴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중국의 위기가, 한국엔 기회다.

박성훈 베이징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