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재 핸드폰사진관] 수정인 듯 꽃인 듯 '나도수정초'

중앙일보

입력 2020.06.15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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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이 친구 사진을 본 적 있습니다.
품은 빛을 온몸으로 내뿜고 있는 이 친구,
이름을 알고 나서야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습니다.
'나도수정초'였습니다.
사진 속 이 친구는 꽃인 듯 수정인 듯했습니다.
그 청초한 모습에 홀렸습니다.

이 친구를 만날 수 있는 장소를 수소문했습니다.
'장소를 공개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면 알려주겠다는
지인이 있었습니다.
이는 그만큼 소중히 보호해야 한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리하겠다고 약속한 터라 여기서도 장소 공개를 하지 않겠습니다.

낙엽 수북한 나도수정초 자생숲에 들었습니다.
낙엽 더미에서 홀로 불쑥 선 친구를 만났습니다.
채도 낮은 낙엽 속에서 홀로 새하얀  친구,
마치 숲의 요정이,
우주에서 온 외계인이
손들어 인사 건네는 듯합니다.

국내 자생지가 10여곳뿐일 정도로 귀한 꽃이라면서
조영학 작가가 들려준 이야기는 이러합니다.
"생김새가 이래서 그렇지 그래도 갖출 건 다 갖췄어요.
꽃대 하나마다 꽃이 하나 열리는데,
꽃잎 안에 파란 게 암술대이고
그 주변에 노란 게 꽃밥이에요.
이 얘들은 엽록소가 없으니까 광합성을 못해요.
꽃이면서 균처럼 살아가는 얘들인 거죠.
식물이나 동물 사체가 부패한 걸 먹고사는
부생식물입니다.
8월 초에 피는 수정난풀이 있어요.
이 친구와 닮았다고 해서 나도수정초라는 이름을 얻었는데
인물은 나도수정초가 확실히 더 낫습니다."

뭇 생명이 자연으로 돌아가는 낙엽 더미에서
청초하게 피어나는 친구들이니 더 곱습니다.
낙엽 더미에서 올라오고 있는 두 친구를 만났습니다.
짙은 숲 그늘이라 좀 아쉽습니다.
이들의 삶엔 그늘이 나을 테지만,
품은 빛을 수정처럼 뿜어내는 모습을 고대한 터니 아쉬웠습니다.
숲 그늘을 비집고 들어올 한 줌 햇살을 기다렸습니다.

드디어 숲에 빛이 들었습니다.
꽃잎이 투명한 듯 빛납니다.
기다렸던 빛이 들었건만,
사진으로 표현하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빛이 든 꽃잎을 살리자니
암술대와 꽃밥이 어둡게 표현됩니다.
그렇다고 이 상황에 암술대와 꽃밥을 살리려 노출을 조정하면
빛 받은 꽃잎이 하얗게 없어져 버립니다.
꽃잎을 살리자니 암술대와 꽃밥이 울고,
암술대와 꽃밥을 살리자니 꽃잎이 우는 상황이니
어찌해야 할까요?

해결책은 손전등입니다.
얼른 꺼내 꽃 속으로 빛을 비춰줬습니다.
원했던 그 모습이 화면에 나타났습니다.
더구나 푸른 빛을 머금은 손전등이라
꽃이 푸른 빛을 내는 수정처럼 표현됩니다.
'나도수정초'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모습입니다.

사실 이러한 사진을 찍을 때
관건은 빨리 촬영을 끝내야 하는 겁니다.
숲을 비집고 들어 온 빛은 이내 사라집니다.
그 빛이 사라지기 전에 신속하게 촬영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빛에 약한 친구들이니
촬영 후 낙엽으로 살짝 덮어줘야 합니다.

나도수정초를 촬영하는 제 휴대폰 카메라 화면과,
조영학 작가의 '나도수정초' 이야기는 동영상에 담겨있습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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