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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나누면 다 가족? 소설가 손원평이 영화로 묻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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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영화에서 서진(김무열)은 가족의 변화로 인해 혼란에 빠진다. [사진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영화에서 서진(김무열)은 가족의 변화로 인해 혼란에 빠진다. [사진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집은 내가 가장 나다워지고 편히 쉴 수 있어야 하는 곳인데, 받아들일 수 없는 낯선 가치관의 사람이 돌아온다면 피가 섞여도 나는 그 사람을 가족이라고 인정할 수 있을까. 가족에 대한 저의 질문이었죠.” 4일 개봉하는 가족 스릴러 ‘침입자’로 장편영화 데뷔작을 내놓는 손원평(41) 감독의 말이다. 지난달 29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장편 감독 데뷔작 ‘침입자’ 4일 개봉 #실종 25년 만에 돌아온 여동생 #낯선 가치관 지닌 채 가족 앞 등장 #소설 『아몬드』 잇는 가족 스릴러

영화는 사고로 아내를 잃은 건축가 서진(김무열)이, 어릴 적 실종된 동생 유진(송지효)을 25년 만에 되찾으면서 휘말리는 기이한 사건을 그렸다. 잃어버린 아이가 기대와 다른 모습으로 돌아온다는 주제는 손 감독의 첫 장편소설  『아몬드』를 잇는 것이다. 2016년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한 이 소설은 해외 12개국에 수출되며 올해 일본서점 대상 번역소설 부문상을 차지했다.

25년 만에 돌아온 유진(송지효)과 조카 예나(박민하). [사진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25년 만에 돌아온 유진(송지효)과 조카 예나(박민하). [사진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손학규 전 바른미래당 대표의 딸로서도 화제가 된 그는 “가족을 포함, 개인적인 질문은 조심스럽다”며 답변을 꺼렸다. 다만 이 영화를 기획한 8년 전을 돌이키며 당시 “첫 아이를 얻으며 가족의 의미를 새롭게 자문했다”고 했다.

“부모라는 정체성을 갖게 되면서, 아이가 컸을 때도 상상해보게 됐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사랑으로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끝까지? 그런 질문들을 이야기로 풀어봤다”면서 “가깝고 보편적인 주제가 조금만 뒤틀렸을 때 오는 스릴이 흥미로워 스릴러 장르를 택했다”고 말했다.

그는 소설가로 먼저 이름을 알렸지만, 영화 경력이 더 앞섰다. 대학시절 국어 교양수업에서 ‘미술관 옆 동물원’ 시나리오를 접한 걸 계기로 영화에 눈뜬 이후 한국영화아카데미(KAFA)에서 영화 연출을 전공했다. 단편 ‘인간적으로 정이 안 가는 인간’(2005)으로 미쟝센단편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도 받았다.

손원평 감독과 주연 배우들의 촬영 당시 모습. [사진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손원평 감독과 주연 배우들의 촬영 당시 모습. [사진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소설도 그렇고 영화도 습작 기간이 오래 걸렸어요. 이번엔 진짜 될 것 같은데 안 되고, 이걸 한두 번 겪은 게 아니에요. 너무너무 찍고 싶은데 막판에 엎어지는 절망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소설 『아몬드』가 감정 표현 불능증을 앓는 16세 소년의 심리 묘사에 공들인 성장 이야기였다면, 이번 영화는 공포 서린 서양풍 전원주택, 최면술, 두 얼굴의 가족 등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의 익숙한 설정들이 더 눈에 띈다.

손 감독은 “작가로서 의무는 절대 우리가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을 들여다보고, 그 사람을 어떤 방식으로든 동의하지 못할지언정 인간 대 인간으로서 최소한 이해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는 것이라 생각한다”며 “그럴 수 있는 매체가 소설”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영화는, 자본이 들어간 상업영화는 담보해야 할 다른 것들이 많아 불가능하다”고 했다.

소설가에서 영화감독으로 변신한 손원평씨.

소설가에서 영화감독으로 변신한 손원평씨.

베스트셀러인 『아몬드』를 영화화할 수도 있었을 텐데.
“문의를 몇 번 받았는데 판권을 닫았다. 아이들이 책 잘 안 읽는 시대에 청소년들이 많이 읽고 독서의 즐거움을 느꼈다는 평이 기뻤기 때문이다. 한 번 영상으로 옮겨지면 상상의 여지가 없어지는 것 같아서 책의 형태로 남겨놓고 싶다.”
이번 영화에서 시각적으로 가장 공들인 장면은.
“예고편에도 나왔는데 (여동생이 돌아온 뒤) 가족들이 이상해져서 어떤 구도 안에 담긴 모습이 정물화처럼 보이기를 원했다. 집의 모습도 고즈넉하고 일상적인 모습에서 점점 이상하게 표백돼가고. 그런 표백된 집안에서의 정물 같은 느낌.”
애초 의도가 잘 구현됐다고 보나.
“만들면서 너무 오래 봐서, 판단의 영역을 넘어섰다. 거친 면도 있고 당연히 아쉽기도 한데, 지금은 코로나 시대에 다시 관객의 발걸음을 견인하는 첫 영화로서 안전하고 좋은 선례를 남기고픈 마음뿐이다.”

이번 영화는 3월 개봉하려 했으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세 차례나 연기됐다. 총제작비는 65억원 안팎, 관객 150만 명이 손익분기점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처음 개봉하는 한국 상업영화다.

손 감독은 “영화 ‘사냥의 시간’이 (코로나19 여파로) 넷플릭스로 간 게 너무 충격적이었다”면서 “힘들게 찍은 첫 상업영화를 극장 상영하는 게 큰 꿈이었는데 못 이루겠구나 생각했다. 관객들이 극장으로 들어오는 걸 눈으로 보기까진 실감 못 할 것 같다”고 했다.

작품의 설정처럼, 최악을 가정하는 편인가.
“부정적인 성격은 아니다. 잘 안 놀라고 잘 안 떨고 되게 무덤덤한데 저랑 반대되는 상황을 많이 생각해본다. 하나의 마음의 대비책 아닐까.”

요즘 그는 ‘침입자’ 개봉 준비에, 초등학생인 아이 개학까지 겹쳐 코로나19 속 대혼란을 겪었다며 웃었다.

“아이와 함께 저도 부모로 태어나서 같이 커가는 것 같아요. 놀랍고 고맙죠. 생각이 어떻게 뻗어갈지 모르지만, 지금은 동화 쓰는 게 목표에요. 제가 책을 언제 가장 좋아했더라, 하면 어릴 적이거든요. 어른이 돼서 쓰는 소설은 뭔가 괴로운데 동화는 써보니까 쓸 때도 재밌더라고요. 아이가 된 느낌으로 순수한 창작의 즐거움이 느껴져서요. 차기작은 7~8월에 네 남녀의 잔잔한 연애소설이 하나 나오고요, 이제 동화를 써보려고 합니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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