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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문장으로 읽는 책

도리스 레싱 『고양이에 대하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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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양성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고양이에 대하여

고양이에 대하여

그것으로 끝이었다. 다시는 이런 일을 겪지 않으리라. 그 뒤 오랫동안 나는 친구네 집의 고양이, 가게의 고양이, 다른 농가의 고양이, 거리에서 본 고양이, 담장 위의 고양이, 기억 속의 고양이를 그 푸르스름한 회색의 얌전한 고양이와 비교해보았다. 기분 좋게 목을 골골 울리던 그 녀석은 내게 유일한 고양이, 무엇도 대신할 수 없는 고양이였다.

도리스 레싱 『고양이에 대하여』

굳이 고양이가 아니어도 괜찮다. 무언가 하나뿐인 소중한 것을 잃어본 사람이라면 쉽게 넘기기 힘든 문장이다.

2007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도리스 레싱이 쓴 고양이 예찬이다. 여성해방·인종차별·이념갈등 등 사회적 모순을 천착하는 묵직한 작품 세계와 달리 고양이 예찬 글은 다정하고 사랑스럽다. 뉴욕타임스는 “레싱의 따뜻한 관찰이 담긴 글을 읽으면, 진짜 고양이들의 세상으로 들어가는 문이 열리는 듯하다”고 평했다. 2013년 세상을 떠날때까지 평생 여러 고양이를 기르고 관찰한 레싱은 “고양이와 함께 사는 것은 정말 대단한 호사”라고 썼다.

인용문 속 “푸르스름한 회색의 얌전한 고양이”는 어린 레싱이 길렀던 고양이다. 찬바람이 파고드는 “내 침대로 올라와 자리를 잡고 나의 병, 음식, 베개, 잠을 함께 나눈…고양이, 내 친구”였다.

시인 황인숙이 소개글에 쓴 것처럼 첫 문장부터가 매혹적이다. “집이 언덕 위에 있는 관계로, 바람을 타고 덤불 위를 빙빙 도는 매나 독수리가 내 눈과 같은 높이에 있을 때가 많았다. 어떤 때는 내 눈높이가 오히려 더 높았다.”

양성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