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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Z세대로부터 보는 미국의 미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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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조영태 서울대교수·인구학

조영태 서울대교수·인구학

미국이 혼란스럽다.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와 사망자는 줄지 않고 계속 되고 있는 추세고, 많은 주에서 사회 활동의 제한도 현재 진행형이다. 이런 와중에 범법자로 의심 받던 두 명의 흑인이 백인 경찰의 과도한 공권력 사용으로 사망하는 일이 발생하면서 국가의 혼란은 극에 달하는 양상이다. 전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흑인들의 생명도 소중하다(BLM, Black Lives Matter)’는 구호를 외치며 거리로 몰려 나왔다. 우리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상점 ‘약탈’도 여러 대도시에서 발생했지만 흑인, 나아가 인종적 평등에 대한 미국 시민들의 목소리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더 이상 볼 수 없는 최루가스가 98개 도시에서 시위대에게 발사되었다는 소식도 나왔다. 21세기에, 그것도 세계 최강 선진국이라는 미국에서 이런 혼란이 발생했다는 것을 믿기도 어려울 정도다.

미국시위의 중심에 Z세대가 있어 #어려서부터 다양한 인종 함께 큰 #Z세대에게 인종차별은 용납 안돼 #올 대선에서 Z세대 활약이 궁금

미국 사회는 과연 퇴보하는 중일까. 계속되는 인종 갈등, 총기 문제, 비상식적이고 권위적인 공권력, 약탈, 최루가스. 이런 모습들로만 보면 미국은 더 이상 진보할 수 없을 것만 같다. 하지만 최근 벌어지고 있는 시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미국의 미래는 어둡기 보다는 지금보다 훨씬 나아질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함을 엿볼 수 있다.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변화를 원하는 시위 자체가 아니라 이 시위가 Z세대(Gen Z)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 주 미국의 주요 언론들은 현재 전국적으로 번지고 있는 인종 차별을 반대하는 시위가 Z세대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고, 이들의 메시지는 트위터나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확산되어 더 많은 Z세대들의 참여로 이어지고 있다는 보도를 내 놓았다.

미국에서 Z세대는 1990년대 중후반부터 2010년 초반까지 태어난 사람들로, 현재 10대 청소년부터 20대 중후반까지의 연령에 걸쳐 있다. Z세대는 밀레니얼세대의 후속 세대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워낙 밀레니얼 세대에 대한 관심이 큰 지라 그에 비하면 Z세대는 생소한 느낌이지만, 미국에서 Z세대는 기성세대와는 전혀 다른 사고와 가치를 가진 세대로 굉장히 큰 주목을 받고 있다.

Z세대를 다른 세대와 다르게 만드는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이들이 진정한 ‘포노사피엔스’라는 점이다. 윗세대들은 이미 성인이 된 다음에 혹은 대학에 진학하면서부터 스마트폰을 배우며 사용하기 시작했다면 Z세대는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를 생활의 일부분으로 체득하며 성장했다. 과거에도 있었던 인종 차별 반대 시위들과 이번 시위의 가장 큰 차이점은 사건 발생부터 시위의 형성, 발전, 진행되는 모든 과정이 실시간으로 다양한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파되고 있다는 점이다. 소셜미디어가 삶의 부분인 Z세대가 그 중심에 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들은 왜 그저 관람자가 되지 않고, 다양한 형태로 시위에 직접 참여하여 지금까지 관행적으로 여겨온 제도와 규범을 바꾸려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을까. 여기서 Z세대가 기성세대와 차별되는 또 다른 특징을 생각해 볼 수 있는데, 바로 그들이 지니고 있는 인구학적인 특성이다.

윗세대들, 특히 미국의 가장 큰 인구집단인 백인 성인들에게 인종 차별 금지는 이른바 ‘정치적으로 옳은’ 메시지다. 그들의 대다수는 어려서부터 백인이 거의 다인 동네와 학교에서 자라났고 인종 차별에 대한 메시지는 주로 교과서로 습득했다. 그런데 Z세대는 이들과 자라난 환경이 180도 다르다. 어려서부터 흑인은 물론이고 아시안, 히스패닉 등 다양한 인종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교실에서 수업을 듣고 친구가 되어 자라왔다. 2015년 미국의 18세 이하 인구의 거의 절반(48.5%)이 흑인, 히스패닉, 아시아계로 구성 되어있었다. 학령기 인구가 모두 Z세대로 채워진 시점에 말이다. 법의 진정한 판단을 받기 전, 인권을 존중받지 못하는 것도 이해할 수 없는데 법 집행이라는 이유로 살해당하는 것을 보면 이들이 참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미국의 Z세대에게 인종과 문화적 다양성은 이해가 필요한 수사어구가 아니라 그냥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분이다. 이것이 본인의 인종적 배경과는 관계없이 Z세대가 시위에 참여하여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는 구호를 외치게 된 이유다. 이번 시위에 편승해 발생한 약탈에 많은 한인 상점들이 희생된 것에 안타까워하지만 여전히 시위에 동참하고 있는 수많은 Z세대 한인들의 마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들에게 인종에 관계없는 평등은 정치적 옳음이 아니라 그냥 옳은 것이다.

외국에서는 이해가 어려웠지만 미국인들이 4년 전 트럼프를 선택했던 이유 중 하나가 인종적 다양성이 확대되고 자신들의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에 대한 기성세대 백인 중산층들의 반감이었다. 올 11월에 다시 선거가 있다. 4년 전에 비해 1700만 명이나 되는 Z세대가 새롭게 유권자가 되었는데, 이들의 참여와 활약이 대선 결과에 어떻게 작용할 지 사뭇 궁금하다.

조영태 서울대 교수·인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