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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 짓밟기 일쑤던 잡초, 알고 보니 잡초 아니네요

중앙일보

입력

6월에도 여기저기 꽃들이 핍니다. 밤나무·가죽나무·태산목 등 나무 꽃도 많지만 주변을 보면 접시꽃·튤립·마리골드·개망초 등 풀꽃도 상당히 많죠. 풀은 키가 작아서 간혹 무시당하거나 업신여겨지기도 하는데 사실 풀과 나무는 식물로서 하는 역할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광합성하고 산소도 만들어 주는 고마운 존재지요. 나무는 크기가 커서 한 개체가 산소를 많이 만들어내지만 풀은 체격이 작은 만큼 여럿이 뭉쳐서 광합성을 하고 산소도 만듭니다.

우리 주변 식물들의 비밀 이야기 3 들풀

풀은 지구상에 살지 않는 곳이 거의 없을 정도로 여러 곳에 살기 때문에 나무가 살기 어려운 환경에서도 찾아볼 수 있어요. 곤충이나 초식동물들은 나무의 신세도 지지만 풀의 도움도 많이 얻죠. 나무 한 그루를 작은 생태계라고 하듯이 풀 한 포기도 작은 생태계라고 할 수 있어요. 길가에 흔한 풀도 잠깐 멈춰서 자세를 낮추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예쁘고 신기한 이야기를 많이 품고 있답니다.

위기를 기회로 삼는 질경이  
길을 걷다 쉽게 마주치는 식물 중 질경이를 빼놓을 수 없어요. 질경이는 왜 숲속에서 조용히 살지 않고 길에 나와서 밟히는 삶을 살까요? 질경이는 키가 작아서 깊은 숲속에서 경쟁력이 떨어져요. 햇빛을 제대로 볼 수 없고 꽃가루받이를 해줄 곤충도 잘 찾아오지 않죠. 과감히 숲을 떠나 햇빛을 맘껏 볼 수 있는 길가로 나왔는데 길에는 사람·자동차가 다녀서 자꾸 밟히죠. 다행히도 질경이는 다른 풀에 비해 잎과 줄기가 질깁니다. 질경이 잎을 찢어보면 안에 하얀 실 같은 심이 있어 잎을 더 질기게 하죠.

더 놀라운 것은 질경이의 씨앗 퍼뜨리기 전략입니다. 질경이 꽃·열매는 작은 이삭처럼 달립니다. 그릇처럼 생긴 열매는 뚜껑이 반으로 열려요. 그 안에 씨앗이 들어있는데 바람에 날리기도, 새가 먹기에도 적당하지 않죠. 과연 어떤 방법을 사용하는 걸까요? 동물이나 사람, 혹은 자동차 바퀴가 질경이를 밟으면 그대로 씨앗이 묻어서 이동합니다. 비가 오고 나면 씨앗이 끈적여서 더 잘 붙는다고 해요. 산꼭대기에서 질경이를 봤다면, 등산객의 신발에 붙어서 이동했을 겁니다. 사람들에게 밟히며 자신을 번식시키는 질경이의 전략이 경이롭지 않나요? 자기에게 닥치는 위험을 오히려 기회로 삼는 멋진 식물입니다.

흔하지만 잘 모르는 개망초  
‘개망초’라는 이름은 몰라도 본 적 없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예요. 흰색 꽃잎 안에 노란색이 보여서 아이들은 ‘계란꽃’이라고도 하죠. 개망초라는 이름은 망초라는 풀 이름에 ‘개’자가 붙은 겁니다. 잘살던 사람이 망하면 그 집에 피는 꽃이라고 해서 ‘망초’라 불렀다고 해요. 개망초는 외래종인데 망초와 비슷하지만 망초가 아니니 ‘개’자를 붙인 겁니다. 사실 집안이 망하면 피는 꽃은 아니에요. 이사를 하거나 집안을 돌보는 사람이 사라지면 풀이 나는 것을 제때 뽑지 못하는 경우가 많죠. 망초와 개망초는 워낙 개체수가 많고 바람을 타고 씨앗을 보내는 번식법을 사용해서 잠시만 틈을 줘도 여기저기 자랍니다. 그런 이유로 집안이 망하면 망초가 난다고 해석하는 것 같아요.

여름을 잘 대비하는 강아지풀  
초등학교 자연 시간에 쌍떡잎식물 대표선수는 ‘명아주’고 외떡잎식물 대표선수는 ‘강아지풀’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길 가다가 강아지풀을 만나면 반갑죠. 강아지풀에는 놀라운 삶의 전략이 있답니다. 식물이 광합성하려면 물·이산화탄소·햇빛이 필요하죠. 특히 이산화탄소는 잎의 ‘기공’을 열어 흡수하는데, 날씨가 너무 더우면 기공을 열었을 때 애써 모은 물도 함께 날아가 버립니다.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 광합성 효율을 높게 만들었죠. 효율이 높으니 이산화탄소를 조금 먹어도 되고 기공을 조금 여니까 물도 조금 잃죠. 바꿔 말하면 날씨가 너무 덥거나 건조한 곳에서도 잘 산다는 뜻입니다.

쓸모에 따라 정해지는 잡초
앞서 살펴보았듯이 흔히 우리가 잡초라고 하는 풀들도 저마다 살아남는 삶의 전략들을 갖고 있습니다. 논에 민들레가 자라면 민들레가 잡초입니다. 민들레를 키우는 농장에 벼가 한 포기 자란다면 벼가 잡초입니다. 이렇게 잡초라는 것은 쓸모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라서 딱히 정해져 있는 게 아닙니다. 그저 우리 마음속에만 있는 것이죠. 길가에 흔한 들풀에도 눈길을 주고 사랑해주면 좋겠습니다.
글·그림=황경택 작가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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