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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피플]EU 행정수반된 7남매 엄마 "육아 전담 남편, 세상 남자들이 본받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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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유럽연합(EU)의 행정수반인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 EU 깃발 앞에 선 옆모습. EPA=연합뉴스

유럽연합(EU)의 행정수반인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 EU 깃발 앞에 선 옆모습. EPA=연합뉴스

일곱 남매의 엄마. 독일 유력 귀족 집안의 며느리. 의사이자 승마 선수. 유럽연합(EU)의 행정 수반인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Ursula von der Leyen·62)의 스펙 중 일부다. 폰데어라이엔은 오는 30일 문재인 대통령과 화상 정상회담을 갖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공조 방안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폰데어라이엔은 지난해 7월 EU 사상 최초로 여성 집행위원장으로 선출됐고, 11월 취임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코로나19로 폰데어라이엔의 리더십도 ‘진실의 순간’을 맞았다. 코로나19와의 싸움에서 리더십을 보여주며 EU 존재의 이유를 각인시키느냐, 리더십의 한계를 노출하느냐 갈림길에서 있다. 팬데믹으로 타격을 입은 EU 회원국들 간의 내분은 악화일로다. 문제의 핵심은 돈이다. 유로화 사용 19개국의 올해 국내총생산(GDP)은 전년 대비 7.75% 하락할 것으로 EU는 추산한다. EU 출범 후 최악의 경기 침체다. 이 중에서도 스페인ㆍ이탈리아 등 내상이 상대적으로 더 심한 남유럽 국가가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에겐 ‘아픈 손가락’이다. EU 전체의 조화와 균형을 우선시해야 하는 그가 지난달 27일 코로나 지원기금 조성을 제안했던 배경이다.

지난해 12월 EU 관계자들과 인사 중인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뒷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지난해 12월 EU 관계자들과 인사 중인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뒷모습). 로이터=연합뉴스

문제는 재원이다. 폰데어라이엔은 재정 안정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국가들이 공동으로 기금을 출연해 지원을 해주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네덜란드ㆍ오스트리아ㆍ스웨덴ㆍ덴마크의 지도자들은 “조건 없는 지원금은 안 된다”며 공개 반대하고 있다. 지난 19일(현지시간) 화상으로 진행된 EU 지도부 회의도 이견만 확인한 채 끝났다.

19일 화상 회의 후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의 ‘큰 언니’ 격인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기자들에게 “EU 일부 회원국들이 지금 상황의 심각성을 잘 모르는 것 같다”며 “지금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침체 국면으로 너무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폰데어라이엔에 힘을 실어준 셈이다. 앞서 독일은 이탈리아 등 일부 국가에 조건 없는 대출은 안 된다는 쪽이었지만, 입장을 바꿨다.

지난해 7월 폰데어라이엔(왼쪽)이 EU 집행위원장으로 확정되자 축하를 건네는 메르켈 총리.로이터=연합뉴스

지난해 7월 폰데어라이엔(왼쪽)이 EU 집행위원장으로 확정되자 축하를 건네는 메르켈 총리.로이터=연합뉴스

메르켈 총리가 없었다면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도 없다. 폰데어라이엔은 1990년 메르켈 총리의 기독민주당(CDU)에 30세의 젊은 피로 합류한 뒤, 자신보다 네 살 위인 메르켈의 최측근으로 활약한다. 런던정경대(LSE)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뒤 독일 하노버에서 의대를 졸업한 폰데어라이엔은 야심찬 젊은 여성이었다. 동료 의사와 결혼해 7남매를 키우며 한때 ‘경력 단절 여성’이 되기도 했지만 정계 진출 후 차근차근 출세 사다리를 올라갔다. 2005~2009년엔 가정여성부 장관, 2009~2013년엔 노동사회부 장관을 거쳐 2013년에서 2019년까지는 국방부 장관을 역임했다. 메르켈 총리 시대에서 최장수 장관으로 꼽힌다. 2005년부터 지난해 EU 집행위원장이 될 때까지 내리 장관이었던 셈이다. 국방부 장관은 독일에선 두 가지 ‘최초’ 기록을 세웠다. 민간인 출신으로도, 여성으로서도 처음이었다.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의 정치 초년병 시절 선거 포스터. [위키피디아]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의 정치 초년병 시절 선거 포스터. [위키피디아]

한때 ‘경력 단절 여성’이었던 그는 보수적인 당내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양성 평등 정책도 적극 펼쳤다. 가정여성부 장관 시절 아빠들의 육아휴직을 장려하기 위한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쳤다. 북유럽을 모델로 아빠가 육아 휴직을 쓸 경우 2개월을 추가로 유급으로 육아휴직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게 대표적이다. 당 내 보수파는 공개 반발했지만 폰데어라이엔은 밀고 나갔고, 독일 워킹맘들의 전폭적 지지를 얻게 되는 계기가 됐다. 그는 당시 한 인터뷰에서 “(나의 경우) 육아는 남편이 많이 담당한다”며 “더 많은 남성들이 나의 남편처럼 하기를 바란다”며 남편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그의 남편은 귀족 작위를 받은 집안 출신으로, 의사이자 기업가다.

폰데어라이언의 앞길은 험로다. 코로나19로 인한 EU의 경제적 타격과 내분은 물론, 연말까지 브렉시트(Brexitㆍ영국의 EU 탈퇴) 문제도 매끄럽게 해결해야 한다. 폰데어라이언은 지난해 7월 EU 집행위원장으로 선출되면서 “유럽은 하나이며, 누구도 우리를 분열시킬 수 없다”고 말했다. 그의 임기인 2024년까지 그 약속이 지킬 수 있을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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