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출혈환자 음주운전자로 방치해 사망

중앙일보

입력

운전중 뇌출혈을 일으켜 의식을 잃은채 운전석에 앉아 쓰러져 있던 운전자를 경찰이 만취 음주운전자로 판단, 경찰서 맨바닥에 방치하다 숨지게 한 사건이 발생해 물의를 빚고 있다.

지난 16일 오전 4시20분께 서울 강북구 삼양 4거리에서 차를 몰고 귀가하던 권모(41.재단사.서울 성북구 하월곡동)씨는 정지신호를 받고 도로 2차로중 1차로 건널목앞에 정차해있던중 갑자기 구토를 하고 의식을 잃었다.

112 신고를 받고 출동한 종암경찰서 미아4파출소 노모경사 등은 사고지점이 관할이 아니라는 이유로 인근 북부경찰서 삼양파출소로 넘겼으며 의식을 잃은 권씨는 오전 5시30분이 돼서야 북부서 사고조사반으로 연행됐다.

경찰은 그러나 권씨가 의식을 차리지 못하자 만취 음주운전자로 간주, 의식이 깨어나면 음주측정을 하겠다는 생각으로 권씨를 사고조사반 콘크리트 맨바닥에 앉혀 벽쪽에 기대게 한 뒤 방치했다.

경찰은 소식을 듣고 찾아온 부인 이모(29)씨가 '남편은 술을 못한다. 병원으로 빨리 옮겨야 한다'고 항의하자 최초 신고후 거의 3시간이 지난 이날 오전 7시10분께 권씨를 인근 대한병원 응급실로 옮겼으나 사흘뒤인 19일 오후 6시께 끝내 사망했다.

부인 이씨는 '경찰은 남편을 음주운전자로 간주했는데 설사 음주운전을 했어도 의식을 잃었을 정도의 상황이면 병원부터 갔어야하는 것 아니냐'며 '가족들이 경찰서에 도착해 남편을 병원으로 옮겨야 한다고 30분이상이나 말했는데도 경찰은 눈하나 깜짝 안했다'고 주장했다.

담당 전문의는 '권씨는 병원 도착 당시 뇌출혈 상태로 전혀 손 쓸 방도가 없었다'며 'CT 촬영결과 권씨는 뇌혈관이 기형이었고 운전도중에 혈관이 터진 것으로 보이며 의식을 잃은뒤 곧바로 병원에 왔으면 생존할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은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경찰측은 '차내에 토한 흔적 등으로 봐서 음주운전으로만 판단했고, 권씨가 의식을 잃고 인사불성인 상태라 의자에서 떨어질까봐 경찰서 바닥에 앉혀 뒀다'며 '향후 지방청 및 자체 감찰을 통해 관련자를 문책하고 유족과 합의해 돕는 방안을 적극 강구하겠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상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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