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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간 1500㎞’ 사찰 잠행한 주호영 “24일 결단 밝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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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통합당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과 주호영 원내대표가 지난 20일 충북 속리산 법주사에서 회동하고 있다. 김성원 미래통합당 원내수석부대표 페이스북 캡처

미래통합당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과 주호영 원내대표가 지난 20일 충북 속리산 법주사에서 회동하고 있다. 김성원 미래통합당 원내수석부대표 페이스북 캡처

미래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의 ‘잠행 정치’가 일주일을 넘어섰다. 지난 15일 더불어민주당의 6개 상임위 단독 구성에 항의해 사퇴 카드를 꺼냈던 그는 이튿날인 16일부터 공식 석상에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21일 충북 보은군 법주사에서 주 대표를 만나 설득하면서 복귀가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오기 시작했다. 주 대표는 23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25일까지 돌아와 달라는 김 위원장의 의견을 고려해 복귀 시점 등에 대한 제 입장을 24일에는 밝히겠다”고 말했다.

16일 서울 현충원을 찾았던 주 대표는 충남 아산 현충사(이순신 장군 사당)를 시작으로 8개 이상의 사찰을 옮겨 다니며 잠행 중이다. 전북 고창 선운사, 전남 장성 백양사(천진암), 전남 구례 화엄사, 경남 남해 보리암, 경남 하동 쌍계사ㆍ칠불사, 경북 울진 불영사(20일), 충북 보은 법주사(21일), 강원도 사찰(22일) 등에서 머물렀다. 이 기간 이동한 거리만 1500㎞ 이상이다. ‘유발승(머리를 깎지 않은 승려)’으로 불리는 주 대표는 ‘자우’라는 법명이 있을 만큼 독실한 불교 신자다.

과거에도 칩거를 정치 수단으로 삼은 정치인들이 더러 있었지만, 주 대표처럼 전국의 사찰을 돌며 잠행한 경우는 드물었다. 당 관계자는 “민주당이 독주하는 상황에서 마음을 비우고 해법을 찾으려는 주 대표의 고민 흔적”이라고 설명했다. 주 대표는 최근 자신의 카카오톡 소개 문구를 ‘인욕(忍辱ㆍ마음을 가라앉혀 욕된 것을 참음), 하심(下心ㆍ자기를 낮추는 마음), 청정(淸淨ㆍ허물과 번뇌에서 벗어남)’이라고 적었다.

주호영 원내대표 ‘사찰 잠행’ 정치. 그래픽=신재민 기자

주호영 원내대표 ‘사찰 잠행’ 정치. 그래픽=신재민 기자

주 대표 앞에는 상임위원장을 모두 포기하거나, 7개 상임위를 가져가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18개 상임위원장을 모두 포기한다면, 통합당은 상임위원 명단을 새로 짠 뒤 국회로 복귀하게 된다. 국회 안에서 의원들의 전문성과 정책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역공 전략’이다. 이 경우 주 대표의 복귀 시점은 민주당의 상임위 독식이 가시화되는 본회의 직전(25일)이나, 실제 독식이 이뤄진 뒤(26일)일 가능성이 크다. 한 통합당 초선 의원은 “이래야 주 대표에게 ‘독주에 맞선다’는 복귀 명분이 생기지 않겠느냐”고 했다. 김종인 위원장이 최근 “18개 상임위를 다 줘도 된다”고 발언한 것은 주 대표의 어깨를 가볍게 해주려는 의도라는 해석이다.

통합당이 7개 상임위를 받고 ‘11대 7’의 구도를 만드는 시나리오도 아직까진 유효하다. 이 경우 법제사법위원장의 임기를 2년씩 쪼개는 방안 등이 협상 테이블에 오를 수 있다. 다만 “민주당의 전략에 밀렸다”는 당내 불만이 속출할 수 있다. 한 통합당 인사는 “주 대표의 잠행이 오로지 민주당 때문만은 아닐 것”이라며 “앞으로는 민주당과 대치하고, 뒤로는 당의 불만까지 추슬러야 하는 데 대한 고민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미래통합당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과 주호영 원내대표가 지난 20일 충북 속리산 법주사에서 회동하고 있다. 김성원 미래통합당 원내수석부대표 페이스북 캡처

미래통합당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과 주호영 원내대표가 지난 20일 충북 속리산 법주사에서 회동하고 있다. 김성원 미래통합당 원내수석부대표 페이스북 캡처

주 대표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 만큼이나 복귀 시점도 주목된다. 한 통합당 의원은 “복귀가 너무 늦어지면 민주당이 짜놓은 ‘일하는 국회’ 프레임에 말려들 수 있다”고 말했다. 반대로 주 대표가 애매한 시점에 복귀하면 대여(對與) 전략을 놓고 통합당 내부에 ‘엇박자’가 생길 수도 있다. 한 중진 의원은 “주 대표의 입장이 명확지 않은 상태에서 의총이 열리면 당내 혼선이 빚어질 게 불 보듯 뻔하다”고 했다. 주 대표는 통화에서 “김종인 위원장이 언급한 복귀일(25일)을 염두에 두고 계속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재차 원 구성 압박에 나섰다. 김태년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원내대책회의에서 “망부석도 아니고 더 얼마만큼 기다려야 하느냐”며 “통합당이 오늘까지 상임위원 명단을 제출하고 국회 정상화에 협조할 것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김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강원도 고성 화암사를 찾아 주 대표와 회동했다. 민주당 측은 “김 원내대표가 오후 4시 45분쯤 주 대표를 만나 국회 정상화를 위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고 밝혔다.

손국희ㆍ윤정민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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