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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숙 사건으로 '제2 과거사위' 만드나…검찰 압박하는 추미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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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숙 전 국무총리 사건에 대한 재조사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장자연 리스트ㆍ김학의 성접대 사건 때처럼 진상조사위원회를 별도로 꾸려 조사하는 방안도 언급된다. 검찰 내에서는 “검찰 개혁을 빌미로 이미 확정 판결이 난 사건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를 통해 수사하려는 포석”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제2의 ‘과거사위’ 언급한 추미애

한명숙 전 총리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 재조사를 놓고 20일 국회 법사위에서 여야가 공방을 벌였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검찰의 수사관행에 문제가 있었다’며 재조사 필요성에 공감을 표했다. [뉴시스]

한명숙 전 총리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 재조사를 놓고 20일 국회 법사위에서 여야가 공방을 벌였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검찰의 수사관행에 문제가 있었다’며 재조사 필요성에 공감을 표했다. [뉴시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지난 29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한 전 총리 사건에 대해 “검찰도 ‘과거사 진상조사위’를 꾸려 문제의 소지가 있었던 사건을 다시 들여다본 적이 있다”며 “검찰 조직을 지휘하고 있는 입장에서 한 전 총리 사건도 예외 없이 한번 진상조사는 해봐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추 장관은 과거 한 전 총리에게 9억원의 뇌물을 전달했다고 진술했다가 이를 번복한 고 한만호씨의 비망록도 언급했다. 한씨의 비망록은 이미 당시 한 전 총리 재판부에 제출돼 ‘거짓’ 판단을 받은 자료다. 하지만 이에 대해 추 장관은 “비망록의 보지 못한 부분에 ‘(검찰이) 기획으로 끌고 가기 위해서 증인을 70여 차례 이상 불러내서 말을 맞추고, 그중에 남아 있는 신문 조서, 진술 조서는 5회에 불과하다’는 내용이 있다”고 소개했다.

당시 검찰이 비망록을 거짓으로 몰고 가기 위해 ‘기획’했을 수 있으니 진상 조사를 통해 이를 처음부터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 전 총리 사건을 위한 ‘검찰 과거사위원회 2탄’이 생길 수 있다는 얘기다. 앞서 이 정부 들어 법무부에 설치된 과거사위는 장자연 사건ㆍ김학의 성접대 의혹 등 수사가 종결됐던 사건을 1여년 간 재조사한 결과 검찰 수사에 위법ㆍ외압 등이 있었음을 밝혀냈고, 사건 관련자들이 다시 기소돼 재판을 받기도 했다. 법무부는 진상 조사 주체와 방식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수사팀이 회유했다” 연달아 폭로

 한명숙 전 국무총리. [중앙포토]

한명숙 전 국무총리. [중앙포토]

한 전 총리 사건 관련자들의 폭로도 이어지고 있다. 한 전 총리 재판 당시 증인으로 법정에 섰던 A씨는 지난 4월 초 법무부에 ‘조사 과정에서 검찰이 위증을 교사했다’는 취지의 진정을 냈다. A씨는 한만호씨의 동료 수감자다.

A씨는 지난 2011년 재판에서 ‘한만호가 한명숙에게 돈을 줬다고 구치소에서 말하는 것을 내가 들었다’고 증언하며 검찰 편에 섰다. 하지만 이는 사실 검찰의 압박과 회유에 따른 거짓 증언이었다는 게 진정의 내용이다. 한만호씨의 또다른 구치소 동료 수감자인 B씨도 당시 수사팀 13명을 모해위증교사 등 혐의로 고발하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그는 수사팀이 자신에게도 검사실에서 삼겹살을 구워줘 가며 회유를 시도했다고 주장했다. 다만 B씨는 당시 증인으로 채택돼 법정에 서진 않았다.

법조계 “위증교사 맞는지 따져봐야”

만일 진상 조사를 통해 검찰의 위증 교사가 사실로 드러난다면 수사팀에 대한 징계나 형사 처벌이 이루어져 재심 사유가 될 수도 있다. 형사소송법상 수사에 관여한 검사가 직무에 관한 죄를 범한 것이 확정판결로 증명될 때 재심 청구가 가능하다는 규정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법조계는 한 전 총리 재심 논란 자체에 회의적인 의견이 많다. 이미 확정판결 난 사건을 뒤집을 만큼 결정적인 증언이나 증거가 나왔는지 냉정히 봐야 한다는 것이다. 판사 출신 이현곤 변호사는 “위증교사죄는 허위 사실을 말하라고 강요했을 때 성립이 되는데, 당시 한 전 총리가 돈을 받았다는 다른 증거들이 많아서 수사 기관은 이를 확신하던 상황”이라며 “삼겹살을 구워줬건 말건 수사팀은 혐의 사실과 관련해 추궁한 것뿐인데 재소자들이 이를 다르게 받아들였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수사팀은 한 전 총리 관련 주장이 나올 때마다 적극 입장문을 내고 반박하고 있다. 수사에 관여한 한 검사는 “지금 검찰 위증교사를 주장하는 B씨는 사기, 횡령 혐의로 법원에서 십수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은 인물이고 제대로 신뢰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법정에도 서지 못한 인물”이라며 “삼겹살이건 초밥이건 수십만원을 써가며 재소자들을 대접한 적도 없다”고 말했다. 한 현직 검사는 “사법부의 판결을 무시하고 여권이 제 식구 ‘유죄 뒤집기’를 하려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며 공수처를 통해 ‘윤석열 검찰’을 압박하기 위한 포석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사라 기자 park.sar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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