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쓸 데도 없고, 투자처도 없고…가계 여유자금 67조 역대 최대

중앙일보

입력

올해 1분기 가계의 여유자금이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지갑을 닫으면서다. 금리가 낮은 데다 부동산마저 규제에 막히면서 마땅히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한 영향도 있다. 반면 기업과 정부의 쪼들리는 살림살이도 확인됐다.

서울 중구 롯데마트 서울역점에 동행세일을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뉴스1

서울 중구 롯데마트 서울역점에 동행세일을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뉴스1

한국은행이 9일 ‘2020년 1분기 중 자금순환(잠정)’을 발표했다. 자금순환은 일정 기간 발생한 돈의 흐름을 경제주체와 금융자산별로 기록한 통계다. 이에 따르면 1분기 가계 및 비영리단체의 순자금운용 규모는 66조8000억원으로 전년 동기(27조8000억원)보다 140.3%나 늘었다.

순자금운용은 예금·보험·주식투자 등으로 굴리는 돈(운용자금)에서 빌린 돈(조달자금)을 뺀 금액이다. 이 수치가 양(+)이면 순자금운용, 음(-)이면 순자금조달(net borrowing)이라 지칭한다. 일반적으로 가계는 남는 돈이 더 많고, 기업은 빌린 돈이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난다. 66조8000억원은 통계 작성을 시작한 2008년 이후 최대치다. 쉽게 말해 가계의 여윳돈이 많다는 의미다.

가계 여유자금은 사상 최대인데.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가계 여유자금은 사상 최대인데.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한은 관계자는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2~3월 대면 소비 위축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단기저축성예금 규모가 전년 동기보다 4조원가량 증가한 걸 보면 부동산 등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해 돈을 묶어둔 성격도 있다는 분석이다. 가계 순자금운용 급증을 이끈 또 하나의 원인은 주식 투자다. 지난해 4분기에 비해 기타예금이 15조원 이상 늘었는데 이는 대부분 증권사 계좌 예수금이다. 3월 국내 증시가 급락했을 때 반등을 기대하며 묶어둔 대기자금으로 볼 수 있다.

비금융법인기업의 순자금조달 규모는 28조2000억원이었다. 지난 2009년 1월 34조8000억원 이후 11년 만에 최대 규모다. 1분기 기업의 수익성 악화로 자금조달 규모가 커진 영향이다. 기업의 자금운용 규모는 32조7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28조9000억원보다 증가했는데 자금조달 규모는 60조90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42조9000억원보다 훨씬 많이 늘었다.

기업은 돈 빌리기 바쁘고.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기업은 돈 빌리기 바쁘고.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한은 관계자는 “기업의 수익성 둔화와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한 유동성 확보 노력이 이어지면서 순자금조달 규모가 확대됐다”고 말했다. 한은의 기업경영분석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외감기업 매출액영업이익률은 4.1%로 지난해 1분기(5.3%) 비해 많이 떨어졌다.

정부의 1분기 순자금조달 규모도 사상 최대치인 26조5000억원을 기록했다. 코로나19발 경기 침체 대응의 나선 영향이다. 정부의 자금운용은 예치금, 지분증권 및 투자펀드에 대한 운용 규모가 커지면서 전년 동기(46조5000억원)보다 소폭 확대된 48조2000억원을 기록했다. 반면 자금조달 규모는 국채발행이 늘면서 전년 동기(46조8000원)보다 급증한 74조7000억원을 기록했다.

정부 곳간도 비어간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정부 곳간도 비어간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국외 부문(비거주자)까지 포함한 모든 경제 부문의 총 금융자산은 지난해 4분기보다 306조원 증가한 1경8907조1000억원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국내 비금융부문의 금융자산은 전 분기보다 55조1000억원 감소한 8520조2000억원에 그쳤다. 가계 및 비영리단체(-5조6000억원), 비금융법인기업(-32조2000억원), 일반정부(-17조3000억원) 모두 감소했는데 이는 3월 국내 증시가 폭락하며 평가액이 하락한 영향이다.

장원석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