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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X자식"→두번 사과···'이해찬 반전' 與도 박원순 거리두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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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과 관련해 15일 “피해 호소인이 겪는 고통에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이런 상황에 대해 민주당 대표로서 통절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이날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피해자 입장에서 진상규명을 하는 게 당연하다”며 이같이 사과했다. 그러면서 “당으로서는 아시다시피 고인의 부재로 인해 현실적으로 진상조사가 어렵다는 점을 이해해주길 바란다”며 “피해 호소인의 뜻에 따라 서울시가 사건 경위를 철저히 밝혀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진상조사의 주체를 당이나 정부가 아닌 서울시로 한정했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대신 민주당은 ▶서울시의 박 전 시장 성추행 의혹 사건 진상 규명에 협조하고 ▶성인지 교육 강화를 위한 당규 개정과 피해자 보호를 위한 입법 등 재발 방지 대책을 수립하는 한편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에 대한 성(性)비위 관련 전수 점검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 대표가 이날 직접 사과한 건 박 전 시장이 피소된 뒤 7일 만이자, 박 전 시장의 5일장(葬)이 끝난 지 이틀 만이다. 앞서 이 대표는 지난 10일 박 전 시장의 빈소를 찾아 조문한 뒤 박 전 시장의 의혹에 대한 당의 대응 계획을 묻는 기자에게 “XX 자식”이라며 험한 말을 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0일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조문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불쾌감을 표시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0일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조문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불쾌감을 표시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박 전 시장의 장례가 끝난 지난 13일 피해자가 입장문을 내고, 피해자 측 법률대리인이 피해 내용을 일부 공개하자 이 대표는 같은날 오후 당 고위전략회의 직후 사과의 뜻을 나타냈다. 다만 강훈식 당 수석대변인을 통한 ‘대리 사과’였다. 결국 박 전 시장과 관련된 이 대표의 발언은 불쾌(10일)→대리사과(13일)→직접사과(15일)로 바뀐 것이다. 미래통합당은 즉각 “등 떠밀려 나온 이해찬 대표의 사과는 안하니만 못한 변명에 불과했다”(김은혜 대변인)고 꼬집었다.

당초 민주당에선 박 전 시장 보호 기류가 역력했다. “고인은 죽음으로 당신이 그리던 미투 처리 전범을 몸소 실천했다”(윤준병 민주당 의원) “피해를 호소하는 분의 피해와 박 시장이 가해자라고 하는 점을 기정사실화하는 건 사자(死者) 명예훼손”(진성준 민주당 의원) 등이었다.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목소리는 박용진 의원 등 당내 비주류 등 소수였다.

13일 오전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영결식이 열리는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헌화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13일 오전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영결식이 열리는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헌화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하지만 여론은 차가웠다. 리얼미터가 오마이뉴스 의뢰로 지난 14일 박 전 시장 성추행 의혹 진상조사 필요성을 여론조사한 결과 ‘조사가 필요하다’는 응답은 64.4%, ‘조사가 필요하지 않다’는 응답은 29.1%였다. 친여 시민단체도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사건에 대한 철저한 진상 규명과 피해자 보호를 촉구한다”(민변) “피해자가 요구하는 객관적이고 철저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참여연대)며 돌아섰다.

민주당 권리당원 게시판에도 “맞을 매라면 빨리 맞자. 진상은 밝히고 의혹이 있으면 깨끗이 털어내고 가자” “감추고 포장하려 급급하면 오히려 더 썩어들어갈 뿐이다. 인정할 건 인정하고, 사죄할 건 사죄하고, 고쳐야 할 건 고치자” 등의 글이 올라왔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 발인이 엄수된 지난 13일 오후 경남 창녕군 박 시장 생가에 영정사진이 들어오고 있다. [뉴스1]

박원순 전 서울시장 발인이 엄수된 지난 13일 오후 경남 창녕군 박 시장 생가에 영정사진이 들어오고 있다. [뉴스1]

그러자 당권 주자부터 서서히 톤이 달라졌다. 김부겸 전 의원은 14일 김택수 대변인 명의의 논평을 통해 “현 상태에서 섣불리 얘기하면 한편으로는 고소인에 대한 2차 가해가, 다른 한편으론 사자 명예훼손이 될 수 있다”면서도 “객관적 사실 확인 및 재발 방지를 위한 진상규명은 필요하다고 본다”고 했다. 이어 같은 날 오후 ‘민주당 여성 의원 일동’ 명의의 진상조사를 촉구하는 입장문도 나왔다.

이처럼 여권 기류가 진상규명 쪽으로 확 기울자 일각에선 “박 전 시장과 거리두기에 나선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이에 대해 민주당 핵심 당직자는 “이날 사과는 외부로부터 떠밀렸다기보다는 이 대표 자신이 최근 분위기 속에서 정무적인 판단을 한 것”이라며 “사과의 수위나 시점과 관련해서는 당 고위전략회의에서 숙의를 거쳤다”고 전했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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