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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도 베컴도 애태운 13년전 '英소녀 실종'···범인은 뜻밖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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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3일 늦은 밤, 포르투갈 남부 프라이아 다 루즈(Praia da Luz)의 한 리조트에서 세 살짜리 소녀가 사라졌다. 이름은 메들린 매칸. 부모와 함께 휴가를 즐기러 온 영국 소녀다. 메들린 부모는 아이들을 재워놓고 잠시 저녁 식사를 하고 돌아왔다가 딸의 빈자리를 발견했다. 숙소 창문의 자물쇠는 뜯겨져 있었지만 범인의 흔적은 남지 않았다. 13년간 영국 국민을 애태운 메들린 매칸 실종사건은 이렇게 시작됐다.

2007년 포루투갈에 가족 여행을 갔다가 사라진 메들린 매칸(당시 3세). 사건의 유력 용의자가 13년 만에 독일에서 붙잡혔다. [AP=연합뉴스]

2007년 포루투갈에 가족 여행을 갔다가 사라진 메들린 매칸(당시 3세). 사건의 유력 용의자가 13년 만에 독일에서 붙잡혔다. [AP=연합뉴스]

영국과 포르투갈 수사 당국이 공조수사에 나섰고, 전 국민이 메들린 찾기 운동에 나섰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메들린의 무사 귀환을 위해 특별 기도를 올렸다. 축구 스타 데이비드 베컴도 메들린의 사진을 들고 방송에 출연해 힘을 보탰다. 넷플릭스는 2019년 이 사건을 주제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했고, 구글은 로고에 메들린의 눈을 합성했다. 13년간 메들린을 찾기 위해 들어간 수사 비용만 1100만 파운드(약 168억원)가 넘었다.

그러나 메들린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포르투갈 수사당국은 2008년 7월 사건을 종결했다.

포르투갈서 사라진 영국 소녀, 범인은 독일서 잡혀 

미제로 남을 뻔한 메들린 실종사건이 재점화됐다. 한 독일 남성이 사건의 유력 용의자로 지목되면서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용의자가 잡히면서 영국이 다시 들썩이고 있다.

3일(현지시간) 영국 런던경찰청은 기자간담회에서 “43세의 독일인 소아성애자가 2007년 발생한 메들린 매칸 실종사건의 용의자로 특정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용의자는 짧은 금발의 키 180cm 백인 남성이라고만 설명했다.

독일 수사당국은 4일(현지시간) "메를린 매칸은 이미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AP=연합뉴스]

독일 수사당국은 4일(현지시간) "메를린 매칸은 이미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AP=연합뉴스]

영국 일간 가디언·BBC 등 현지 언론은 4일 수사당국이 특정한 용의자가 독일 교도소에 수감 중인 크리스티안 브뤼크너(43)라고 보도했다. 브뤼크너는 2005년 포르투갈에서 72세 미국인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로 지난해 독일에서 유죄판결을 받았고 현재는 또 다른 청소년 성범죄 혐의로 복역 중이다. 과거에도 성폭행과 마약밀매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익명 제보가 결정적 단서로

보도에 따르면 영국 경찰은 지난 2017년 수사를 재개했다. “범인은 독일인”이라는 익명의 제보가 결정적이었다. 영국과 독일, 포르투갈 수사당국이 공조해 다시 수사에 나섰다.

영국 경찰은 2007년 포르투갈에 머물렀던 독일인들을 하나하나 찾아 나섰다. 이어 메들린이 사라진 리조트 인근에 머물렀고, 아동 성범죄 이력이 있는 용의자 600명을 추려냈다. 신상과 행적, 범죄 기록을 대조하니 브뤼크너가 특정됐다.

메들린 매칸 실종 사건의 유력 용의자가 2007년 5월 사용했던 재규어 차량. 영국 런던경찰청은 이 차량이 매칸 실종 사건과 관련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로이터=연합뉴스]

메들린 매칸 실종 사건의 유력 용의자가 2007년 5월 사용했던 재규어 차량. 영국 런던경찰청은 이 차량이 매칸 실종 사건과 관련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로이터=연합뉴스]

조사 결과 브뤼크너는 당시 2대의 차량을 소유하고 있던 것으로 추정됐는데, 그중 한 대의 명의가 메들린 실종 직후 바뀐 것으로 파악됐다. 또 휴대전화 기록 등 그의 행적도 범행과 연관된 것으로 드러났다. 독일 수사당국은 브뤼크너가 청소년 때 독일에서 아동 성범죄를 저질렀고, 1994년 유죄판결을 받았다고 알려왔다. 그는 1995년 포르투갈로 도망쳐 2007년까지 머무른 것으로 확인됐다.

메들린, 생존 가능성은? 

메들린 매칸이 살아있다면 올해 16세다. 메들린 부모가 메들린의 16세 모습을 추정한 합성 사진을 들고 있다. 부모는 여전히 메들린이 살아있을 것이라 말한다. [로이터=연합뉴스]

메들린 매칸이 살아있다면 올해 16세다. 메들린 부모가 메들린의 16세 모습을 추정한 합성 사진을 들고 있다. 부모는 여전히 메들린이 살아있을 것이라 말한다. [로이터=연합뉴스]

브뤼크너가 용의자로 지목되면서 영국·독일 수사당국도 속도를 내고 있다. 영국 법원은 브뤼크너가 살인 혐의로 기소되면 영국에서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가디언에 따르면 영국 시민이 해외에서 살해됐을 경우 용의자는 영국에서 재판을 받을 수 있다. 영국 수사당국은 독일인에 대한 수사권이 독일에 있는 만큼 범죄인 인도 조례 등에 따라 협조 요청을 보낼 방침이다.

다만 양국은 메들린의 생존 가능성을 두고 입장차를 보이고 있다. 독일 수사당국은 메들린이 이미 사망한 것으로 보고 브뤼크너의 범죄 입증에만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영국은 메들린이 사망했다는 직접적인 증거가 없다며 메들린 수색에도 공조해달라는 입장이다. 메를린이 살아있다면 올해로 16세다.

이민정 기자 lee.minj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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