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박보균 칼럼

‘문재인 6·25의 노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박보균
박보균 기자 중앙일보
박보균 중앙일보 대기자 칼럼니스트

박보균 중앙일보 대기자 칼럼니스트

6·25는 살아 숨 쉰다. 거기에 원한과 성취가 얽혀 있다. 그 행사에 시선이 쏠린다. 그 속에 긴장과 호기심이 담긴다. 정권의 역사의식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6·25전쟁 70주년이다. 그날 서울공항 추념식의 여운과 파장은 길다. 그 속에 감흥과 반감이 교차한다.

기념사에 북한 남침이 빠졌다 #‘원수를 막아내어’로 흐름 반전 #“남북 경쟁 끝났다”는 오판이다 #북한 핵무장으로 체제경쟁 재개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 기조는 평화다. 북한의 남침 이야기가 빠졌다. 그 생략은 우회와 기피의 인상을 준다. 애국가 전주(도입부)는 혼란스럽다. 북한 애국가 악보와 비슷하다는 논란이다.

그런 장면들 속에 극적 반전(反轉)이 준비됐다. 무대 흐름은 바뀌었다. ‘6·25의 노래’ 제창 순서다.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조국을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맨주먹 붉은 피로 원수(怨讐)를 막아내어. 발을 굴러 땅을 치며 의분에 떤 날을.”

‘원수’는 김일성의 북한군이다. 남침은 비겁한 기습이었다. 그것으로 강토가 피로 물들었다. 노랫말은 6·25의 진실을 격렬한 정서로 압축한다. 분노와 복수심이 넘친다. 행사장은 사회자 요청대로다. “모두(참석 300여 명) 일어나 힘차게” 불렀다. TV카메라가 이동한다. 따라 부르는 문 대통령 모습이 잡혔다. 그 노래는 60대 이후 세대의 뇌리에 축적됐다. 그들은 어린 시절부터 배우고 불렀다. 그 기억의 재생일 것이다.

행사 주제는 6·25 전사자 유해 봉환. 비행기(공중급유기 시그너스) 동체는 스크린이다. 미디어 파사드의 시각 효과다. 밤하늘은 검은색 배경이다. 드론이 주제 말(영웅에게)을 그린다. 그것은 탁현민 의전비서관의 솜씨일 것이다.

유해는 북한 땅(북·미 협의)→하와이(한·미 공동감식)를 거쳤다. 무대의 비행기는 유해를 싣고 오지 않았다. 동종의 다른 비행기다. 정부는 그 사유를 방역 때문이라고 한다. 논란은 이어진다. “보여주기 퍼포먼스인가.” 애국가 도입부 편곡의 내막은 규명해야 한다.

트랩은 여정의 끝이다. 유해를 안은 군인들이 내려온다. 윤도현의 ‘늙은 군인의 노래’가 퍼진다. “나 태어난 이 강산에 군인이 되어. ~ 아들아 내 딸들아 서러워 마라. 너희들은 자랑스런 군인의 아들이다.” 노래는 강렬하게 꽂힌다.

감상은 복잡 미묘해진다. 서러운 탄식도 생겨난다. 현실 상황과 뒤틀려서다. 현충일 추념식(6월 6일)에서다. 북한의 ‘천안함 폭침사건’ 유가족은 홀대를 받았다. 그들은 추도식에서 빠졌다. 비난 여론이 쏟아졌다. 정부는 뒤늦게 유가족들을 합류시켰다. 그들은 요구한다. “전사자 자녀들이 이제 성인이 됐다. 자랑스런 군인의 자식이 되게 해 달라.”

문 대통령은 ‘죽은 자’에 대한 의무감을 표출한다. “12만3000 전사자들이 돌아오는 그날까지 포기하지 않고 찾아내겠다.” 그 집념은 ‘산 자’에게도 적용해야 한다. 그들은 북한에 있는 국군포로다. 포로 송환은 절실하다. 그들의 여생은 얼마 남지 않았다.

6·25 이후 70년 세월이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단련됐다. 문 대통령은 이렇게 정리한다. “그것은 투철한 반공정신으로, 우리도 잘살아 보자는 근면함으로, 국민주권과 민주주의 정신으로 다양하게 표출되었다.” 반공은 객관적으로 묘사됐다. 하지만 현실 속 그 어휘는 금기에 가깝다. 반공은 아득해졌다.

문 대통령의 언어는 선언적이다. “남북 간 체제경쟁은 오래전에 끝났다.” 그의 말대로 그것은 ‘한강의 기적’ 덕분이다. 1960~70년대다. 박정희와 김일성의 진검승부가 있었다. 남한은 박정희 대통령의 개방과 수출경제다. 북한은 김일성 주석의 폐쇄와 자력갱생이다. 결과는 박정희의 화려한 압승이다. 김일성의 형편없는 참패다. 자력갱생은 북한을 낙오자로 만들었다.

북한의 반격은 핵무장이다. 국력의 핵심은 군사와 경제력이다. 문 대통령의 ‘체제경쟁 마감론’은 오판과 낙관이다. 그 잣대는 경제력에 치중한다. 하지만 핵무기는 마력의 한 수다. 고약한 마법을 부린다. 남북한 국력 격차가 헝클어졌다. 그것으로 체제경쟁은 재개됐다. 오판은 허술한 어젠다를 낳는다. ‘한반도 운전자론’은 좌절의 운명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핵의 묘미를 즐긴다. 핵무기는 절대반지다. 그 덕분에 미국·중국의 대우를 받는다. 반지를 빼면 어떻게 되나. 젊은 영도자의 국제적 지위는 망가진다. 궁핍한 왕국의 통치자로 전락한다. 그것이 핵을 붙들고 있는 진짜 이유다. 북한의 기본 협상안은 맞바꾸기다. 영변 핵 폐기와 경제제재 풀기다. 북한의 핵·미사일 시설은 여러 군데다. 영변은 그중 하나. 영변은 버리는 카드다. 그 외에 비장의 카드가 많다.

그 때문에 ‘영변 폐기’는 속임수다. 586 집권세력은 북한의 핵 포기를 기대한다. 그런 의식은 ‘지적 빈곤’의 산물이다. 아니면 친북 체질 탓이다.

기념사는 갈망이다. “세계사에서 가장 슬픈 전쟁을 끝내기 위한 노력에 북한도 담대하게 나서 주길 바란다.” 평화는 모순이다. 평화는 평화로 지켜지지 않는다. 평화는 매력이다. 정의로운 평화만이 매력을 발산한다. 핵을 방치한 평화는 고통과 비굴함이다. 문재인 정권의 북한 핵 해법은 재구성돼야 한다. 그것 없는 염원은 아련한 구애다. ‘슬픈 전쟁’은 끝나지 않는다.

박보균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