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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참전으로 판 커진 ‘기본소득’ 논쟁…“받고 더블로” 포퓰리즘 우려도

중앙일보

입력

‘포스트 코로나’를 관통하는 시대정신인가, 2022년 대선을 앞두고 벌어지는 포퓰리즘 경쟁인가.

전 사회 구성원에게 일정금액을 최소생활비 명목으로 지급하는 기본소득제가 정치권 최대 화두다. 지난 3일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배고픈 사람이 빵을 먹을 수 있는 물질적 자유”를 앞세워 기본소득 논쟁에 불을 붙인 데 이어 9일 여권의 유력 대선 후보인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코로나19국난극복위원장이 논의에 뛰어들며 판이 커졌다. 여기에 차기 여야 잠룡들도 논쟁에 가세하면서 2022년 대선 주요 의제로 조기 점화되는 형국이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코로나19국난극복위원장은 8일 "기본소득제의 취지를 이해하고 그에 관한 찬반 논의도 환영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코로나19국난극복위원장은 8일 "기본소득제의 취지를 이해하고 그에 관한 찬반 논의도 환영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이 위원장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 글을 통해 “기본소득제의 취지를 이해하고 그에 관한 찬반 논의도 환영한다”며 “기본소득제의 개념은 무엇인지, 재원 확보 방안과 지속가능한 실천 방안은 무엇인지 등의 논의와 점검이 이루어지길 바란다”고 했다. 이 위원장과 가까운 한 민주당 인사는 “메시지 속 표현은 논의가 이루어지길 바란다며 관전자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유력 당권ㆍ대권 주자로서 기본소득 논쟁에 참전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고 본다”고 말했다.

여권 잠룡들 '기본소득'에 총론 공감, 각론 이견 

기본소득제에 대한 주요 인사들의 입장. [연합뉴스]

기본소득제에 대한 주요 인사들의 입장. [연합뉴스]

여권에선 기본소득의 필요성에 대해선 대체로 공감하는 분위기지만 지급 범위와 규모, 재원마련 방안, 지급 시기 등 각론에 대해선 이견들이 팽팽히 맞선다. 코로나19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대상과 규모를 놓고 당ㆍ정ㆍ청이 줄다리기를 벌인 것과 비슷하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여권 내에서 가장 공격적으로 기본소득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지난 6일 페이스북에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기본소득은 피할 수 없는 경제 정책이며 다음 대선의 핵심의제”라며 신속한 제도화를 촉구했다. 8일엔 기본소득을 “저비용 고효율의 신경제정책”이라고 표현하며 다시 한번 드라이브를 걸었다. 정치권에선 ‘경기도민 재난지원금’의 학습효과가 작용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이 지사는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 전에 전 경기도민을 대상으로 한 재난지원금 지급을 결정하며 치고 나갔고, 이후 차기 대선 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이 위원장에 이어 2위를 달리며 ‘순항’ 하고 있다.

 이재명(오른쪽) 경기지사는 여권 내에서 기본소득과 관련한 가장 적극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반면 박원순 서울시장은 "기본소득보다 전국미 고용보험제가 훨씬 더 정의롭다"고 말하는 등 이 지사와 입장이 상충한다. [연합뉴스]

이재명(오른쪽) 경기지사는 여권 내에서 기본소득과 관련한 가장 적극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반면 박원순 서울시장은 "기본소득보다 전국미 고용보험제가 훨씬 더 정의롭다"고 말하는 등 이 지사와 입장이 상충한다. [연합뉴스]

박원순 서울시장은 ‘전 국민 고용보험’을 앞세워 차별화를 꾀하는 모습이다. “전 국민 기본소득보다 전 국민 고용보험제가 훨씬 더 정의롭다”면서다. 박 시장은 지난 7일 페이스북 게시글을 통해 “기본소득은 실직자와 대기업 정규직에 똑같이 월 5만원씩, 1년에 60만원을 지급할 수 있지만, 전 국민 고용보험은 실직자에게 월 100만원씩 1년 기준 1200만원을 지급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코로나19로 대규모 실업이 가시화한 현실에서는 실직자 구조가 더 시급하다는 얘기다.

