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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반만에 최고점…국영 매체 끌고 밀레니얼 세대 미는 ‘시진핑 증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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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경기 회복 기대감이 커지면서 중국 본토와 홍콩 주가가 크게 오르고 있다.[AFP=연합뉴스]

경기 회복 기대감이 커지면서 중국 본토와 홍콩 주가가 크게 오르고 있다.[AFP=연합뉴스]

일확천금에 대한 기대는 눈을 멀게 한다. 뼈아픈 추락의 기억도 손쉽게 지워버린다. 5년 전 대폭락의 충격을 잊고 다시 달아오르는 중국 주식시장 이야기다.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는 9일에도 오름세를 이어갔다. 이날 상하이 지수는 전날보다 1.39% 오른 3450.59에 장을 마쳤다. 2018년 2월 이후 2년6개월여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상하이 증시는 지난달 30일 이후 9일 연속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이달 들어 15.61% 상승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이달 들어 7일간 늘어난 시가총액만 1조 달러(약 1196조원)에 달한다.

시장에 다시 ‘황소(강세장)’가 찾아오자 몰려드는 것은 투자자다. 중국 본토 증시의 거래량은 8일까지 사흘 연속 1조5000억 위안(약 257조원)을 훌쩍 넘어섰다. 주식 투자를 위한 계좌 개설도 늘어나고, 돈을 빌려 주식을 사들이는 신용 잔고도 빠르게 치솟고 있다. 증시 과열을 위한 여건이 착착 퍼즐을 맞춰가는 모양새다.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하듯 모건 스탠리는 주가 전망을 2015년의 최고점보다 29% 더 높은 수준으로 상향 조정했다고 블룸버그는 보도했다. 전국적으로 늘어나는 주식 계좌 수에 따른 추산이란 설명이다.

동학 개미운동처럼 젊은층 가세 

중국 증시의 온도를 높이고 있는 것은 이른바 밀레니얼 세대인 바링허우(80後ㆍ80년대생)와 주링허우(90後ㆍ90년대생) 같은 젊은층이다. 정보기술(IT)기기를 활용한 정보력을 앞세워 모바일앱 투자 플랫폼을 활용한 이들이 빠른 손바꿈에 나서면서 거래량도 늘어나고 있다.

한국의 ‘동학개미운동’과 미국의 ‘로빈후드 랠리’와 닮은 꼴이다. 로빈후드는 2013년 미국에서 등장한 주식거래 애플리케이션으로 지난해 600만명 수준이었던 고객 수는 지난 5월말 기준 1300만명으로 늘면서 미국 증시의 활황을 이끌고 있다.

젊은 투자자의 가세 속 투자자를 끌어들이는 중국 증시의 매력 요인은 싼값이다. 블룸버그는 “투자자 입장에서 중국 증시가 달아오르던 2014년 여름과 지금의 가장 큰 차이점은 저평가된 주가”라며 “5년 전보다 적은 돈으로 투자할 수 있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기업공개(IPO) 제도의 간소화와 일부 주식에 대한 일일 가격 제한폭 상향 조정과 같은 제도 개선 방침도 투자자에게는 반가운 소식이다.

여기에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도 얼어붙은 투자심리를 녹이는 훈풍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달 말 발표된 중국의 6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ㆍ50.9)는 4개월 연속 ‘경기 확장’ 추이를 이어갔다. 특히 세부항목 중 생산지수(53.9)와 신규주문지수(51.4)가 상승하며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에는 파란불이 켜졌다.

5월 28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전인대 폐막식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리커창 총리가 홍콩 국가보안법 결의를 표결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5월 28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전인대 폐막식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리커창 총리가 홍콩 국가보안법 결의를 표결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그렇지만 이런 모든 것보다 주식 시장의 흐름을 결정하는 핵심 요인이 있다. 중국 정부의 의중이다. 최근의 분위기만 보면 강세장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내수 활성화를 위해 증시를 불쏘시개로 활용하려는 중국 정부가 주가 상승을 부추기고 있서다. 이른바 ‘시진핑(習近平) 장세’다.

문남중 대신증권 글로벌 전략가는 최근 보고서에서 “중국 정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망가진 공급망 회복을 통한 수출 장려보다 내수 확대를 통한 경기 부양에 주력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내수 확대를 위해 국가 차원에서 국채 발행으로 재원을 마련하기보다, 증시 부양을 통해 민간의 소비 여력을 높이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는 분석이다.

코로나19 방역에 성공한 국가로 이미지 개선을 하고 싶은 중국 정부 입장에서 주식 시장 강세를 경기 회복과 관련한 대외 과시용 카드로 쓰고 싶어한다는 시각도 나온다.

미국 증시에는 Fed, 중국 증시에는 관영 매체 

괜한 분석이 아니다. 환구시보와 중국증권보 등 중국의 관영 매체가 일제히 강세장을 대서특필하며 투자를 자극하고 있기 때문이다. 피터 부크바르 블락리자문그룹 최고투자전략가는 CNBC와의 인터뷰에서 “우리에게 증시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연방준비제도(Fed)가 있다면, 중국에는 국영 매체가 있다”고 지적할 정도다.

시장을 부양하고 싶은 중국 정부와 밀레니얼 세대를 중심으로 시장에 뛰어든 투자자, 시장에 넘쳐 흐르는 유동성은 모두 주가를 끌어올릴 동력으로만 비친다.

그럼에도 투자자가 꽃길만 걷기에는 넘어야 할 장애물 투성이다. 무역 이슈를 포함한 미국과의 갈등이 첨예해지고 있는 데다 홍콩 국가보안법을 둘러싼 충돌도 피할 수 없다. 게다가 대선을 앞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지율 회복을 위해 ‘중국 때리기’에 박차를 가하면 경제 회복세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

코로나19에 이어 신종 돼지독감 바이러스와 흑사병 등 잇따르는 감염병과 지난 6월 이후 남부지방을 휩쓰는 대홍수 등 자연재해로 인해 경제 회복에 제동이 걸릴 수도 있다. 중국 정부가 경기부양을 위해 올해 6조 위안이 넘는 재정을 쏟아붓겠다고 했지만 그 효과는 아직 가늠할 수 없다.

여기에 ‘국가주도 강세장’이 비극으로 치달았던 역사적 트라우마도 있다. 2015년 6월 상하이 증시가 5100까지 치솟으며 사상 최고 행진을 이어가기 6개월 전부터 중국 사회과학원과 국영 매체는 강세장 전망을 잇달아 쏟아내며 투자 심리에 기름을 부었다. 하지만 끝을 알 수 없을 듯 치솟던 주가는 3개월 만에 2000대로 고꾸라졌고, 시장에서는 5조 달러(약 5978조원)가 공중으로 사라졌다.

마크 윌리암스 캐피탈 이코노믹스 아시아 책임 이코노미스트는 CNBC와의 인터뷰에서 “2015년 폭등장에서도 똑같이 봤듯, 정책 당국자가 국영 매체 등을 이용해 시장에 불을 붙인 오랜 역사가 있다”며 “그 끝은 언제나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현옥 기자 hyuno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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