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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라금지법 추진 민주당, 과거엔 "남남갈등 생겨 안된다" 주장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탈북민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에 대한 정부의 엄정 대응 방침이 논란인 가운데 최근 여당발(發) ‘대북전단 살포금지법’ 발의가 이어지고 있다.

김홍걸 더불어민주당 의원. [뉴스1]

김홍걸 더불어민주당 의원. [뉴스1]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지난 4일 탈북민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와 관련해 한국 정부에 ‘응분의 조처’를 요구한 뒤 국회에는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을 중심으로 4건의 대북전단 살포금지법안이 발의됐다. 남북교류협력법 개정안 2건, 접경지역지원특별법 개정안 2건이다. 남북교류협력법 개정안은 김홍걸 의원과 김승남 의원이 각각 지난 5일과 9일 대표발의했다. 대북전단을 살포하려면 통일부에 신고해 승인을 받도록 하는 내용이다. “전단을 보내는 것, 풍선 같은 것, 드론 같은 것을 띄워서 거기에 물자를 보내는 것도 (…) 결국 대북 접촉이란 점에서는 똑같으니까”(12일 김홍걸 의원)라는 논리다.

접경지역지원특별법 개정안의 경우 지난 10일 발의된 박상혁 의원안은 접경지역 안전보장 관련 규정을 신설하고 대북전단·물품을 살포하려면 통일부의 승인을 받게끔 하는 내용이다. 설훈 의원이 지난 11일 발의한 같은 법 개정안은 대북전단 살포 행위를 ‘대북 적대행위’로 규정, 이 행위에 대해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지난 4일 노동신문 담화를 통해 탈북자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비난하며 9·19 군사기본합의서 파기까지 경고한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 [연합뉴스]

지난 4일 노동신문 담화를 통해 탈북자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비난하며 9·19 군사기본합의서 파기까지 경고한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 [연합뉴스]

이 같은 법안 발의는 북한이 대북전단에 날 선 반응을 보일 때마다 나타났던 현상이다. 대북전단 살포금지법안이 처음 발의된 건 18대 국회였던 2008년 11월이다. 그 해 10월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처음으로 열린 남북 군사실무회담에서 북한이 탈북민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 문제에 대한 사과·처벌·재발방지 등을 요구하면서다. 이에 당시 최철국 민주당 의원이 대북전단 살포에 활용되는 풍선에 고압가스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고압가스안전관리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풍선 만드는 것을 어떻게 처벌하느냐”(이명규 한나라당 의원)는 반발 속에 표류하다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이후 박주선 전 의원을 시작으로 심재권·윤후덕·김민기·김병욱·김승남·송갑석 등 민주당 계열 전현직 의원들이 대북전단 살포 전 통일부에 신고하거나 승인을 받도록 하는 내용의 남북교류협력법 개정안 9건을 발의했다. 2014년 경기도 연천에서 살포된 대북전단에 북한군이 고사총을 발사한 사건, 2018년 4·27 판문점선언에서 상호 전단 살포를 중단하기로 합의한 이후에 쏟아져 나왔다. 시기와 무관하게 접경지역을 지역구로 뒀기 때문(윤후덕 의원)인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이들 법안은 모두 임기만료와 함께 폐기(재발의를 위해 철회된 김승남 의원안 1건 제외)됐다. 이번에 발의된 김홍걸·김승남 의원안의 내용은 그 동안 줄줄이 폐기돼 온 법안과 대동소이하다.

탈북민단체인 자유북한운동연합이 지난달 31일 김포시 월곶리 성동리에서 '새 전략핵무기 쏘겠다는 김정은'이라는 제목의 대북 전단 50만장, 소책자 50권, 1달러 지폐 2천장, 메모리카드(SD카드) 1천개를 대형풍선 20개에 매달아 북한으로 날려 보냈다고 1일 밝혔다.<br>  [연합뉴스]

탈북민단체인 자유북한운동연합이 지난달 31일 김포시 월곶리 성동리에서 '새 전략핵무기 쏘겠다는 김정은'이라는 제목의 대북 전단 50만장, 소책자 50권, 1달러 지폐 2천장, 메모리카드(SD카드) 1천개를 대형풍선 20개에 매달아 북한으로 날려 보냈다고 1일 밝혔다.<br> [연합뉴스]

과거 법안의 검토보고서에는 ▶전단 살포는 불특정 북한 주민을 상대로 한 일방적 정보제공행위라 접촉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고 ▶상호 교류와 협력을 촉진하기 위해 필요한 사항을 규정한다는 남북교류협력법의 목적규정에 부합하지 않는 데다 ▶헌법이 보장한 표현의 자유에 속하는 행위이자 양심적인 자유주의 시민의 정치적 발로라는 점에서 법률로 규제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견해 등이 담겨 있다. 통일부 장관(이재정) 정책보좌관 출신인 홍익표 민주당 의원이 12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법 이전에 우리가 사회적 합의를 통해서 이러한 행동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한 것과 비슷한 논리다.

과거 이들 법안에 대한 논의 중 대북전단에 대한 법적 제한은 남남(南南)갈등을 부추긴다는 주장이 민주당에서 제기된 적도 있다. 2008년 12월 8일 국회 외교통상통일위 법안심사소위에서다. 노무현 정부에서 외교통상부 장관을 지낸 뒤 당시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송민순 민주당 의원은 홍양호 통일부 차관에게 “만약 우리가 법을 만들어 ‘삐라(대북전단)’ 살포를 중단시키면 북한이 남북대화의 저해요소가 없어졌다고 판단할 거라고 보느냐”고 물었다. 이에 홍 차관이 “삐라 문제는 남남갈등의 소지가 되지 않도록 가능하면 법적인 것보다는 정부가 정책적으로 설득시켜 나가는 것이 우리 내부 국론통합을 위해서도 좋겠다”고 대답하자, 송 의원도 “법으로 해 놓으면 또 하나의 남남갈등이 생긴다”고 동의했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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