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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보균 칼럼

진실의 가장 큰 적은 신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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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박보균
박보균 기자 중앙일보
박보균 중앙일보 대기자 칼럼니스트

박보균 중앙일보 대기자 칼럼니스트

외교는 역사관의 투영이다. 미·중 대립은 험악하다. 무역, 홍콩 보안법, 군사력 대치의 총체적 갈등이다. 두 나라는 한국을 압박한다. 문재인 외교는 어느 길인가. 중국과 어울리기는 까다롭다. 기억의 정돈이 선택의 출발이다. 그것은 잘못된 신화, 실패한 가설, 어설픈 예측에서 벗어나기다.

카이로 선언, 잘못된 장제스 신화 #외교적 선택은 역사관의 반영 #호찌민 “중국 들어오면 천년 간다” #중국의 길, 민주화 아닌 역사 복수

우선 대상은 카이로회담(1943년 11월)이다. 선언문에 식민지 조선의 독립 조항이 들어갔다. “임시정부 김구 주석의 요청에 따른 중국 장제스(蔣介石) 총통의 노력 덕분이다.” 그 이야기는 오랜 상식이다. 신화로 격상됐다. 그것은 진실인가. 김구의 요청은 맞다. 장제스 역할은 엄청난 과장이다.

카이로(이집트 수도)에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 장제스가 모였다. 한국 독립은 루스벨트-장 회담의 부수적 의제였다. 장제스의 대만정부(1956년) 기록은 이렇다. “장 총통이 조선의 독립을 허용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미국 국무부의 관련 기록(FRUS·1960년대 비밀 해제)은 반대다. 루스벨트의 지적은 충격이다. “(장제스의) 중국이 만주와 한국의 재점령을 포함한 광범위한 야심을 갖고 있는 것은 의심할 여지 없다.”

회담장에 루스벨트의 아들 엘리엇(무관)이 배석했다. 그의 회고록 (『As He Saw It』)은 결정적이다. “대통령이 일본 점령지에 대해 물었다. 장 총통은 한국 운명에 별로 관심이 없는 듯했다.”

어느 기록이 맞는가. 미국은 연합국 맹주다. 종전 후 국제 질서는 루스벨트의 구상이다. 핵심은 제국주의·식민지 해체다. 한국 독립은 뉴딜정책의 국제판이다. 그 조항의 연출·주연은 루스벨트다. 장제스는 소극적 조연이다. 그해 7월 김구는 장제스에게 부탁했다. 그것은 회담에서 조선 독립 문제의 논의다. 장제스는 실천에 앞장서지 않았다. 그 행태는 김구에 대한 배신이다.

청일전쟁(1894~95년) 패배로 중국은 조선에서 철수했다. 그 상황은 절망적 상실이다. 장제스의 비원(悲願)은 한반도에서의 중국 영향력 부활이다. 신중국 건국자 마오쩌둥(毛澤東)의 야심도 같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중국몽은 그 유지의 계승이다.

존 F 케네디(전 미국 대통령)는 어설픈 신화의 독성을 간파했다. “진실의 가장 큰 적(敵)은 끈질기고, 그럴듯한 신화다.” 장제스의 카이로 신화는 진실의 장애물이다. 그것은 대외정책의 오판을 초래한다. 6자회담의 실패에서 실감난다. 한국은 중국의 선의를 기대했다. 북한 핵무기 개발의 억제 역할이다. 중국의 의도는 교묘했다. 그것은 동북아에서 중화 세력권의 확장이다. 중국은 역사적 숙원 해결에 6자회담을 활용했다. 북한 핵에 대한 중국의 자세는 이중적이다. 질책과 엄호가 섞인다.

올해가 천안문 사건 31주년이다. 그 사건은 중국의 민주화 문제다. 산업화 이후는 민주화다. 대한민국은 그 발전의 극적 성취 사례다. 다수 전문가는 중국 리더십도 한국처럼 갈 것으로 전망했다. 그것은 잘못된 가설, 섣부른 오판이다. 미국도 비슷한 판단착오를 했다. 중국의 목표는 역사의 복수다. 서유럽·미국·일본에 당한 수모 갚기다. 난징조약 이후 중국 근대사는 치욕이다. 중국은 패권의 발톱을 은밀히 키웠다. 도광양회(韜光養晦)는 노회한 기만전술이다.

시진핑의 언어로 발톱이 드러났다. “중국이라는 사자(獅子)는 이미 깨어났다.” 미국은 그 절치부심을 뒤늦게 파악했다. 중국에 대한 미 의회 공세는 초당적이다. 중국의 ‘전랑(戰狼)’ 외교는 자기보다 약한 나라 다루기다. 낭은 이리·늑대다. 중국의 사드 압박은 그 시험대다. 문재인 외교의 친중 편향은 중국에 호기다. 미·중 대결은 진검승부다. 중국은 ‘사자’의 기세로 맞서고 있다.

코로나19로 중국 이미지가 재구성됐다. 디지털 감시와 거대한 통제의 IT 전체주의 면모다. 중국의 오만과 무책임은 다수 한국인을 분노케 했다. 미국의 코로나 사망자는 10만 명을 넘었다. ‘조지 플로이드 사망’은 고질적 어둠이다. 트럼프 집권 이후 흑인 차별은 심해졌다. 한국의 대외정책은 딜레마다. 하지만 국제정치는 냉혹한 힘의 대결이다.

호찌민(胡志明)은 베트남 건국의 아버지다. 그의 지혜는 독특한 상상력을 제공한다. 2차대전 종전 후 프랑스는 베트남에 다시 진주했다. 중국 군대도 들어왔다. 양면의 고통이다. 호찌민의 선택은 역사관의 주입이다. “중국이 베트남 땅에 들어오면 천년을 머문다. 프랑스 식민주의는 죽어가고 있다.” 중국 군대가 먼저 물러갔다. 8년 뒤 프랑스군(디엔비엔푸 패배)이 퇴출됐다.

문재인 외교는 ‘전략적 모호성’에 기댄다. 미·중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그것의 습관적 장기화는 위험하다. 양쪽으로부터 경멸과 무시를 당한다. 노태우 정권의 북방외교 이래 지정학의 노하우가 축적됐다. DJ(김대중 대통령)는 그것을 ‘1동맹·3친선’으로 압축했다. “미국과는 군사동맹을 견고히 하고 중국·일본·러시아와는 친선 체제를 유지한다.” 민주당 회의장에 DJ 사진이 걸려 있다. 그의 말은 유언처럼 꽂힌다. “국내정치는 실수해도 고치면 되지만 외교의 실패는 돌이킬 수 없다.”

박보균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