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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트럼프 모두 문 대통령 판문점 동행 원치 않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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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6월 30일 판문점에서 대화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를 바라보고 있다.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6월 30일 판문점에서 대화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를 바라보고 있다.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과 2019년 6·30 판문점 북·미 정상 회동 당시 참석을 원했지만 북한과 미국 모두 이를 원치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존 볼턴 전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23일 공식 출간할 예정인 『그 일이 있었던 방: 백악관 회고록』에 공개한 내용이다. 2018년 회담에는 문 대통령이 참여하지 못했고, 2019년 회동에는 잠시 함께했다.

볼턴, 남·북·미 막전막후 공개 #“한·미 정상 함께 판문점 첫 방문 #문 대통령, 트럼프에 요청해 동참” #“김정은, 남북 핫라인 근처도 안 가” #“트럼프, 한국 방위비 증액 위해 #미군 철수로 위협하라고 지시” #청와대는 회고록에 입장 안 내

21일 중앙일보가 입수한 내용에 따르면 싱가포르 회담을 앞둔 2018년 6월 1일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들고 백악관을 찾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김영철은 “이번은 북·미 정상회담”이라며 “남한은 필요없다”고 잘라 말했다. 볼턴은 이를 두고 “트럼프 대통령과 김영철 간 회동에서 있었던 유일한 좋은 일”이었다고 평했다. 미국 역시 남·북·미 회담을 반기지 않았다는 점을 시사한다.

“김영철, 방미 때 남한 필요없다 말했다”

볼턴은 문 대통령이 수차례에 걸쳐 싱가포르 회담 참여를 원했다고 적었다. 남북 간 판문점선언 다음 날인 2018년 4월 28일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화해 “북·미 정상회담을 판문점에서 열고, 곧바로 후속 남·북·미 3자회담을 갖자”고 강하게 밀어붙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때 미국은 이미 스위스 제네바와 싱가포르를 최적의 장소로 검토하고 있었다. 이에 김 위원장이 싱가포르를 선호한다고 하자 문 대통령이 물러섰다고 했다.

당시 청와대는 한·미 정상의 통화 사실을 공개하며 “북·미 정상회담 장소로 2~3곳의 후보지를 압축하며 의견을 교환했다”고 밝혔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후보지를 추천했느냐는 질문에 “문 대통령이 먼저 말한 부분도 있다”고 했다. “3자 정상회담 이야기도 나왔다”면서다. 볼턴의 회고록대로라면 이때 문 대통령이 판문점을 북·미 및 남·북·미 정상회담 장소로 제안했다는 가정이 가능하다.

2018년 6월 1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이 백악관을 방문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전달 하는 모습. [중앙포토]

2018년 6월 1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이 백악관을 방문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전달 하는 모습.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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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턴은 문 대통령이 2018년 5월 22일 백악관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남·북·미 3자회담을 위해 싱가포르에 동참하길 원했고, 심지어 6월 11일 회담 전날까지도 싱가포르에 오고 싶어 했다고 소개했다. 이를 “문 대통령이 2019년 6월 트럼프-김정은 판문점 회동 때처럼 사진 행사에 끼어들길 원했다”고 표현했다.

2019년 6월 30일 판문점 회동과 관련, 볼턴은 트럼프 대통령의 판문점 방문에 앞서 청와대에서 이뤄진 한·미 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이 자신도 동행하는 방안을 요청했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김 위원장은 나와 만나기를 부탁했지만 문 대통령이 함께 가서 만나는 게 문 대통령에게 좋게 보일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끼어들어 “북한과 합의한 건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 양자 만의 회동”이라고 했고, 볼턴도 폼페이오 장관 편을 들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한국 영토에 들어올 때 내가 현장에 없는 것은 바람직하게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거듭 말했다.

그러자 폼페이오 장관은 “어젯밤 문 대통령 생각을 전달했지만 북한이 이를 거부했다”고 했다. 북한도 원치 않는다는 점을 이유로 대 다시 반대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문 대통령도 참석하면 좋겠지만 북한의 요청에 따르겠다”고 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미국 대통령이 DMZ를 방문한 건 여러 번이지만 한·미 양국 대통령이 함께 가는 건 처음”이라고 집요하게 요청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 말할 게 있기 때문에 큰 기회를 놓칠 수 없다”며 “문 대통령은 서울에서 배웅한 뒤 한국을 떠나기 직전 오산에서 만나면 어떻겠느냐”고 역제안했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 판문점 인근 오울렛 초소까지 동행한 뒤 거기서 다음은 결정하자”고 고집했고, 결국 트럼프 대통령도 수용했다고 볼턴은 전했다.

“문 대통령, 싱가포르 회담장 오고 싶어해”  

당시 문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 뒤 공동 기자회견에서 “저도 오늘 판문점에 초대받았다”고 밝혔는데, 볼턴의 회고록이 사실이라면 그냥 초대를 받은 게 아니라 삼고초려를 한 셈이다.

볼턴은 또 당시 남·북·미 판문점 회동 전에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남북 간 핫라인에 대해서도 말했다고 전했다. 문 대통령이 “그것은 조선노동당 본부에 있고, 그(김정은)는 전혀 거기 간 적이 없다”고 고백했다(confessed)는 것이다. 실제 청와대는 2018년 1차 남북 정상회담 직전 개설된 핫라인이 남북 정상 간 직접 소통의 상징이라고 강조했지만, 가동된 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지난 9일 대북 전단 살포에 반발하며 핫라인 폐기를 선언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방위비 협상 과정에서 주한미군 철수를 카드로 활용하라고 했다고 볼턴은 전했다. 볼턴은 2019년 7월 방위비 문제 논의차 한국과 일본을 방문했을 때를 떠올리며 “진짜 방위비가 얼마인지 추측하는 것은 소용이 없었다. 트럼프만이 얼마면 만족할지 알고 있었다”며 “내가 워싱턴으로 돌아오자 트럼프 대통령은 ‘미군 철수로 위협하라’고 했다”고 적었다. 청와대는 볼턴이 주장한 내용들에 대해 아무런 입장을 내지 않았다.

워싱턴=임종주·정효식 특파원 jjp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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