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감염보다 투석 제때 못 받아 죽을까봐 겁납니다"

중앙일보

입력 2020.06.17 05:00

인공신장투석실 자료사진.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 없습니다. [사진 (사)한국신장장애인협회]

인공신장투석실 자료사진.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 없습니다. [사진 (사)한국신장장애인협회]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 거주하던 신장장애인 A씨(66)는 지난 3월 9일 분당의 한 대형병원을 내원했다 ‘자가격리자’가 됐다. 이 병원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환자가 나와서다. A씨는 일주일에 세 차례씩 정기적으로 혈액 투석을 받아야 했다. 다행히 코로나19 진단검사서 음성 판정이 나왔다.

음성에도 "3주간 오지 말아라" 

하지만 음성 판정에도 평소 이용하던 병원 쪽에서 “3주간 오지 말라”는 통보를 받았다. 긴급하게 인공신장실을 갖춘 다른 병원에 문의해봤지만, 소용없었다. A씨 사정을 알게 된 보건소의 도움으로 겨우 투석이 가능한 병원을 안내받았다.

투석 날짜가 평소 스케줄 보다 하루 밀렸지만 감지덕지였다. 같은 달 12일 오후 늦은 시간에 한 차례 투석을 했다. 14일 투석은 16일로 이틀이나 연기됐다. 병원 쪽 사정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혈액투석 자료사진. 실처럼 가는 섬유를 통해 피가 지나가고 주변에 투석액이 지나면서 환자의 피를 걸러내게 된다. *기사내용과 직접적인 관련 없습니다. [중앙포토]

혈액투석 자료사진. 실처럼 가는 섬유를 통해 피가 지나가고 주변에 투석액이 지나면서 환자의 피를 걸러내게 된다. *기사내용과 직접적인 관련 없습니다. [중앙포토]

지혈 도중 갑작스런 심정지 

신장장애인은 제때 투석을 받지 못하면 체내 요독(尿毒)이 쌓인다. 신장 기능이 떨어지다 보니 소변으로 배출돼야 할 각종 노폐물이 혈액 속에 축적되기 때문이다. 고혈압에 호흡 곤란 증상도 일어날 수 있다. A씨는 16일 투석 이후 숨을 거뒀다. 지혈 도중 갑자기 심정지가 왔다고 한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정기적인 투석이 필요한 신장장애인들이 이중고를 겪고 있다. 인공신장실 등 의료기관이 감염을 이유로 코로나19 의심환자의 투석을 꺼리면서다. 이들을 위한 별도의 입원치료 병상을 확보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6일 오후 한 국가지정 입원치료병상 선별진료소에서 의료진들이 분주히 이동하고 있다. 프리랜서=김성태

16일 오후 한 국가지정 입원치료병상 선별진료소에서 의료진들이 분주히 이동하고 있다. 프리랜서=김성태

거리두기에도 외출 필수 장애인 

16일 한국신장장애인협회(이하 협회)에 따르면 국내 신장장애인은 지난해 말 기준 9만2400여명이다. 이 중 75%가 투석환자고, 나머지는 이식환자다. 투석환자의 대부분은 혈액투석자다. 신장장애인은 만성 호흡기질환자나 암 환자처럼 코로나19 고위험군에 속한다. 현재까지 확인된 코로나19 사망자만 최소 15명이다. 그런데도 정기적인 투석으로 반드시 집 밖 외출이 필요한 장애인이다.

외출 때 자칫 확진 환자와 동선이 겹쳐 자가격리자가 되면 상황이 심각해진다. A씨처럼 투석을 제때 받지 못하게 될 수 있어서다. 경북 경산에 사는 B씨는 지난 2월 21일 대구지역 의료기관에서 마지막 투석을 했다. 자가격리 중이던 같은 달 25일 몸이 부었다. 코피까지 쏟았다. 요독으로 추정된다. B씨는 급하게 서울지역 대형병원으로 옮겨져 투석했지만 현재도 상태가 심각하다고 한다.

