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신(新)냉전이 시작된 것인가’라는 질문은 이제 유효하지 않다. 신냉전은 이미 현실이다. 이제 핵심 질문은 ‘신냉전은 어떻게 격화할 것이며, 그 사이에 낀 한국 정부와 기업의 갈 길은 무엇인가’다. 연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도 예정돼 있는 상황에서 한국의 전략적 선택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미·중 관계 전문가 4인의 조언 #최악 땐 남중국해 무력 충돌 가능성 #중국, 환율 조작 보복 나설 수도 #균형자론은 실력이 있을 때나 가능 #기업 리스크 줄일 우산 씌워줘야
미·중 관계 전문가 4인에게 조언을 구했다. 김흥규 아주대 중국정책연구소장, 이성현 세종연구소 중국연구센터장, 제임스 김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겸 워싱턴 사무소장, 국제경제학회장을 지낸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가나다순)다. 미·중 내 두루 인맥이 두터우며 양국 관계를 깊게 연구해 온 이들이다.
- 미·중 신냉전 최악의 시나리오는?
- 최병일 교수=“가장 간단하고 극적인 건 미·중 간 무역 1단계 합의 폐기다. 미국은 대부분의 중국산에 25%의 관세를 물리지만 가전 및 소비제품은 예외였는데 그 예외를 없애는 것이다. 미·중 간 반도체 갈등은 한국엔 재앙이다. 기술 생태계가 반으로 쪼개진다면 한국엔 퍼펙트 스톰이 몰려온다. 미국이 코로나19에 대한 손해배상을 의회 법안 통과를 통해 중국에 요구할 수도 있는데, 이는 미국 내 중국 자산 동결로 이어질 수 있다.”
이성현 센터장=“중국도 미국과의 디커플링을 꾸준히 준비해 왔다. 화웨이가 미국 부품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시작한 건 오래전이다. 최악은 미·중 간 군사 충돌이다. 남중국해 또는 대만해협에서의 긴장이 높아지고 있고 이는 우발적 군사 충돌로 번질 수 있다. 지금 미·중 갈등은 전대미문이다. 상상력을 발휘하며 대비해야 한다.”
김흥규 소장=“중국이 송나라 시절의 세력 균형을 원하는지, 명나라 시대의 폐쇄적 천하를 원하는지가 중요하다. 미국으로선 계속 중국 책임론을 내세우며 대중 무역을 줄이는 압박을 가할 수 있다. 최악으론 무력시위 가능성도 있다.”
제임스 김 선임연구위원=“미·중 관계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나빠질 수 있음을 확실히 인식해야 한다. 미국은 이미 중국이 싫어하는 두 가지 이슈인 홍콩과 대만을 적극 활용 중이다. 중국도 수출입 등 여러 보복 카드가 있다. 심각한 건 환율 조작을 통한 보복인데, 미 증시까지 흔들 수 있다. 중국이 실제로 작정한다면 대선 2~3개월 전인 8~9월을 노릴 가능성이 있다.”
- 최상의 시나리오는?
- 최 교수=“만약 중국이 가을에 열 공산당 당 대회와 같은 계기를 통해 추가 개혁개방 조치를 발표하면서 노선 전환의 신호를 보낸다면, 미국은 2단계 (무역) 합의로 자연스레 넘어갈 수 있다. 중국도 내년이 공산당 창당 100주년이니 분위기 전환이 필요하다. 다만 이럴 가능성이 작다는 게 문제다.”
이 센터장=“최상의 시나리오는 없다. 로맨틱한 생각은 접어야 한다. 한국은 미·중 양쪽에서 바람둥이로 낙인이 찍혔다. 바람피운 적도 없는데 말이다. 어느 쪽에서건 펀치를 맞는 건 피할 수 없고, 그 위력을 줄이는 데 집중해야 한다.”
김 소장=“올해 미국 대선까지는 미·중 간 묵시적 타협이 이뤄지는 게 한국으로선 최상의 시나리오지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 민주당의 조셉 바이든 전 부통령이 당선된다면 경쟁을 주로 하되 협력도 하며, 군사적으론 현상 유지를 택할 것이다. 우리로서는 그나마 약간의 운용 공간이 있는 구도다.”
김 선임연구위원=“중국이 매력 공세를 취한다면 얘기가 달라질 수는 있다. 중국이 2~3분기에 미국산 농산물뿐 아니라 자동차 등과 같은 제품을 전반적으로 대량 수입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반색할 것이다.”
- 한국 정부와 기업은 어떻게 해야 하나?
- 최 교수=“미국은 안보, 중국은 경제이니 섣불리 한쪽을 택해선 안 된다는 말은 멋지긴 해도 불가능하다. 균형자론은 균형을 잡을 수 있는 실력이 있을 때야 가능하다.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논란 때 봤듯 차이나 리스크를 줄여야 하고, 동시에 트럼프 리스크도 줄여야 한다. 어느 한쪽에 집중한 공급망은 안 된다. 중국의 공장을 빼오는 게 아니라, 한국에도 공장을 지으면서 노동시장의 유연성에 관한 새로운 사회 계약을 만들어야 한다. 정부·자본·노동이 함께 회복 탄력성을 갖춰 나가야 한다. 중국과 운명공동체라는 말을 할 때가 아니다. 정부는 지금 ‘기업이 알아서 하라’는 식인데, 큰 우산은 씌워줘야 한다.”
이 센터장=“한국은 최근까지도 미·중 갈등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했다. 외교부도 최근에야 미국과 중국 근무 경험자를 교차 배치하는 등 양국을 모두 아는 전문가를 양성하기 시작했는데, 10년 전부터 그랬어야 한다. 정부가 ‘기업이 결정할 문제’라고 나오면 책임 유기다. 미·중 모두 화웨이와 5G통신 문제를 자국 안보 면에서 접근한다.”
김 소장=“신냉전 구도에선 고래 등에 낀 새우 신세보다는 살길 잘 찾아 빠져나가는 미꾸라지나, 때에 따라 독을 품을 수 있는 복어가 되는 전략이 필요하다. 중소기업은 중국, 대기업은 미국과의 관계 강화가 필요하다. 친미냐 친중이냐는 이분법적 사고를 넘어서야 한다. 때론 친중, 때론 친미, 때론 친일 정책까지도 동시에 전개할 수 있어야 한다. 정부는 조직을 전면 개편해 전문가들의 집단지성을 참고하고, 호주 등 타국과 연대해야 한다. 코로나19의 방역 성공으로 국가 위상이 높아진 지금이 좋은 기회다.”
김 선임연구원=“10~20년 앞을 내다보고 잘 계산해야 한다. 만약 중국을 택한다면 미국, 그리고 기타 자유민주주의 국가들과는 헤징(hedging·위험 분산)을 해야 한다. 확실한 것은 미·중 관계가 나빠질 뿐, 좋아질 일은 없다는 것이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