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악한 공공의료 서비스

중앙일보

입력

서울 후암동에서 식당일을 하는 이영임(李影臨.38.여) 씨는 차라리 생활보호 대상자가 부럽다.폐렴을 앓고 있는 아들 때문에 보건소를 자주 찾지만 의약분업 이후 보건소 가기가 겁난다.

"의약분업 전에는 1천1백원이면 진료도 받고 3일분 약도 받았는데 지금은 처방전료 5백원과 약값 중 본인부담금 4천2백원 등 3천6백원이 더 든다" 고 했다. 남편이 집을 나갔지만 호적에는 남아있어 의료보호 혜택을 받지 못한다.

생활보호대상자가 아닌 서민 이연우(李硏禹.71) 씨는 "관절염으로 의약분업 시행 전에는 한 달에 한번씩 보건소를 찾았는데 지금은 약값을 줄이기 위해 3일에 한번씩 보건소를 찾고 있다" 고 말했다.

진료비가 8천원이하여야 1천원만 내는 혜택을 보기 때문이다.

◇ 저소득층 의료 소외〓보건소 이용자들은 이제는 약값의 30%를 본인이 따로 부담하게 됐다. 3일분 약값이 1만원이라면 처방전료와 함께 3천5백원이 들어가는 셈. 더욱이 지자체가 무료로 약을 제공하던 지역에서는 의약분업으로 약값 부담이 새로 생겼다.

서울 용산구청 보건소 김윤수(金允洙) 소장은 "최근 늘어난 약값 부담을 호소하는 환자가 많다" 며 "이들은 비용을 줄이기 위해 자주 보건소를 찾기 때문에 다른 환자를 돌볼 시간을 빼앗고 있다" 고 말했다.

보건소를 찾는 경우는 그래도 시간적 여유가 있는 편이다. 가내공장에서 밤 늦게까지 일하는 李모(42.여.서울 강북구 미아동) 씨는 "아픈 아이를 데리고 병원이나 보건소를 가려면 하루는 일을 쉬어야 하는데 공장측에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다" 며 "오후 9시쯤 일이 끝나는데 동네 소아과.내과가 문을 닫아 진료를 제대로 못받는다" 고 말했다.

◇ 홀대받는 의료보호대상자〓의료보호대상자로 지정되더라도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의료비를 전액 면제받는 의료보호 1종 대상자인 黃모(59) 씨는 최근 관절염 약 두달 분을 처방받았으나 약국 6곳을 헤매다 보건소 안내로 간신히 약을 지었다. 약국들은 약이 없다며 黃씨를 돌려보냈지만 사실은 의료보호비를 6~7개월이 지난 후에야 구청에서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조제를 거부했던 것이다. 빈약한 공공의료 예산 때문에 의료 소외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올해 의료보호 대상자로 지정된 사람은 1백94만명이다. 거택.시설보호자.한시 생계보호자.국가유공자.탈북자 등 1종이 79만명, 자활.한시 자활보호대상자 등 2종이 1백15만명이다.

하지만 진료비 증가분에 대한 예측이나 예산 반영이 잘 안돼 정부.지자체가 의료기관에 지급해야 할 진료비 연체가 계속되고 있다.

민간의료기관은 물론 국.공립 의료기관조차 의료보호 환자의 입원과 진료를 꺼린다.실제로 전체 의료기관의 30%이상은 의료보호 환자 진료실적이 없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의료보호 대상자의 개인부담이 많은 것도 문제다. 자기공명영상(MRI) 촬영장치나 초음파 등 혜택에서 제외되는 항목을 포함하면 1종의 경우 전체 진료비의 20~30%, 2종의 경우 40~50%까지 부담해야 한다.

◇ 열악한 농어촌 의료서비스〓지난해 보건복지통계연보에 따르면 3만8천개에 이르는 국내 의료기관 가운데 83%가 도시지역에 집중돼 있다. 병상수로 따지면 89%가 도시지역에 몰려 있다.

물론 3천5백37개 공공의료기관 가운데 90%가 농촌지역에 있으나 접근성이 떨어진다. 특히 각 자치단체는 최근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보건진료소를 1백곳 이상 감축해 간단한 진료를 받는 것조차 몇시간씩 걸려 읍.면 소재지로 나가야 한다.

보건복지부 지역보건정책과 이원희(李元熙) 사무관은 "다행히 일부 지자체에서 다시 보건진료소를 여는 움직임이 있다" 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사회부〓박종권 차장, 강찬수.신성식.장정훈 기자
기획취재팀〓고현곤.이상렬.조민근 기자
정보과학부〓고종관 차장, 황세희 전문위원, 홍혜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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