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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 속에서도 ”엄마“ 불렀겠지…계모 학대에 숨진 9살 최후

중앙일보

입력

지난 1일 계모에 의해 여행 가방에 갇혔다가 이틀 만에 숨진 충남 천안의 A군(9). 7시간 동안 여행가방에 갇혀 있다가 출동한 119구급대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던 A군은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야 할 3일 숨을 거뒀다.

의붓아들을 여행가방에 감금해 숨지게 한 계모가 지난 3일 오후 영장실짐심사를 받기 위해 천안동남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JTBC 이우재 기자

의붓아들을 여행가방에 감금해 숨지게 한 계모가 지난 3일 오후 영장실짐심사를 받기 위해 천안동남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JTBC 이우재 기자

A군은 지난해 1월부터 친부, 계모 B씨(43), 계모의 친자녀 2명 등과 충남 천안시 백석동의 아파트에서 생활하기 시작했다. 계모가 데려온 자녀는 13살 누나, 10살 형이었다.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이던 A군은 계모 B씨를 ‘엄마’라고 부르며 따랐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숨진 아이, 지난해 1월부터 계모와 생활 #등교 개학 이틀 전 7시간 여행가방 감금 #학교에선 "정상등교했다면" 안타까워해

A군의 2학년 때 담임교사는 이번 소식을 듣고 충격에 빠졌다고 한다. A군이 다니던 학교 관계자는 “아이가 밝고 친구들과 잘 어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안타까워했다. 3학년이 된 A군의 담임은 지난 3월 학부모와 통화를 하고 가정통신문도 보냈다고 한다. 이때도 특별한 징후는 발견되지 않았다는 게 학교 측의 설명이다.

A군의 학교생활을 기록한 서류에도 가정폭력이나 학대 등의 내용은 남아 있지 않았다. 담임교사가 A군의 생활이나 부모와의 상담에서 별다른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학교 관계자는 물론 담임교사는 B씨가 계모인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B씨가 A군의 교육 문제에 열정적인 태도를 보여서였다.

지난 1일 오후 7시25분쯤 A군이 병원으로 옮겨지는 모습. 오른쪽 노란 옷이 계모 B씨. 연합뉴스

지난 1일 오후 7시25분쯤 A군이 병원으로 옮겨지는 모습. 오른쪽 노란 옷이 계모 B씨. 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등교가 연기되면서 이뤄진 온라인 강의를 A군은 빼놓지 않고 들었다고 한다. 학교에서 진행한 자가진단 앱에는 지난 1일까지 ‘등교 가능한 상태’로 표시돼 있었다. 학교 측은 2일 오전 A군의 온라인 강의를 수강하지 않자 확인에 나서 이날 9시 45분쯤 사고 소식을 알게 됐다.

A군이 다니던 학교 관계자는 “지난달 초 발생했던 사건을 학교에서 미리 알았더라면 더 큰 화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코로나19 사태로 등교하지 않은 아이들의 상태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과 교육 당국은 지난 1일 A군이 여행가방에 감금될 상황에 대해 “아이가 극도의 불안감과 공포감을 느꼈을 것”이라며 “놀이를 하는 과정에서 장롱 속에 잠깐 숨는 것도 두려운데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고 말했다. 계모의 완력을 이기지 못해 여행가방에 들어가 쭈그리고 몇 시간 동안 앉아 있던 아이가 안타까워서였다.

의붓아들을 여행가방에 감금해 숨지게 한 계모가 지난 3일 오후 영장실짐심사를 받기 위해 천안동남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JTBC 이우재 기자

의붓아들을 여행가방에 감금해 숨지게 한 계모가 지난 3일 오후 영장실짐심사를 받기 위해 천안동남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JTBC 이우재 기자

A군 주변에서는 계모와 친부가 지난해부터 아이를 학대하거나 폭행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반면 경찰은 “확인된 내용은 없다”며 선을 그었다. 다만 지난 5월 5일 한 차례 학대·폭행이 있었고 1일 여행가방에 감금한 사건만 확인됐다는 이유에서다.

A군은 어린이날인 지난달 5일 머리를 다쳐 집 근처 대학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당시 치료를 맡았던 의료진이 폭력의 의심해  보고했고 병원에서 회의를 거쳐 이틀 뒤인 7일 경찰에 관련 내용을 신고했다. 의료진은 가정폭력이나 학대 등이 의심되면 경찰에 의무적으로 신고해야 한다.

충남경찰청 관계자는 “친부와 계모가 훈육 차원에서 A군을 체벌했다고 주장하는 상황”이라며 “지난 5월 사건까지 병합해 사건을 폭넓게 조사 중”이라고 말했다.

천안·홍성=신진호·최종권 기자 shin.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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