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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한다면서…피해자를 "피해 호소인"이라 부른 이해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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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과 관련해 15일 “당 대표로서 너무 참담하고 국민께 뭐라 드릴 말씀이 없다. 다시 한번 국민 여러분께 송구하단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국민께 큰 실망을 드리고 행정 공백이 발생한 데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굳은표정으로 마스크를 벗고 있다.  [뉴스1]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굳은표정으로 마스크를 벗고 있다. [뉴스1]

이 대표는 박 전 시장을 고소한 피해자에 대해선 ‘피해 호소인’이라고 표현하며 “피해 호소인이 겪는 고통에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이런 상황에 대해 민주당 대표로서 통절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그는 “민주당은 피해자 중심주의를 견고하게 지켜왔다”며 “이 사안도 마찬가지로 피해자 입장에서 진상규명을 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당으로서는 아시다시피 고인의 부재로 인해 현실적으로 진상조사가 어렵다는 점을 이해해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 대표는 이어 “피해 호소인의 뜻에 따라 서울시가 사건 경위를 철저히 밝혀주길 바란다”며 “피해 호소인에 대한 근거 없는 비난을 멈추고 당사자의 고통을 정쟁과 여론몰이 수단으로 활용하지 않을 것을 다시 한번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그는 당 차원의 재발 방지 대책 마련 계획도 밝혔다. “민주당은 당 소속 공직자의 부적절한 행동을 차단하고 기강을 세울 특단의 조치를 마련하겠다. 당 구성원을 대상으로 성인지 교육을 강화할 수 있도록 당규를 개정하겠다”면서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10일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조문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불쾌감을 표시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10일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조문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불쾌감을 표시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이 대표는 이날 회의에서 ‘송구’ ‘통절한 사과’ ‘깊은 사과’라는 표현을 동원해 총 세 차례 사과했다. 사과의 대상은 ‘국민’ ‘이런 상황’이었다. 피해자에 대해선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만 했다. 고개는 숙이지 않았고, 미리 준비된 원고를 읽었다. 이 대표가 이날 직접 사과한 건 박 전 시장이 피소된 뒤 7일 만이자, 박 전 시장의 5일장(葬)이 끝난 지 이틀 만이다. 앞서 이 대표는 지난 13일 당 고위전략회의 직후 강훈식 당 수석대변인을 통해 짤막한 ‘대리 사과’를 했었다.

이 대표는 지난 10일 박 전 시장의 빈소를 찾아 조문한 뒤 박 전 시장의 의혹에 대한 당의 대응 계획을 묻는 기자에게 “그건 예의가 아니다”라며 “XX자식”이라고 말한 것에 대해선 별도로 사과하지 않았다. 한국기자협회는 지난 13일 “기자의 질문에 사적 감정을 개입시켜 과격한 언행으로 대응하는 것은 분명 적절치 못한 처사였다”며 사과를 촉구했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의원(왼쪽)과 김부겸 전 의원이 지난 10일 박원순 서울시장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찾았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의원(왼쪽)과 김부겸 전 의원이 지난 10일 박원순 서울시장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찾았다. [연합뉴스]

이 대표의 공개 사과로 당내 기류도 확연히 바뀔 전망이다. 일단 당 대표 후보가 어떤 입장을 낼지 주목된다. 이낙연 의원은 전날 취재진과 문답에서 “당에서 정리된 입장을 곧 낼 것으로 안다”며 “시기가 되면 나도 할 말을 하겠다”고 말했다. 김부겸 전 의원은 전날 라디오 인터뷰와 대변인 논평 등을 통해 “함부로 예단해서 답변하기는 어렵다”면서도 “객관적 진상규명을 위한 서울시 인권위원회 조사가 한 방법”(김택수 대변인)이라고 했다.

한편, 민주당의 여성 몫 최고위원이자 당 젠더폭력대책TF위원장인 남인순 의원도 이날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올해 부산에 이어 서울의 민주당 광역자치단체장에게 성희롱·성추행이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돼 민주당에 상심했을 국민과 피해호소인, 여성인권을 위해 노력하는 여성단체들에 진심으로 송구하고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민주당 소속 지자체장의 성비위와 부정 비리를 일제 점검할 기구를 마련하겠다”고 덧붙였다. 다만 이날 이 대표도, 남 최고위원도 박 전 시장을 거명하지 않았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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