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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당에서 안 보이는 세 가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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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채병건 기자 중앙일보 콘텐트제작Chief에디터
채병건 정치외교안보에디터

채병건 정치외교안보에디터

요즘 여의도 얘깃거리 중 하나는 미래통합당 지지율이다. 여당이 상식과 어긋나는 무리수를 강행하면서 슬슬 야당으로 견제 심리가 모일만도 한데 여론조사 결과는 그렇지 않다. 한국갤럽의 6월 첫 주 여론조사(6월 2∼4일)는 더불어민주당 43% 대 미래통합당 17%로 민주당이 압도적이다. 왜일까. 총선의 영향이 여전한 탓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그간 통합당이 국민에게 심어놓은 ‘통합당=이렇다’라는 고정관념이 강력하다. 통합당의 집단의식 속에선 다음의 세 가지가 잘 보이지 않는다.

윤미향 논란, 해외선 더 문제 알려야 #안보 정당인데 안보 고민보다 관성 #지지층만 상대, 바깥 세상 못 느껴

①역사의식이 안 보인다=2016년 9월 2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의 의회 건물. 에드 로이스 하원 외교위원장이 다소곳이 앉아있던 한 할머니를 향해 “결의안 통과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결의안은 2007년 7월 일본 정부의 위안부 피해자 강제동원을 인정한 미국 하원의 위안부 피해자 결의안이다. 앞서 2007년 2월 이용수 할머니는 미 하원 외교위의 아태·환경소위가 연 청문회에서 참혹했던 위안부 피해를 증언했다. 로이스 위원장은 위안부 결의안 채택 9주년을 기념하는 이 자리에서 이용수 할머니를 빠뜨리지 않았다.

윤미향 의원 논란이 초래할 가장 큰 문제는 나라 바깥에 있다. 국제사회에서 진행 중인 위안부 피해자 운동에 미칠 악영향이다. 민주당은 윤 의원을 살리면서 결과적으로 이용수 할머니를 뒤로 밀어냈다. 하지만 피해 당사자가 소외된 채 대리인이 국제사회를 설득할 수는 없다. 한국 국회에 위안부 피해자가 인정하지 않는 전직 활동가가 있는 한 일본은 이를 고리로 삼아 미국 조야를 상대로 집요하게 위안부 피해자 운동 흠집내기를 계속할 게 분명하다. 통합당은 이같은 위기의식을 느꼈어야 했다. 민주당에 “이용수 할머니인가, 윤미향 의원인가, 역사 앞에서 택하라”라고 말했어야 했다. 통합당이 이 점에 크게 주목하지 못했던 이유는 평소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서소문 포럼 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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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고민이 없다=통합당은 4·15 총선 정책공약집에서 ‘북한이 더 이상 이행하지 않는 9·19 남북군사합의를 폐기하겠다’고 선언했다. 9·19 군사합의는 태생적으로 한계가 있다. 북한 비핵화로 이어지지 않는 재래식 군축은 무의미하다. 이 합의 때문에 연평도에 있는 수십t 짜리 K-9 자주포를 배로 실어 육지로 끌고 와 포격 훈련을 한 뒤 다시 배로 실어 돌아가는 ‘안보 코미디’가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다.

남북 합의를 공식 파기하려면 냉철한 전략적 고민을 거쳐야 국민에게 믿음을 준다. 북한이 먼저 공개 파기할 가능성, 우리가 파기하면 북한이 핵·미사일 도발 명분으로 삼을 가능성, 파기 선언을 하지 않아도 결국 유명무실화할 가능성 등을 따져야 한다. 안보엔 ‘○ 아니면 ×’라는 이분법이 통하지 않는 대목이 있다. 그럼에도 통합당은 우리가 지향할 미래를, 지켜야 할 안보를 어떻게 현실화할지에 대한 고민이 없이 과거의 관성대로 움직이고 있다. 민심은 북한에 어이없어 하지만 북한을 비판하는 것만으로 표를 얻는 시대는 지나갔다. 안보에도 진정성이 필요하다. 통합당이 안보 정당이라면 복무 기간 단축은 이제 그만이라고 말할 용기가 있는지 궁금하다.

③시야가 좁다=수도권이 지역구였던 통합당의 전 의원은 지난주 통화에서 “총선을 앞두고 의원총회를 하는 데 뒤쪽에서 의원 몇 분이 ‘이번엔 이긴다. 정말로 이긴다’고 대화를 나누는 걸 들었다. 좀 어이가 없었다”고 말했다. 4·15 총선을 앞두고 그가 느낀 수도권 민심과 당내 일부 의원들의 인식은 완전히 달랐다. “숨은 표가 있다고 믿으니 객관적 데이터를 거부하고 분석도 하지 않는다. 그러니 어디를 찾아서 어떤 메시지를 낼지도 생각하지 않는다.”(여론조사 전문가 A) “주변에서 통합당이 이긴다는 얘기만 들었다면 ‘딴 세상’에 살고 있다는 얘기다.”(여론조사 전문가 B) 총선을 앞두고 나왔던 여론조사 전문가들의 세평이었다. 통합당은 분노한 야당 지지층만 상대하니 동굴 바깥에 있는 또 다른 세상을 느끼지 못 하는 게 한계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통합당 지지율이 낮은 데 대해 “무엇보다도 정권 창출에 대한 비전을 보여주지 않으면 지지율이 오르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나라를 바꾸려면 집권을 해야 하고 집권을 하려면 민심에 밀착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통합당 의원들의 속내는 정권 교체보다는 ‘다음 총선까지 4년이나 남았다’는 쪽에 더 가 있는 듯하다.

채병건 정치외교안보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