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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와 볼턴, 야누스의 두 얼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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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정효식 기자 중앙일보 사회부장
정효식 워싱턴특파원

정효식 워싱턴특파원

고대 로마 신 야누스는 정반대를 보는 두 얼굴의 신이다. 문(門)의 입구와 출구, 시작과 끝, 전쟁과 평화를 상징한다. 지금은 철천지 원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존 볼턴 전 국가안보보좌관도 두 얼굴의 야누스였다.

볼턴의 회고록 『그 일이 있었던 방』을 읽으며 놀란 건 그가 아무도 인정 않는다는 점에서 트럼프와 너무 닮았다는 점이었다. 첫 장부터 “언론이 숭배하는 제임스 매티스 전 국방장관을 포함한 소위 ‘어른들의 축’은 대통령 관리에 실패했고, 자기 잇속만 차리고 대통령의 목표를 공개 무시했다”고 적었다. 자신만 애국자다. 볼턴이 전쟁광이라지만 올해 새해 벽두에 이란 군부 2인자 가셈 솔레이마니 사령관을 폭사한 건 볼턴과 갈라선 뒤 트럼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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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미국 언론은 트럼프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 미국 농산물을 구매해 재선을 부탁했다는 보도 이후 볼턴 회고록에 대한 관심이 식었다. “실패한 국가안보보좌관이 기밀을 누설해 자기 장사를 한다”는 케일리 매커내니 백악관 대변인의 반박에 상당 부분 공감하기 때문이다. 뉴욕 타임스도 서평에서 “책 대부분 볼턴이 별로 성취할 수 없었던 데 대한 지루한 설명이지만 자만심으로 가득 차 있다”고 했다. 대단한 새로운 팩트가 없기도 했다.

한국 독자에겐 다르다. 20~30년 뒤에나 공개됐을 한·미와 북·미, 미·일 외교의 민낯을 보게 된 건 좋은 기회다. 다만 자기 편향이 심한 사관 볼턴의 기록이란 점을 염두에 두고 객관적으로 읽을 필요가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북·미 회담을 먼저 제안했냐,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먼저했냐로 우리끼리 진실-왜곡 논란을 벌이는 건 소모적이다. 볼턴도 “‘거의(all but)’ 시인했다”며 해석의 여지를 남겼다.

출발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기획한 우리 정부일지 몰라도 북·미 외교적 판당고(스페인 듀엣춤)의 실제 전개는 한국 창조물과 거리가 멀었다. 볼턴이 공개한 싱가포르·하노이 회담 대화록엔 종전선언 언급은 아예 없다. 특히 김 위원장의 관심은 한·미 연합훈련 중단과 2016년 이후 유엔 제재 전부 해제뿐이었다. 그는 볼턴이 “하노이 최악의 순간”이라고 했던 트럼프 대통령의 일정 비율(%)의 제재 축소 제안조차 거부했다.

볼턴 회고록의 장점은 순간마다 의제마다 국가이익에 관해 질문을 던진다는 점이다. 북·미가 두 번의 정상회담에서 종전선언을 외면한 건 현시점 자신들의 이익이 아니라고 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지금 단독 종전 결의를 하는 게 우리 국익에 부합하는지도 물어야 한다.

정효식 워싱턴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