신장장애인협회 김세룡 회장이 신장투석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민욱 기자

신장장애인협회 김세룡 회장이 신장투석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민욱 기자

아무런 대안 없어 

김세룡 협회장은 “음성이 나왔다고 해도 (의료기관에서는) 아무런 대안 없이 ‘2주 후에 오라’고 말하기 일쑤”라며 “보통 하루건너 투석을 한다. 투석 전후 체중이 3~3.5㎏가량 빠진다. 소변량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루만 미뤄도 (소변) 수천cc가 쌓이는데 자가격리 기간을 버티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상황이 이렇자 지난 3월 코로나19 대응지침(인공신장실편)이 마련됐다. 신장장애인 중 의심환자가 발생할 경우 원칙적으로 혈액투석이 가능한 국가지정 입원치료병상이나 음압병상이 있는 병원으로 이송해야 한다.

5월 이후 코로나19 누적 확진자.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5월 이후 코로나19 누적 확진자.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대응지침 유명무실 

코로나19 진단검사 결과가 음성으로 나올 경우 투석을 하되 다른 환자와 겹치지 않는 시간 또는 격리실에서 하게 돼 있다. 하지만 이 지침은 보건복지부나 질병관리본부가 아닌 대한신장학회·대한투석협회가 만들었다. 현장에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이유다.

협회 쪽에서 서울·인천·경기 등 공공의료 기관 11곳에 일일이 문의한 결과 ‘자가격리자 또는 의심환자의 경우 투석실 이용이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었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대외협력국 정혜영 팀장은 “‘코로나19 감염보다 투석 제때 못 받아 죽을까 봐 더 겁난다’고 하소연한 사례가 전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신장장애인협회 이영정 사무총장. 김민욱 기자

한국신장장애인협회 이영정 사무총장. 김민욱 기자

신장장애인들은 지침이 이행되길 간절히 바란다. 협회 이영정 사무총장에게 이유를 다시 물어봤다.

자가격리자 국가지정 투석병원 왜 필요한가. 
“평소 다니던 병원에서 받아주질 않는다. 투석한 지 4일만 지나도 심각한 상황에 내몰린다. 코로나19 사망보다는 투석으로 죽을 수 있다. ‘시스템’으로 만들어달라는 거다.”
일본은 집에서도 투석하는데.
“한국에서는 자가투석이 불법이다. 일본은 자가투석기를 병원에서 관리해주고, 기기는 민간업체가 대여해준다. 정부는 매일 투석이 가능하도록 월마다 30개씩 투석액도 지원한다. 그러다 보니 1회 투석으로 인한 일본 환자의 체중감소는 한국 환자의 절반 수준인 1~2㎏이다. 투석 기계 속도도 느려 심장에 주는 부담도 적다.”
그나마 투석실까지의 이동은 수월한가.
“장애인 콜택시 등을 이용하는데 지역에 확진자가 발생하면 가지 않으려 한다더라. 그런 민원이 협회로 많이 들어왔다. 투석은 보통 4시간 30분가량 걸린다. 투석 전후로 몸 상태가 굉장히 좋지 않다. 저혈당·저혈압으로 쓰러질 수 있다. 대중교통 이용, 자가운전은 위험하다.
코로나19 초기 고위험군으로 분류 안 됐다.
“열은 위험 신호다. 그런데 올 2월 70대 신장장애인이 코로나19 감염됐는데도 경증으로 분류됐다. 발열 외 특별한 증상이 없다는 이유였다. 입원 순위에서 밀렸다. 결국 재택 대기하다 사망했다. 5년 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때 고위험군으로 분류해놨는데 코로나19에서 반영이 안 됐다. 신장장애인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협회는 보건복지부, 국회 등에 전달할 정책자료집을 제작하고 있다.

세종=김민욱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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