김부겸 전 민주당 의원도 기본소득제의 필요성에 대해선 공감하지만 기존 복지제도를 축소하는 ‘보수적 기본소득제’ 도입에는 선을 긋고 있다. 김 전 의원은 지난 4일 페이스북 글에서 “기본소득은 복지 강화와 함께 가야 한다”며 “우선 전 국민 고용보험 도입 및 실업 부조와 같은 사회안전망 강화를 선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야당서도 논쟁 점화…홍준표 “사회주의 배급제”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5일 "기본소득을 당장 할 수 있다는 건 환상에 불과하다"고 말했지만, 잠룡을 중심으로 야당 곳곳에서 기본소득제에 대한 주장이 분출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5일 "기본소득을 당장 할 수 있다는 건 환상에 불과하다"고 말했지만, 잠룡을 중심으로 야당 곳곳에서 기본소득제에 대한 주장이 분출하고 있다. [연합뉴스]

기본소득제라는 보편적 복지 담론에 대한 보수 야당의 시각차는 상당히 크다. 김종인 통합당 비대위원장은 5일 기자간담회에서 “기본소득을 당장 할 수 있다는 건 환상에 불과하다”며 다소 유보적인 입장으로 선회하긴 했지만 지난 4일 “기본소득을 근본적으로 검토할 시기가 아닌가 생각한다”며 논의를 촉발시킨 뒤 의제를 선점한 인사로 각인되고 있다. 김 위원장은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경제ㆍ복지 교사 역할을 맡아 노인기초연금 공약을 밀어붙인 적도 있다.

야권의 잠룡들도 잇따라 기본소득 논쟁에 가세하며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지난 4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한국형 기본소득 도입을 집중 검토하겠다”며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유승민 전 통합당 의원도 최근 대학 특강에서 “기본소득제는 황당한 발상 같지만 유럽에선 이미 국민투표도 했다”며 “당장 실현은 어렵더라도 앞으로 고민해볼 문제”라고 말했다.

홍준표 무소속 의원은 기본소득제를 "사회주의 배급제"라고 표현하며 분명한 반대 입장을 밝혔다. [연합뉴스]

홍준표 무소속 의원은 기본소득제를 "사회주의 배급제"라고 표현하며 분명한 반대 입장을 밝혔다. [연합뉴스]

반면 홍준표 무소속 의원은 “기본소득제의 본질은 사회주의 배급제”라며 명확한 반대 입장을 보였다. 그는 8일 페이스북 게시글을 통해 “기본 소득제가 실시되려면 세금이 파격적으로 인상되는 것을 국민들이 수용해야 되고 복지체계를 전면 재조정해야 한다”며 “스위스 국민이 왜 기본소득제를 국민 77%의 반대로 부결시켰는지 알아나 보고 주장들 하시는지 참 안타깝다”고 했다.

기본소득의 시초격인 소수정당 기본소득당ㆍ시대전환에서는 정치권 논쟁을 오히려 비판적 관점에서 우려하고 있다. 조정훈 시대전환 공동대표는 8일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상당히 걱정되는게 ‘기본소득 30만원? 그럼 난 60만원’ 하는 ‘받고 더블’ 하는 식이다. 기본소득은 굉장히 중요한 어젠다지만 만만한 제도가 아닌 만큼 치열하고 정교한 준비가 필요하다”며 포퓰리즘식 논의구조를 비판했다. 앞서 지난 7일 용혜인 기본소득당 원내대표는 기자회견을 열고 “정치권이 기본소득을 이슈로만 이용하는 게 아니라 설계도를 구체적으로 마련해야 한다”며 “원내 7개 정당이 모두 참여하는 ‘기본소득 연석회의’를 열자”고 공개 제안했다.

여론은 찬반이 오차범위 내에서 팽팽히 맞섰다. 여론조사업체 리얼미터가 지난 5일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4.4%포인트)한 결과, 응답자의 48.6%는 “최소한의 생계 보장을 위해 찬성한다”고 답했다. 반면 42.8%는 “국가 재정에 부담이 되고 세금이 늘어난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잘 모르겠다’는 응답은 8.6%였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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