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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노총, 22년만에 노사정 대타협 참석"…그리고 안 나타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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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노사정 대타협 협약식이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의 불참으로 무산됐다. 서명하지 않은 협약문과 명패만 덩그러니 남은 협약식장 모습. 연합뉴스

1일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노사정 대타협 협약식이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의 불참으로 무산됐다. 서명하지 않은 협약문과 명패만 덩그러니 남은 협약식장 모습. 연합뉴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도 없었지만, 그마저도 밥상이 엎어져 버렸다. 1일 코로나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대타협 불발 '소동'을 거칠게 줄이면 이렇다.

[현장에서]허탕 친 노사정 대화

이날 오전 10시30분 협약 서명을 위해 총리공관에 모였던 노사정 대표들은 김명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위원장이 나타나지 않아 헛걸음했다. 같은 시간 민노총에서는 '야합 중단'을 외치는 조합원들이 김 위원장을 감금하듯 몰아세웠다. 전날까지도 외환위기 이후 22년 만에 민노총이 참여한 노사정 대타협이라며 홍보에 열을 올렸던 정부는 망신살이 뻗쳤다.

총론 수준 합의안에도 타협 안 돼 

정부가 공개한 노사정 대타협안은 총론 수준의 낮은 단계 합의다. 경영계가 주장한 '노동자 임금 인상 자제' 문구도 빠졌고, 노동계가 요구한 '해고 금지'도 포함되지 않았다. '고용유지를 위해 노사가 고통 분담한다' 정도에서 봉합했다. 노사 모두 반대할 이유를 찾기 어려운 안이었다. 경제위기가 오면 고용 안정보다 유연한 해고를 요구해 온 기업의 입장을 감안하면 오히려 노동계에 유리한 표현이 많았다. 그만큼 초안을 만든 정부가 대타협 성사를 위해 민노총의 심기를 많이 고려했다는 의미다.

그런데도 민노총은 해고 금지를 관철하려 해 대타협은 좌초했다. 이 정도 합의안에도 타협이 어렵다면 앞으로 더 논의를 진행한다고 한들 노사정 대타협은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평소 사회적 대타협을 강조하는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한 강연에서 "북한과도 대타협을 시도하는데, 같은 나라 사람끼리 왜 타협이 안 되냐"고 일갈하기도 했다.

정세균 국무총리(오른쪽)와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이 1일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열릴 예정이던 노사정 대타협 협약식이 무산되자 공관을 나오고 있다. 뉴스1

정세균 국무총리(오른쪽)와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이 1일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열릴 예정이던 노사정 대타협 협약식이 무산되자 공관을 나오고 있다. 뉴스1

독일·네덜란드는 어땠나 

노사정 대타협의 모범 국가는 독일과 네덜란드다. 두 나라 대타협 안의 공통점은 노동 유연화다. 2003년부터 2005년까지 시행한 독일 하르츠 개혁은 구직 노력을 해야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근로자 파견 기간 상한을 폐지해 노동을 유연화하고 대신 노동자의 창업을 국가가 보조했다. 그 결과 2005년 11.2%에 달하던 독일의 실업률은 10년이 지나 절반 이하(4.8%)로 떨어졌다.

네덜란드도 1982년 바세나르 협약으로 임금 인상 억제, 일자리 공유, 노동시간 단축 등을 끌어냈다. 비정규직은 정규직과 똑같은 사회안전망 속으로 들어왔고, 정규직도 근무시간 등 고용 조건을 탄력적으로 바꿨다. 네덜란드도 노사정 협약 이후 1990년대 유럽연합이 연평균 2.1% 성장하는 동안 3.1%의 경제 성장을 이뤘다.

반대로 가는 노사정 대타협 

한국은 이들 모범 사례와는 정반대로 가고 있다. 5월20일부터 43일 만에 합의가 이뤄질 것으로 착각한 정부는 노동계를 어르고 달래려고 고용 안정에만 집착했다. 현재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정규직·비정규직 간 노동시장 이중구조, 청년을 위한 신규 일자리 창출력 상실, 재정 일자리 의존 심화 등 당면한 문제를 고민한 흔적이 없다.

이 때문에 정부 치적 쌓기용 행사로 노사정 대타협을 할 바에는 차라리 안 하는 게 낫다는 의견까지 나온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노총)마저도 이날 논평을 통해 "정부와 민노총은 사회적 대화가 노동자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고 소모의 시간으로 끝난 것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동원 전 고려대 경제학과 초빙교수는 "경제위기 국면에서의 사회적 대타협이란 것은 노사 모두가 희생하는 데서 출발하는데, 이번 합의안에선 그런 점이 보이지 않는다"며 "아무도 희생하길 원치 않는 대타협이라면 하지 않는 게 낫다"고 지적했다.

세종=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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