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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 판타지 속 판타지를 찾아서 29화. 용사

중앙일보

입력

희망을 잃지 않는 자, 앞서 나가는 자···그 이름은 용사

모두의 앞에 서서 희망을 주는 존재, 그것이 용사다. ‘반지의 제왕’ 프로도는 평범한 호빗이었지만 공포에 맞서 용기를 발휘해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용사가 되었다.

모두의 앞에 서서 희망을 주는 존재, 그것이 용사다. ‘반지의 제왕’ 프로도는 평범한 호빗이었지만 공포에 맞서 용기를 발휘해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용사가 되었다.

큰일입니다. 세상을 노리는 대마왕이 나타나 부하들을 내보내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군대와 기사가 맞서 싸우려 하지만, 대마왕의 군대는 너무도 강력해서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바랍니다. 누군가가 앞에 나서서 대마왕의 군대와 싸워주기를, 대마왕을 물리쳐주기를…. 과연 그 누군가는 우리 앞에 나타날까요?

세상이 완전한 어둠에 둘러싸여 모두가 겁에 질려 슬퍼할 때, 그는 나타납니다. 마왕에 맞서 세상을 구하는 존재, 용사는 수많은 판타지 작품의 주역으로서 이름을 남긴 존재입니다. 게임에서는 일본의 ‘드래곤 퀘스트’를 시작으로 수많은 작품에서 플레이어가 조종하는 주인공으로서 수많은 악과 맞서 싸워나갔죠. 용사는 영웅도 아닙니다. 영웅은 보통 세상을 구하는 것처럼 큰일을 이루는 사람을 가리키지만, 판타지 이야기 속 용사는 아직 세상을 구하거나 큰일을 이룬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죠.

판타지 작품에서 용사가 되기 위해서는 특별한 사례가 필요합니다. 가령 용사의 후손이거나, 몸에 어떤 표시가 있거나, 엑스칼리버처럼 특별한 무기를 얻거나 해야 하죠. 그 밖에도 신에게 선택되거나, 복권에 당첨되는 등…용사가 되는 계기는 다양하기 이를 데 없지만, 한 가지 중요한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용사라는 이름은 누군가가 아니라 자신이 직접 불러야 한다는 점이에요. 본래 영웅도 용사도 자기가 직접 부르는 말은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남이 불러주는 거죠.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라도 자신을 직접 영웅이나 용사라고 부른다면 부끄러울 것입니다.

하지만 판타지 모험담에서 용사는 조금 다릅니다. 그들은 자신을 용사라고 부르며 용사라고 행동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에게 용사라고 불리며 세상을 구하죠. 마치 백제와 신라가 싸웠던 황산벌 전투에서 화랑인 관창이 ‘나는 화랑으로서 항복할 수 없다’라고 했던 것처럼, 용사들은 ‘나는 용사이기 때문에, 용사로서 행동한다’라고 말합니다. 용사란 본래 ‘용맹스러운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무슨 일이든 용기 있게 나서는 사람. 이를테면 전쟁터에서 앞뒤를 가리지 않고 달려나가서 싸우는 사람을 용사라고 불렀죠. ‘참전용사’, ‘역전의 용사’처럼 전쟁터에서 활약했던 누군가를 기리면서 용사라고 부릅니다. 전쟁터에서 이름 없이 죽어간 누군가를 기리는 ‘무명용사’라는 말도 있죠.

판타지 이야기 속 주인공으로서의 용사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들은 남들보다 용맹하게 앞으로 나서 대마왕에 맞섭니다. 조금 특별한 것은 그들의 용맹이 혼자만의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죠. 많은 판타지 작품에서 용사는 동료와 함께 세상을 구합니다. 때때로 동료들이 용사보다 훨씬 강하기도 하죠. 물론 용사가 슈퍼 히어로처럼 강한 이야기도 적지 않습니다. 오직 용사만 쓸 수 있는 칼이나 용사만 사용하는 주문처럼 특수한 무언가가 등장하며, 보통 사람과는 다른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도 하죠.

하지만 모든 용사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 많은 작품, 특히 게임에서 용사는 전사도 아니고 마법사도 아닌 어중간한 인물로 등장합니다. 분명히 칼을 써서 싸울 수 있고 마법도 사용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마법도 어중간하고 칼솜씨도 전문적인 전사보다 떨어지는 그런 인물이죠. 때로는 활을 쏘기도 하지만 역시 레인저보다 잘하지 못합니다. 어느 것을 보아도 특출나지 못한, 어떤 면에서는 평범한 인물, 그것이 판타지 작품 속의 용사입니다.

그런데도 왜 용사는 판타지의 주역이 될 수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용사가 ‘용기 있는 사람’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모두가 어둠 속에서 자신감을 잃고 겁에 질려 있을 때 일어나는 한 사람, 그것이 용사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용사의 용기에 힘을 얻어 함께 일어나 희망을 품고 어둠에 맞서죠. J R R 톨킨의 소설『반지의 제왕』에서 주인공인 프로도는 전사가 아닙니다. 반지 원정대에서도 가장 약한 인물, 칼도 마법도 쓸 수 없는 평범한 호빗입니다. 하지만 그가 ‘절대반지’라는 공포에 맞서 분연히 일어나면서 모두가 그를 따라 세상을 구하는 여정에 나섭니다. 그리고 ‘모든 것은 프로도를 위해서’라며 악에 맞서 싸웁니다. ‘내가 반지를 파괴하겠어요’라고 선언한 그 순간 프로도는 용사가 되었던 것입니다. 때로는 일행 내에서 가장 약할지도 모르지만, 가장 용기 있고 꼭 필요한 때 그 용기를 발휘하며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존재. 그것이 바로 판타지의 주역으로서 용사에게 필요한 가장 중요한 조건입니다.

글= 전홍식 SF&판타지도서관장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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