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중 양쪽서 바람둥이 낙인찍혀…독 품은 복어 전략을”

중앙일보

입력 2020.06.01 00:02

업데이트 2020.06.01 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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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미·중 신(新)냉전이 시작된 것인가’라는 질문은 이제 유효하지 않다. 신냉전은 이미 현실이다. 이제 핵심 질문은 ‘신냉전은 어떻게 격화할 것이며, 그 사이에 낀 한국 정부와 기업의 갈 길은 무엇인가’다. 연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도 예정돼 있는 상황에서 한국의 전략적 선택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미·중 관계 전문가 4인의 조언
최악 땐 남중국해 무력 충돌 가능성
중국, 환율 조작 보복 나설 수도

균형자론은 실력이 있을 때나 가능
기업 리스크 줄일 우산 씌워줘야

미·중 관계 전문가 4인에게 조언을 구했다. 김흥규 아주대 중국정책연구소장, 이성현 세종연구소 중국연구센터장, 제임스 김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겸 워싱턴 사무소장, 국제경제학회장을 지낸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가나다순)다. 미·중 내 두루 인맥이 두터우며 양국 관계를 깊게 연구해 온 이들이다.

전문가의 조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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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신냉전 최악의 시나리오는?
최병일 교수=“가장 간단하고 극적인 건 미·중 간 무역 1단계 합의 폐기다. 미국은 대부분의 중국산에 25%의 관세를 물리지만 가전 및 소비제품은 예외였는데 그 예외를 없애는 것이다. 미·중 간 반도체 갈등은 한국엔 재앙이다. 기술 생태계가 반으로 쪼개진다면 한국엔 퍼펙트 스톰이 몰려온다. 미국이 코로나19에 대한 손해배상을 의회 법안 통과를 통해 중국에 요구할 수도 있는데, 이는 미국 내 중국 자산 동결로 이어질 수 있다.”

이성현 센터장=“중국도 미국과의 디커플링을 꾸준히 준비해 왔다. 화웨이가 미국 부품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시작한 건 오래전이다. 최악은 미·중 간 군사 충돌이다. 남중국해 또는 대만해협에서의 긴장이 높아지고 있고 이는 우발적 군사 충돌로 번질 수 있다. 지금 미·중 갈등은 전대미문이다. 상상력을 발휘하며 대비해야 한다.”

김흥규 소장=“중국이 송나라 시절의 세력 균형을 원하는지, 명나라 시대의 폐쇄적 천하를 원하는지가 중요하다. 미국으로선 계속 중국 책임론을 내세우며 대중 무역을 줄이는 압박을 가할 수 있다. 최악으론 무력시위 가능성도 있다.”

제임스 김 선임연구위원=“미·중 관계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나빠질 수 있음을 확실히 인식해야 한다. 미국은 이미 중국이 싫어하는 두 가지 이슈인 홍콩과 대만을 적극 활용 중이다. 중국도 수출입 등 여러 보복 카드가 있다. 심각한 건 환율 조작을 통한 보복인데, 미 증시까지 흔들 수 있다. 중국이 실제로 작정한다면 대선 2~3개월 전인 8~9월을 노릴 가능성이 있다.”

전문가의 조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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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의 시나리오는?
최 교수=“만약 중국이 가을에 열 공산당 당 대회와 같은 계기를 통해 추가 개혁개방 조치를 발표하면서 노선 전환의 신호를 보낸다면, 미국은 2단계 (무역) 합의로 자연스레 넘어갈 수 있다. 중국도 내년이 공산당 창당 100주년이니 분위기 전환이 필요하다. 다만 이럴 가능성이 작다는 게 문제다.”

이 센터장=“최상의 시나리오는 없다. 로맨틱한 생각은 접어야 한다. 한국은 미·중 양쪽에서 바람둥이로 낙인이 찍혔다. 바람피운 적도 없는데 말이다. 어느 쪽에서건 펀치를 맞는 건 피할 수 없고, 그 위력을 줄이는 데 집중해야 한다.”

김 소장=“올해 미국 대선까지는 미·중 간 묵시적 타협이 이뤄지는 게 한국으로선 최상의 시나리오지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 민주당의 조셉 바이든 전 부통령이 당선된다면 경쟁을 주로 하되 협력도 하며, 군사적으론 현상 유지를 택할 것이다. 우리로서는 그나마 약간의 운용 공간이 있는 구도다.”

김 선임연구위원=“중국이 매력 공세를 취한다면 얘기가 달라질 수는 있다. 중국이 2~3분기에 미국산 농산물뿐 아니라 자동차 등과 같은 제품을 전반적으로 대량 수입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반색할 것이다.”

한국 정부와 기업은 어떻게 해야 하나?
최 교수=“미국은 안보, 중국은 경제이니 섣불리 한쪽을 택해선 안 된다는 말은 멋지긴 해도 불가능하다. 균형자론은 균형을 잡을 수 있는 실력이 있을 때야 가능하다.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논란 때 봤듯 차이나 리스크를 줄여야 하고, 동시에 트럼프 리스크도 줄여야 한다. 어느 한쪽에 집중한 공급망은 안 된다. 중국의 공장을 빼오는 게 아니라, 한국에도 공장을 지으면서 노동시장의 유연성에 관한 새로운 사회 계약을 만들어야 한다. 정부·자본·노동이 함께 회복 탄력성을 갖춰 나가야 한다. 중국과 운명공동체라는 말을 할 때가 아니다. 정부는 지금 ‘기업이 알아서 하라’는 식인데, 큰 우산은 씌워줘야 한다.”

이 센터장=“한국은 최근까지도 미·중 갈등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했다. 외교부도 최근에야 미국과 중국 근무 경험자를 교차 배치하는 등 양국을 모두 아는 전문가를 양성하기 시작했는데, 10년 전부터 그랬어야 한다. 정부가 ‘기업이 결정할 문제’라고 나오면 책임 유기다. 미·중 모두 화웨이와 5G통신 문제를 자국 안보 면에서 접근한다.”

김 소장=“신냉전 구도에선 고래 등에 낀 새우 신세보다는 살길 잘 찾아 빠져나가는 미꾸라지나, 때에 따라 독을 품을 수 있는 복어가 되는 전략이 필요하다. 중소기업은 중국, 대기업은 미국과의 관계 강화가 필요하다. 친미냐 친중이냐는 이분법적 사고를 넘어서야 한다. 때론 친중, 때론 친미, 때론 친일 정책까지도 동시에 전개할 수 있어야 한다. 정부는 조직을 전면 개편해 전문가들의 집단지성을 참고하고, 호주 등 타국과 연대해야 한다. 코로나19의 방역 성공으로 국가 위상이 높아진 지금이 좋은 기회다.”

김 선임연구원=“10~20년 앞을 내다보고 잘 계산해야 한다. 만약 중국을 택한다면 미국, 그리고 기타 자유민주주의 국가들과는 헤징(hedging·위험 분산)을 해야 한다. 확실한 것은 미·중 관계가 나빠질 뿐, 좋아질 일은 없다는 것이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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