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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 핸드폰사진관] '가장 슬픈 운명의 꽃' 논에서 피는 매화마름

중앙일보

입력

 세상에서 가장 슬픈 운명의 꽃을 꼽으라면
바로 매화마름입니다.

조영학 작가가 들려주는 그들의 운명은 이렇습니다.
"얘들은 논에서만 사는데
 꽃이 피고 질 때쯤,
 논갈이하지 않으면 종족 번식을 할 수가 없어요.
 만약 논갈이하지 않으면 씨가 물 위에 둥둥 뜨는 데,
씨가 워낙 약하여 높은 온도에 녹아버려요.
반드시 경작해야만 땅에 스며들어
 그다음 해에  꽃을 피울 수 있어요."

워낙 경쟁력이 약해 다른 잡초를 피해 논에 터 잡은 친구들입니다.
그런데 땅속에 스며들어야만 씨를 퍼트릴 수 있는 겁니다.
어찌 이리도 기구한 운명일까요?

농사를 짓지 않으면 종족을 지킬 수 없는 얘들인 거죠.
논이 점점 개발되면서 멸종위기에 처한 지 오래입니다.
지금은 안면도, 강화도에만 남아있는 형국입니다.
처음 이 친구들을 만난 건 안면도입니다.
아직 논갈이하지 않은 마른 땅에 있었습니다.
그 척박한 땅에서도 용케 살아내고 있었습니다.

꽃은 매화를 닮고
잎은 붕어마름을 닮아
매화마름입니다.
새끼손톱보다 작지만, 자세히 들여다보십시오.
매화를 참 많이 닮았습니다.

물속에 있는 매화마름이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강화도를 찾았습니다.
멸종위기에 처한 매화마름을 보존하는 군락지가 강화도에 있습니다.
시민들의 성금으로 땅을 사 지켜내고 있습니다.

한창 고울 때 찾았습니다.
앙증맞은 꽃들이 논을 덮으니 장관입니다.
물속에 든 매화 천지입니다.

소금쟁이들이
매화마름 꽃 사이를 오가며 수면을 탑니다.
셀카봉을 한껏 늘여서
소금쟁이 바로 위에서 클로즈업했습니다.
물속에 들어가서 사진 찍을 수는 없죠.
소중히 보호해야 할 매화마름이니까요.
여기선 셀카봉이 꽤 효율적입니다.
이런 상황에선 셀카봉에 장착된 휴대폰이
DSLR보다 더 낫습니다.

논에 물을 대는 호스에 난 구멍에서
작은 분수처럼 물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 분수가 매화마름이 있는 수면으로 떨어집니다.
수면에 물방울이 동동 떠다니는 것처럼 보입니다.
꽃에 달린 물방울 하나,
마치 매화마름의 슬픈 운명처럼 여겨집니다.

이 장면 촬영 상황과
조영학 작가가 들려주는 매화마름의 기구한 사연이
동영상에 담겨 있습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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