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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10년 후에 죽는다면, 지금 무엇을 해야할까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백만기의 은퇴생활백서(61)

조기 은퇴를 꿈꾸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른바 ‘FIRE’족이다. 경제적 자립(Financial Independence)을 토대로 자발적 조기 은퇴(Retire Early)를 추진하는 사람을 말한다. 어느 부부의 사례다. 그들은 일하지 않는 삶을 위해 그동안의 생활패턴을 바꾸었다. 우선 고급 주택과 외제차를 포기하고 작은 집으로 이사했다. 주 2~3회 하는 외식도 끊었다. 이렇게 소비를 줄이면서 오히려 삶에 여유가 생겼다. 부부는 이렇게 남는 시간을 좀 더 가치 있는 일에 사용한다.

조기 은퇴를 꿈꾸기 위해선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 나이 마흔이 되었을 때다. 직장 생활을 시작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중년이 되었다. 문득 돈을 벌어야 하는 일을 언제까지 할 것인가 하는 물음이 떠올랐다. 아마 회사에 다니고 있는 직장인이라면 가끔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고심 끝에 나이 50에 은퇴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제 내게 10년이란 기간이 주어졌다.

10년 후에 은퇴하는 것으로 기한을 설정하자 해야 할 일이 눈에 들어왔다. 무슨 일을 하든 목표를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그때 가서 준비하지 하며 미루는 것과는 마음가짐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선은 경제적 자립을 해야 했다. 그때부터 소비를 줄이고 강제저축을 시작했다. 한때 연예인이었던 방미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월급 9만원을 타면 8만원을 저금했다고 한다. 이렇게 극단적으로 하지는 않았지만 소득의 많은 부분을 저금하려고 노력했다. 운이 좋았던 것은 당시 정기 예금의 금리가 연 20% 내외로 매우 높았다. 이런 사회적 여건의 도움으로 목표대로 50대 초에 자발적 은퇴를 했다. 그렇다고 여유가 있는 편은 아니어서 지금도 예나 다름없이 검소한 생활을 하고 있다.

미국의 심리학자 미루나 루이스는 60세 이후에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결정을 45세 이전에 내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이 50세가 되어서는 그동안 익숙해진 생활에 변화를 주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노후를 의미 있게 보내려면 40대부터 어떻게 삶의 부담을 줄여야 하고, 어떻게 생활을 단순화시킬 것인지에 대한 인생후반전 계획을 세워야 한다.

10년 후에 은퇴하는 것으로 기한을 설정하자 해야 할 일들이 눈에 들어왔다. 무슨 일을 하던 목표를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그때 가서 준비하지 하며 미루는 것과는 마음가짐이 다르기 때문이다. [사진 Pixabay]

10년 후에 은퇴하는 것으로 기한을 설정하자 해야 할 일들이 눈에 들어왔다. 무슨 일을 하던 목표를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그때 가서 준비하지 하며 미루는 것과는 마음가짐이 다르기 때문이다. [사진 Pixabay]

하루는 어느 신문사 기자가 찾아왔다. 기자는 인터뷰 말미에 은퇴준비는 언제부터 해야 하는지 물었다. 나는 그에게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 묻고 그 대학에 가기 위해 고1 때부터 공부하는 것과 고3 때부터 공부하는 것과 어느 쪽이 더 좋은가를 반문했다. 그는 당연히 고1 때부터 공부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은퇴준비도 이와 마찬가지다. 하루라도 더 일찍 할 수 있으면 그만큼 더 여유가 있다고 답을 했다. 그가 공감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은퇴를 앞두고 그 이후에는 무엇을 할 것인가 생각하다 보니 나중에는 죽음으로 귀착이 되었다. 죽음이야말로 사실상 인생의 은퇴라고 할 수 있다. 죽음준비도 은퇴준비와 마찬가지로 데드라인이 필요하다. 일단 나이에 상관없이 10년 후에 죽는다고 가정해보는 것이다. 물론 더 살 확률이 높지만 자칫 현실이 될 수 있는 가정이다. 그러면 지금 해야 할 일이 눈에 들어온다. 그동안 중요했다고 생각하는 가치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사진을 찍을 때 조리개를 조이면 주변은 흐려지고 초점이 명확해지는 것처럼 남은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가가 뚜렷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죽음 공부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삶의 공부라고 할 수 있다.

은퇴준비를 미룬 사람이 퇴직을 통고받고 당황하는 경우가 흔히 있다. 죽음준비를 미룬 사람도 그렇다.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을 통고받고 허둥지둥하다가 황망히 떠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아무리 삶을 잘 살아도 끝이 좋지 않다면 그 사람의 생애가 좋았다고 할 수 없다. 이것을 증명한 학자가 있다. 심리학자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대니얼 카너먼이다. 그에 의하면 사람은 마지막 기억 때문에 생애 평가가 좌우된다고 한다.

죽음준비는 어떻게 해야 할까. 위에서 얘기했듯이 은퇴준비와 유사하다. 우선 데드라인을 설정한 후 좀 더 가치 있는 일을 선택하는 것이다. 삶이 유한하다고 생각하면 쓸데없는 일에 정신 파는 일은 훨씬 줄어든다. 또한 자발적 퇴직이 바람직한 것처럼 죽음을 맞이하는 마음가짐도 그렇다. 자기 죽음을 남의 손에 맡기기보다는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다. 바로 존엄사다. 작년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했더니 80%가 찬성했다. 우리나라는 도입의 타당성을 인정하면서도 사회적 여건의 불비로 논의조차 못 하고 있다. 앞으로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다.

아름다운 인생학교 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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