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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리어로 웃돈 ‘현금 박치기’…분양권 다운계약 판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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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지난달 말 경기도 광주시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 사무실. 아파트 분양권을 산 A씨는 작은 여행용 캐리어를 열고 5만 원권과 1만원권 돈다발을 꺼내 매도자인 B씨에게 건넸다. 이 중개업소에서 일하는 직원이 지폐를 세는 기계로 돈다발을 셌다.

8월 전매금지 앞두고 시장 과열 #경기 광주·평택·안산·김포 등 #올들어 분양권 거래 50% 이상 급증 #웃돈 1억인데 계약서엔 1000만원 #양도세 아끼려 현금 받고 낮춰 계약

A씨가 이 분양권을 사기 위해 지불한 돈은 총 1억3600만원이다. 이 중 5600만원은 B씨에게 계좌 이체를 했고 8000만원은 이처럼 현금으로 건넸다. 계약서에 5600만원만 준 것으로 썼기 때문이다. 이른바 ‘다운 계약’이다. 해당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는 “주인이 다운 계약이 아니면 계약하지 않겠다고 해 사장이 A씨를 설득해 계약을 성사시켰다”며 “많은 현금을 넣을 곳이 마땅찮으니 요새는 캐리어에 담아 가져온다”고 말했다.

아파트 청약 시장에 이어 분양권 시장까지 달아오르면서 다운 계약이 판을 치고 있다. 새 아파트에 당첨되지 못한 청약 수요가 분양권 시장으로 몰리면서 웃돈이 오르고 매물이 귀해지자 다운 계약까지 등장한 것이다.

분양권 거래 급증한 주요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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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는 8월부터 사실상 전국에서 아파트가 완공(소유권이전 등기)될 때까지 분양권을 거래할 수 없게 된 영향이 크다.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규제지역이 아닌 수도권 및 지방 광역시 민간택지에서 건설·공급되는 주택의 전매제한 기간을 소유권 이전 등기 시까지로 강화한다고 밝혔다. 현재 수도권 과밀억제권역 및 성장관리권역과 지방 광역시 도시지역의 민간택지 전매제한 기간은 6개월이지만, 8월부터 확대 적용된다. 지금은 계약하고 6개월이 지나면 분양권을 사고팔 수 있지만, 8월부터는 당첨이 아니면 분양권을 갖는 게 사실상 힘들어지면서 수요가 몰리고 있다는 의미다.

실제 다운 계약은 그간 벗어나 있다가 이번에 규제를 받게 된 지역에서 활발하다. 대표적인 지역이 경기도 평택·안산, 인천 등지다. 경기도에 따르면 지난 1~5월 광주시 분양권 거래(468건)는 지난해 같은 기간의 2.8배 수준이다. 평택시도 지난해의 2배인 2733건이 거래됐다. 안산시(885건), 의정부시(599건), 파주시(501건), 양주시(366건)도 지난해보다 50% 이상 거래가 늘었다.

그간 해당 지역의 일부 거래가 다운 계약으로 이뤄졌다면 최근엔 지역 전체가 다운 계약을 하는 상황이다. 해당 부동산 중개업소에 따르면 지난 3월부터 전매할 수 있게 된 경기도 광주시 오포 더샵 센트럴포레 84㎡형(이하 전용면적)의 국토교통부 실거래가를 살펴보면 3월 1일부터 현재까지 거래 가격이 4억4993만~5억1701만원이다. 하지만 여기에 웃돈을 8000만~1억2000만원 더 얹어야 거래가 된다. 광주역 태전 경남아너스빌 73㎡형도 장부상 실거래 금액에 웃돈 8000만원을 더 줘야 거래가 된다.

다음은 기자와 분양권 거래를 중개하는 경기도 광주시의 한 공인중개사와의 전화 통화 내용이다.

기자: “다운(계약을) 안 할 수는 없는 건가요?”

공인중개사: “사모님, 다운(계약) 안 하는 물건은 없어요. 계약 못 하세요.”

기자: “웃돈이 1억인데 7000만~8000만원을 낮게 써서 계약하라고요?”

공인중개사: “네.”

기자: “그러면 제가 나중에 팔 때 불리한 거 아닌가요.”

공인중개사: “1주택자 아니세요? 어차피 (양도세) 비과세 받으니 상관없어요.”

다운 계약 적발되면 세금폭탄 맞지만…“요즘은 다운이 기본조건”

평택시도 사정은 비슷하다. 지난 4월부터 분양권을 거래할 수 있게 된 세교동 지제역 더샵 센트럴시티는 실제로는 분양가(평균 4억3000만원)보다 1억원 이상 비싸게 거래되고 있지만, 이달 국토부 실거래신고 가격은 분양가와 비슷한 4억2190만~4억5740만원이다. 평택시의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실제 거래 가격으로 계약하면 국토부 실거래가 시스템에서 내가 중개한 물건만 톡 튀어서 당장 단속 나오고 나는 이 동네에서 영업 못 한다”고 말했다.

다운 계약을 하는 이유는 세금 때문이다. 대개 매도자가 양도소득세를 아끼려고 제안한다. 예컨대 계약한 지 6개월이 지나서 전매가 풀린 분양권을 웃돈 1억원에 거래한다면 양도세가 50%라 5500만원(지방소득세 5% 포함)을 내야 한다. 그런데 1000만원으로 다운 계약을 한다면 550만원만 내면 된다. 매수자도 취득세를 아낄 수 있다. 또 매수자 대부분은 양도세 비과세 대상인 1가구 1주택자다. 안산시의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비과세라 부동산 가격이 올라도 타격이 없어서 거래가 가능한 것”이라며 “이전에는 다운 계약을 조건으로 웃돈을 좀 깎아줬는데 요즘은 아예 다운 계약이 기본 계약 조건”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다운 계약이 적발되면 거래가 무효가 되진 않지만, 많은 과태료를 내야 한다. 우선 탈세한 양도세와 취득세를 추가 납부해야 하고 탈세액의 40%인 신고 불성실 가산세, 탈세액을 미납했던 기간에 따라서 연 10.95%의 납부 불성실 가산세도 부담해야 한다. 실거래가 신고의무 위반으로 취득세의 3배 이하, 양도가격의 5% 이내 과태료도 부과된다. 다운 계약을 중개한 공인중개사는 업무 정지나 아예 공인중개사 자격이 박탈될 수 있다.

최현주 기자 chj8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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