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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선2035

“너 우울증 있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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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채혜선 기자 중앙일보 기자
채혜선 사회2팀 기자

채혜선 사회2팀 기자

회사로 향하는 출근길 버스에 큰 사고가 나서 죽기를 바란 적 있는지. 지난해 내가 그랬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하는 가벼운 망상인 줄로만 알았는데 이야기를 듣던 친구는 자긴 그 정도까진 아니라며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찾아간 병원에서 의사는 “당장 입원을 권유할 정도의 우울증”이라고 말했다. 일상에서 죽음을 빼놓지 않고 생각하고 있다는 게 그 이유였다.

꼬리표를 뗀 지 반년도 더 지난 이 병을 다시 떠올리게 된 건 최근 제보자 A와 접촉하게 되면서다. 어느 직장에서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는 A가 보내 준 녹음파일에서 부장 직급의 한 남성은 그를 이렇게 다그쳤다. “너 우울증 있냐?”

우울증에 대한 굳고 단단한 편견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부장은 타인과 잘 어울릴 수 없다면 우울증 환자라고 확신하며 A를 몰아세웠다. 이런 오해는 A의 부장만 갖고 있는 게 아니다. 졸업한 대학교의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정신과에 간다고 했더니 엄마·아빠에게 혼이 났다”는 글이 종종 올라온다. 글쓴이들은 “마음이 나약해서 그런 것”이라는 핀잔도 함께 들었다고 적었다. 사회에 독버섯처럼 퍼져 있는 이 같은 인식은 치료가 필요한 우울증 환자를 숨어들게 하는데 한몫한다. 2016년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정신건강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는 이유로 응답자의 30.5%가 “치료받는 걸 다른 사람이 알면 어떻게 생각할까 걱정”이라고 답했다.

펭수가 보건복지부와 협업한 영상에서 한 말. [‘자이언트 펭TV’ 캡처]

펭수가 보건복지부와 협업한 영상에서 한 말. [‘자이언트 펭TV’ 캡처]

우울증은 뉴스에서만 접할 수 있거나 연예인이나 걸리는 ‘환상’이 아니다. 2018년에만 75만1930명이 앓았다. 성인 100명 중 5명(2016년 기준)은 평생 한 번 이상 우울증을 겪는다는 조사도 있다. 내 가족이나 지인이 그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들은 당신이 모르게 아플 것이다. 나 역시 아주 가까운 지인에게만 털어놨다. 뒤늦게라도 말해야겠다고 결심한 건 통화를 끊기 전 A의 마지막 질문 때문이다. “사람들이 제가 우울증이라면서 다 제 탓이래요. 기자님 생각도 그런가요?”

송곳처럼 날카로운 말들은 A의 속을 곪게 했다. 그러나 우울증은 누구나 걸릴 수 있고, 걸리는 사람은 정신이상자가 아니다. 걸그룹 소녀시대 멤버 태연이나 이국종 교수 등 이미 많은 유명인이 우울증으로 괴로웠다고 용기 내 고백했다. 우울증 치료기를 담은 도서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의 백세희 작가는 지난해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마음 아픈 사람들이 숨을 쉬듯 당연하게 병원을 찾고, 그 어떤 불이익도 받지 않는 날이 꼭 오면 좋겠다”고 했다. 아직 멀게만 느껴지는 그런 날이 오려면 우울증 환자의 입과 마음을 닫게 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 그 시작은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부터다.

채혜선 사회2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