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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회견 빙자 집회 못막나" 美대사관, 경찰에 직접 물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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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 미국대사관이 한국 경찰에 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기자회견 형식의 집회를 제지할 방법이 없는지 문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 대사관 측이 외교부가 아닌 경찰에 이런 질의를 한 것은 이례적이다.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가 지난 4일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대사관 앞 반미 집회. 트위터 캡처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가 지난 4일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대사관 앞 반미 집회. 트위터 캡처

서울 종로구 미 대사관 앞 광화문 광장에선 3년째 민중민주당 주최 반미 집회가 열리고 있다. 민중민주당은 노동자ㆍ농민ㆍ소상공인이 주인인 정권 수립을 목표로 2016년 창당했다. 주한미군 철수를 주요 강령으로 내걸었다.

민중민주당원 20여명은 지난 3일 대사관 앞 광화문 광장에서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과 관련한 정당연설회를 열고 “미 제국주의에 의해 숨을 쉴 수 없다”는 구호를 외쳤다. 다음날인 4일엔 같은 장소에서 “문재인 정권은 해리스 대사를 즉각 추방하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집회를 열려면 미리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 민중민주당은 이틀 모두 신고를 하지 않아도 되는 ‘기자회견’으로 진행했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3일 정당연설회가 집회로 변질했다고 보고 내사에 들어갔다. 그러나 4일은 기자회견이라고 판단했다. 경찰 관계자는 “행사 목적과 행위, 발언 내용 등을 종합했을 때 4일 행사는 기자회견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법원은 기자회견 형식이더라도 구호를 외치거나 현수막ㆍ피켓을 들어 불특정 다수가 보고들을 수 있도록 할 경우 집회시위법상 집회로 보고 있다.

미 대사관은 4일 기자회견 직후 “기자회견과 집회에 어떤 차이가 있느냐. 기자회견을 빙자한 집회를 막을 수 없느냐”고 경찰에 질의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지키지 않은 점을 적용해 집회를 금지할 수 없는지도 물었다. 경찰 관계자는 "기자회견을 본 해리 해리스 대사가 대사관 보안담당관을 통해 경찰에 질의해왔다"고 설명했다. 전직 경찰청 고위 간부는 “외사국에서 일하는 동안 미 대사관이 경찰에 집회 관리 관련 의견을 구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기자회견이 집회로 변질했다는 이유만으로 해산시킬 수 없다”며 “법과 원칙에 따라 명백한 위험을 초래할 경우에만 해산하겠다”는 의견을 미 대사관 측에 전했다. 이에 대해 미 대사관 측은 “따로 언급할 내용이 없다”고 밝혔다.

신고하지 않은 집회는 집회시위법 등 관계 법령에 따라 위반 시 처벌한다. 하지만 기자회견은 헌법이 보장한 ‘표현의 자유’ 차원에서 폭넓게 인정한다. 민중민주당은 경찰이 미신고 집회라고 경고할 경우 기자회견이나 정당연설회라고 주장해왔다.

미 대사관은 반미 시위대의 표적이다. 지난해 10월엔 한국대학생진보연합(대진연) 회원 19명이 대사관저를 기습해 방위비 분담금 인상에 반대하는 시위를 했다. 미 국무부가 우려를 표시하기도 했다. 지난해 12월엔 국민주권연대가 대사관 앞에서 해리스 대사 참수 퍼포먼스를 하려다 가로막혔다.

앞서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는 4일 자신의 트위터에 민중민주당 사진과 함께 “시위자들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민주주의 국가인 한국에서 평화적으로 시위할 권리를 존중한다”는 글을 올렸다.

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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