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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보균 칼럼

‘문재인 사람들’의 626년 만에 수도 옮기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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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박보균
박보균 기자 중앙일보
박보균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박보균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행정수도 완성은 세상 뒤집기다. ‘완성’은 천도(遷都)다. 그 뜻은 도읍지 옮기기다. 왕조시대 도읍은 왕의 거주지다. 완성 뒤 세상은 어떻게 달라지나. 청와대가 서울을 떠난다. 수도 서울은 마감된다. 수도가 통째로 옮겨간다.

행정수도 완성, 세상 뒤집는 ‘천도’ #국가 수호 속 수도의 영광 얻었다 #DJ “천도 불가, 통일 후도 수도 서울” #수도 세종시 되면 부산·인천 퇴보

서울은 ‘한양 천도’로 출발했다. 1394년(태조3년) 조선의 개국 직후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방식은 대못 박기다. “개헌을 해서 수도 이전 규정을 두면 청와대와 국회도 세종시로 이전이 가능하다.” 그럴 경우 ‘대한민국 수도는 세종시’가 된다. 626년 만에 신수도가 등장할 태세다.

도읍지 변경은 거대한 국가 개조다. 파급력은 엄청나다. 그 야망과 속셈은 무엇인가. ‘경험하지 못한 나라 만들기’의 절정인가. 주류 교체의 완결인가. 좌파 영구집권 전략인가. ‘문재인 정권 사람들’의 정권 재창출 구도가 드러난다. 바탕은 ‘호남+충청’을 엮는 거다.

‘행정수도 완성’은 기습적인 의제다. 노림수는 국면전환이다. 성난 집값 민심을 돌리는 거다. ‘행정’의 어감은 교묘하다. 언어의 마취 효과가 퍼진다. 쟁점이 느슨해진다. 기능적으로 짜인다. ‘천도’는 긴박하다. 나라가 뒤집히는 형상이다. 그 말은 대중을 격발시킨다. 여론조사 항목은 고쳐야 한다. ‘행정도시 이전’ 찬반이 아니다. “세종시 천도냐, 서울 고수냐”가 본질이다.

수도의 서사는 장대하다. DJ(김대중 전 대통령)의 통찰은 흥미롭다. “왜 런던인가. 영국의 수도는 중앙이 아닌 남쪽 일각에 있다. 거기에는 침략자 노르만인과의 투쟁과 승리, 프랑스와 마주보는 대척점이라는 의미가 있다. 파리·베를린·모스크바도 적과 싸우는 최전방이다. 베이징·도쿄도 비슷한 개념이다. 역사학자 토인비에 따르면 수도는 국토방위를 위해 짓밟히고 되찾고 하는 피투성이 투쟁 속에서 최고 도시의 영광과 국민의 총애를 얻게 됐다.”

민주당 방안은 역할 분리다. 워싱턴DC(정치·세종시)-뉴욕(경제·서울)의 모방이다. 하지만 수도 워싱턴은 정치 도시로 그치지 않는다. 그곳은 국가 정체성을 보존·생산한다. 워싱턴은 미국의 내전(남북전쟁) 최전선. 남부는 그곳 밑(버지니아주)에서 시작한다. 워싱턴의 독특한 풍광은 남북전쟁 장군들 조각상이다. 동상 배치는 공적 순서다. 1등 공신은 연방 의사당(그랜트)·백악관(셔먼) 앞이다. 북부 승리로 미국은 재통일됐다. 서울은 6·25 승패를 가른 전선이다.

수도는 국가 상징 자산의 정점이다. 나라의 브랜드, 민족의 이미지가 거기에 담겼다. 서울은 장엄한 서사시다. 곡절과 파란, 영욕(榮辱)이 얽힌 드라마다. 그 속에서 대한민국의 정체성·정통성·중심이 확립됐다. 그 때문에 “수도 서울은 오랜 세월 굳어진 국민적 합의와 헌법 관습이다(2004년 헌재 결정문).”

세종시의 역사성은 무엇인가. 그 도시의 가치는 어떻게 기억되는가. 국민 거의가 세종시의 실체를 제대로 모른다. 국민적 토론이 절실하다. 쟁점과 담론의 지평은 확대돼야 한다. 집값 잡기, 균형 발전, 공직자의 출장 낭비 해소에 머물러선 안 된다.

도시의 경쟁력과 평판은 상대적이다. ‘수도 세종시’가 되는 순간 서열은 요동친다. 인천·수원의 옛 수도권 가치는 하락한다. 강원도 춘천·원주, 대구의 타격은 심대하다. 부산의 제2 도시 복원은 쉽지 않다. 이해찬 대표의 언급대로다. 부산은 ‘초라한 도시’로 허덕인다.

DJ는 수도권 과밀 해소, 인구 분산을 주장했다. 하지만 천도와 분리했다. “나의 그런 주장은 천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절대로 그래도 안 될 것이다.” 민주당은 DJ의 교훈을 찬양한다. 하지만 결정적인 대목에서 묵살한다.

이해찬은 서울을 ‘천박한 도시’라고 했다. 그 어휘는 그의 찌푸린 인상과 어울린다. 그는 “센강에 가 보면 프랑스 역사유적이 있다. 한강변에 아파트만 늘어서서, 단가가 얼마···”라고 했다. 비유 자체가 틀렸다. 파리 도심 센강의 폭은 좁다. 서울 청계천의 5~6배 정도다.

서울의 한강은 바다와 같다. 포토맥(워싱턴)·템스(런던)·모스크바(모스크바)·나일(카이로)강은 수도로 흐른다. 그 강들보다 한강이 넓다. 서울의 장래성은 한강처럼 크고 넓다. 서울의 매력은 미래와 과거의 공존·재구성이다.

문재인 정권의 부동산 정책은 실패의 연속이다. 국민적 분노가 고착됐다. 천도 논란은 민심 흐름을 재구성한다. 세종시 아닌 다른 곳 주민들의 불만이 커질 것이다. 새로운 인프라, 균형 개발 요구는 거세질 것이다. 그것으로 국론 분열은 깊어진다. 지역 간 질투와 갈등도 거칠어진다. 공기업·공공기관은 더욱 쪼개져 분산된다.

북한·통일문제는 현 정권의 핵심 정책이다. 세종시 천도는 그것의 역주행이다. DJ는 단언했다. “통일 후도 수도는 서울이 될 것이고, 북한도 이의가 없을 것이다.” 북한 정권의 초기 헌법상(1948년) 수도도 서울이었다. ‘행정수도 완성론’은 제한·절충적이어야 한다. 국회 이전이나 분원 설치 논의로 그쳐야 한다. 천도는 ‘백년대계(大計)’를 뛰어넘는다. 500년, 700년 과제다. 그것은 미래 세대의 운명을 장악한다. ‘문재인 사람들’의 독점 어젠다가 아니다.

박보균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