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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하다 인천공항 정규직”…취준생 “공부하기 싫어진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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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인천국제공항공사 노조원들이 지난 22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 해당화실에서 열린 구본환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의 비정규직 근로자들 정규직 전환 관련 기자회견 입장을 막아서고 있다. [뉴시스]

인천국제공항공사 노조원들이 지난 22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 해당화실에서 열린 구본환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의 비정규직 근로자들 정규직 전환 관련 기자회견 입장을 막아서고 있다. [뉴시스]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30대 초반 A씨는 평균 연봉이 9000만원대인 금융권 회사에 다닌다. 영어는 물론 스페인어도 할 줄 아는 재원이다. 그런 A씨는 입사 후에도 인천국제공항공사(인천공항)의 취업 문을 꾸준히 두드려 왔다. 그는 23일 “인천공항은 취업준비생(취준생)에게 ‘꿈의 직장’으로 불리는 곳”이라며 “스펙을 쌓으며 늦깎이 입사를 꿈꿔 왔는데 여행객 보안검색 직원 1900여 명의 정규직 고용 소식에 상대적 박탈감을 심하게 느꼈다”고 말했다.

인천공항 보안직 1900명 정규직화 #대상자 추정 20대, 공채 조롱 논란 #취준생 “개인 노력 무시, 허탈하다” #공항노조도 “노노갈등” 규탄대회

인천공항이 공항 보안 업무를 담당하는 비정규직 1902명을 직접 고용(본사 소속 청원경찰)하겠다고 22일 밝힌 이후 후폭풍이 거세다. 공개채용 시험을 준비해 온 대학생·취준생 사이에서 역차별이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비정규직이 모여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 화면. [뉴시스]

비정규직이 모여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 화면. [뉴시스]

이날 취업포털 인크루트에 따르면 인천국제공항공사는 3년 연속 대학생이 꼽은 가장 일하고 싶은 공기업 1위다. 서울 지역 한 대학교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개인 노력을 무시하고 동등한 일자리를 일괄적으로 제공하는 공산주의” “이게 나라냐. 공부 왜 하냐” 등 불만을 토로하는 글이 40건 이상 올라왔다.

이런 상황에서 인천공항 비정규직들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방으로 추정되는 곳에 올라온 글이 불을 지폈다. 한 이용자는 “22세에 알바천국을 통해 보안요원으로 들어와서 이번에 정규직 전환이 된다”며 “서·연·고(서울대·연세대·고려대) 나와서 뭐하냐. 졸지에 서울대급 됐네 소리질러 ㅋㅋㅋ. 너희 5년 이상 버릴 때 나는 돈 벌면서 정규직”이라고 적었다. 서울 유명대 졸업 후 1년여 공기업 입사를 준비해 왔다는 김모(29)씨는 “코로나19로 취업이 더 힘든데 이런 걸 보니 허탈하다”며 “그간 공부해 왔던 게 물거품이 되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23일엔 청와대 국민청원도 등장했다. ‘공기업의 정규직화를 그만해 주십시오’라는 제목의 청원에는 하루 만에  9만6000여 명 넘게 동의했다. 청원인은 “이번 인천국제공항공사 전환은 충격적”이라며 “사무 직렬의 경우 토익 만점에 가까워야 고작 서류를 통과할 수 있는 회사에서 시험도 없이 다 전환하는 게 공평한 것인가 의문이 든다”고 적었다. 또 “이번 수혜자 중에는 알바로 들어온 사람도 많다”며 “여기 들어가려고 공부하는 취준생과 현직자는 무슨 죄냐. 누구는 대학 등록금 내고, 스펙 쌓고, 시간 들이고, 돈 들이고 싶었겠냐. 노력하는 이들의 자리를 뺏는 건 역차별이고 청년들에게 더 큰 불행”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인천공항 노조(정규직 노조) 측은 공사의 일방적 발표로 비정규직 직원들이 오히려 고용 불안에 빠졌다며 추진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노조는 “청원경찰은 노령·관료화 문제로 정부도, 한국공항도 폐지하려던 제도”라면서 “청원경찰을 통한 직고용 추진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실업자로 내몰고 인천공항뿐 아니라 지방공항, 항만 등 타 공기업에도 심각한 ‘노노 갈등’을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조는 헌법소원 제기 등 총력투쟁을 전개함과 동시에 23일 규탄대회를 열었다.

채용 역차별 논란은 공공기관·공기업의 ‘지역인재전형’, 국가직 공무원의 ‘지역인재 9급 채용 전형’을 놓고도 일고 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누구든 선호하는 귀한 일자리에 엄격한 채용절차를 거치지 않고 들어가는 비정규직을 보며 취업준비생은 박탈감을 느끼고, 고시 뚫듯 입사한 정규직 사원이 반발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조동근 명지대 명예교수는 “정책에 따라 특정 그룹에만 혜택이 돌아가면 시장원리가 무너져 특혜시비가 붙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곽재민·채혜선·김지아 기자 chae.hyes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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