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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팬데믹 시대, 지방 분산의 기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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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오영환
오영환 기자 중앙일보 지역전문기자
오영환 지역전문기자 겸 대구지사장

오영환 지역전문기자 겸 대구지사장

청정(淸淨) 청도군이 돌아왔다. 2월 말 대남병원의 코로나19 집단 감염(115명) 소용돌이에 빠졌던 경북 농촌 도시의 복원력은 강했다. 5일 찾은 도심 길가는 주차 행렬이었다. 인적이 끊기다시피 했던 석 달 전과는 딴판이었다. 청도시장 맞은편에선 생활용품 판매 각설이 공연이 벌어졌다. 바깥나들이 주민들의 마스크 착용률은 서울이나 대구보다 낮아 보였다.

코로나와 함께 사는 새로운 일상 #과밀, 과소 아닌 적소가 경쟁력 #수도권 일극 해소 대개조 나서야

3월 중순 이래 추가 확진이 나오지 않으면서 청도의 새로운 일상이 시작됐다. 폐쇄됐던 대남병원, 같은 건물의 보건소도 업무를 재개했다. 파크골프장을 비롯한 다중 시설도 하나둘씩 문을 열고 있다. 보건소 안내를 하는 노옹은 “청도가 유령도시에서 산수 좋은 본모습을 되찾고 있다”고 했다.

영천시도 주목거리다. 코로나19 특별재난지역인 대구·경산·청도와 접한 같은 생활권인데도 3월 7일까지 36명 확진 이래 지역 감염이 제로(0)다. 영천은 인구가 청도군의 2.4배(10만1758명)다. 대구 출퇴근 외에 노인복지시설이 많아 확산 우려가 컸던 곳이다. 안정 국면에 대한 시의 설명은 이렇다.

①2월 18일 첫 확진자 발생 다음 날 다중시설 640여곳의 임시 휴업을 결정했다 ②신천지교회 전담 대응반을 편성해 신도 전원의 검체 검사를 독려했다 ③민관군 합동으로 2296곳의 실내 소독과 3407곳의 실외 방역을 했다 ④자가 격리자마다 전담 공무원을 지정하고 1일 3회 모니터링을 했다…. 2, 3월 대구·경북의 긴박했던 상황에서 영천의 체계적 대응은 돋보인다.

서소문 포럼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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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지역 안정세는 민관의 노력 덕분이다. 그뿐일까. 지방 중소도시의 팬데믹 경쟁력도 빼놓을 수 없다. 코로나19는 밀집·밀접·밀폐의 ‘3밀(密)’을 파고든다. 뭉치면 위험하고 흩어지면 안전한 바이러스다. ‘나는 자연인이다’ 프로그램을 보면서 코로나19를 떠올릴 순 없다. 2017년 기준 청도의 인구밀도(1㎦당 인구)는 62명, 영천은 109명이다. 두 곳 모두 경북 평균(141명)을 밑돌고, 전국 평균(515명)보다 한참 낮다. 사람과 시설이 듬성듬성한 중소도시는 대처하기가 상대적으로 낫다. 들판과 바다, 산이 일터인 사람이 많다. 중소 도시는 행정력이 힘을 발휘하기 쉬운 규모이기도 하다.

메가시티는 팬데믹의 먹잇감이기에 십상이다. 사람과 건물이 몰려 있고, 이동이 많은 초(超) 집적·연결 사회다. 세계 코로나19 확진자 현황(존스홉킨스대, 7일 기준)을 보자. 1위 미국(192만여명), 2위 브라질(67만여명), 3위 러시아(45만여명)는 메가시티의 감염자 수가 두드러진다. 뉴욕이 20만여명, 상파울루가 14만여명, 모스크바가 19만여명으로 압도적이다. 도시의 공기는 바이러스에도 자유를 주는 법이다.

이웃 일본(1만7141명)도 도쿄도가 5343명으로 가장 많다. 도쿄 신주쿠구 유흥가는 긴급사태선언 해제 이후 확진의 새 진원이다. 이곳만큼 3밀인 장소는 드물다. 세계 추세에 견줘보면 서울(확진자 974명)은 선방 중이다. 하지만 도처에 복병이다. 시간이 갈수록 메가시티의 약한 고리가 불거져 나오고 있다. 팬데믹 앞에 메가시티는 꿈과 약속의 땅이 아니다. 진화하지 않으면 쇠퇴할지도 모른다. “19세기 다음에는 20세기가 오고, 그다음에 다시 19세기가 온다.” 메가시티의 팬데믹 문제에 대한 생물 역사학자 알프레드 크로스비의 30년 전 예견은 섬뜩하다. (『미국의 잊힌 팬데믹: 1918년 인플루엔자』)

코로나와 더불어(With Corona) 사는 새 일상은 불안하고 불편하다. 보이지 않는 손이 없다. 개인 안보의 방어선은 천차만별이다. 평소와 별반 차이 없는 배짱가에서 감옥 같은 생활을 하는 사람까지. 팬데믹과의 아슬아슬한 동거는 보다 안전한 소통·근로 방식, 일터· 놀이터·쉼터에 대한 새 흐름을 낳기 마련이다. SK텔레콤의 ‘수도권 거점 오피스 출퇴근’도 그 하나다. 사내 인재가 적절히 흩어져 일하는 적재적소(適材適疎)의 발상이랄까. 적소의 지평을 넓혀보면 중소도시다.

팬데믹 시대는 적소가 경쟁력의 한 요소다. 하지만 우리 현실은 수도권 과밀의 극점(極點) 사회다. 국토 면적 12%에 인구의 절반이 산다. 1000대 기업의 70%, 주요 공공·금융·의료 기관과 대학이 쏠려 있다. 팬데믹 위기가 덮치면 이만저만 취약한 구조가 아니다.

반면 지방은 과소(過疎)의 한계 마을이 수두룩하다. 코로나19 사태는 이 격차를 메우고 팬데믹 위기를 낮춰나갈 둘도 없는 기회다. 국토균형발전은 헌법상 가치이기도 하다. 지방으로 사람의 흐름을 돌리고, 공공기관·대학과 기업의 기능을 분산하는 국토 대개조의 구상이 아쉬운 시점이다.

오영환 지역전문기자 겸 대구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