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코로나 효과'에 번득…3년전 원격의료 반대한 文의 급선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가 불러온 원격의료가 논란에 휩싸였다. 원격의료는 지난 30여년 묵은 이슈이다. 그간 반대하던 문재인 대통령이 입장을 선회하면서 불이 붙기 시작했다. 참여연대·민주노총을 비롯한 문 대통령 지지세력이 "의료 영리화"라며 반대하고 나섰고, 그간 침묵을 지키던 대한의사협회도 반대 목청을 높인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번주 초에 정리될 것"이라며 "코로나19 비상상황에서 의료진도 보호하고 국민도 보호해야 한다. 제한적인 범위에서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기정 정무수석은 15일 국회에서 "의료진과 국민 안전을 위해 비대면 진료를 일부 하고 있는데, 2차 코로나19 위기에 대비해 관련 인프라를 충분히 깔아야 한다"고 말했다.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감염을 예방하는데 원격의료를 어떻게 활용할지에 초점을 맞춰 접근해야 한다"고 밝혔다. 청와대와 정부가 어느 정도 입장을 조율한 것으로 보인다. 원격의료의 모든 것을 정리한다.

원격의료 장면.중앙포토

원격의료 장면.중앙포토

원격의료, 원격진료?

스마트폰·PC 카메라 등으로 환자와 화상 통화하면서 진료하는 것을 말한다. 원격의료는 원격진료와 모니터링으로 나누기도 한다. 의사가 환자를 진찰하고 진단하는 게 원격진료이고, 의사가 화상 등으로 환자 상태를 살피는 게 원격 모니터링이다. 현행 의료법은 의사가 의료행위를 하려면 의료기관을 개설해야 하고, 환자가 병원을 방문해서 얼굴을 마주 보고 진료하게 돼 있다. 대면진료가 원칙이다. 그런데 정보기술(IT)이 발전하고 거동이 불편한 사람이 증가하면서 굳이 대면하지 않는 원격의료의 필요성이 대두하고 있다.

원격의료 모든 것 총정리 #청와대 관계자 "가을코로나 대비 제한된 범위 추진" #의료영리화 논란 줄이려 비대면진료로 용어 바꿔 #이번 주 당정청 입장 정리할 듯 #의료소외 환자 돕고 미래먹거리 창출 위해 #의료영리화 반대하던 터라 난감할 수도 #정치적 우군 시민단체, 강경 반대 의협 설득해야

이미 원격의료 한다는데

의료법 34조는 의료기관-의료기관의 원격의료만 허용한다. 가령 지방의 작은 병원이 화상으로 서울의 큰 병원 의사의 도움을 받아 환자를 진료하는 걸 말한다. 2002년 처음으로 의료법에 도입됐다. 하지만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는 불가능하다. 다만 법에 없더라도 정부의 시범사업은 가능하다. 1990년 농어촌 보건소와 대도시 종합병원을 공중통신망으로 연결하는 원격의료를 시작했다. 또 의사와 격오지 환자 간 여러 가지 형태의 원격의료 시범사업을 진행해왔다. 30여년 간 수십 개의 시범사업만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19 발생 후 실제 진료에 활용하고 있다. 비상상황이다보니 반대세력이 자제했다.

원격의료 추진 일지

원격의료 추진 일지

누가 주도하나

과거 정부가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를 도입하려고 수차례 시도했다. 2006년 노무현 정부 때 대통령 자문 의료산업선진화위원회에서 시범사업을 추진했다. 이어 2010년 이명박 정부(18대 국회), 2014, 2016년 박근혜 정부(19,20대 국회)에서 실제로 추진했다. 의료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됐지만, 보건복지위원회에 상정조차 안 돼 자동폐기됐다. 지금 국회에 계류된 법안도 29일 폐기될 전망이다. 세 법안 모두 전면적인 의사-환자 간 원격진료가 아니라 오지 주민, 만성질환자 등을 대상으로 제한적으로 시행하는 것이다.

국회에 제출된 법안 내용은

2016년 6월 20대 국회에 제출한 법안을 보면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를 허용하되 ▶군·교도소 등 특수지역 환자 ▶병원이 없는 섬·벽지 주민 ▶거동이 어려운 노인·장애인 ▶고혈압·당뇨 등 만성병환자와 정신질환자 ▶수술·퇴원 후 관리가 필요한 재택환자 등으로 제한했다. 동네의원은 모든 유형의 환자를 진료하고, 군·교도소·수술 환자는 중소병원이나 대학병원도 할 수 있게 설계했다. 원격의료만 하는 의료기관을 금지하고 주기적으로 대면진료를 하도록 의무화했다. 또 환자가 의사 지시를 따르지 않거나 환자 장비 결함이 있거나 의사 과실이 명백하지 않으면 의사 책임을 면제한다.

글로벌 원격의료 시장규모.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글로벌 원격의료 시장규모.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왜 추진하나

종전에는 군인·재소자·오지주민 위주로 추진하다 급속한 고령화로 인해 대도시에 독거노인이 크게 늘면서 현재 국회에 제출된 법안은 원격의료 대상을 노인·장애인 등으로 확대했다. 혼자 사는 만성병 노인, 암 수술 후 퇴원한 환자 등의 수요가 늘었다. 2004년 서울 강남구 보건소와 수서동사무소를 화상으로 연결해 환자를 원격진료한 적도 있다. 박근혜 정부는 일본의 예를 제시하며 강하게 추진했다. 박 대통령은 속도를 내지 않는다고 당시 문형표 장관을 강하게 질책하기도 했다. 원격의료는 IT 강국 한국에 강점이 있다. 관련 산업이 발전하면서 부가가치가 올라가고 새로운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본다. 청와대가 최근 원격의료를 들고나온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비대면진료·원격의료 다른가

같다고 보면 된다. 코로나19가 터지면서 언택트(비접촉) 진료가 시행되면서 이런 용어가 등장했다. 문 대통령과 민주당이 그간 '원격의료=의료영리화'라고 비판해왔는데, 그걸 자신들이 추진하려고 하니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고, 그래서 비대면 진료라는 용어로 바꿔 쓰고 있다.

의사협회 왜 반대하나

화상진료로는 진단에 한계가 있다고 한다. 최대집 의협 회장은 "청진기를 대서 듣고 두드리고 만져봐야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는데, 스마트폰으로는 불가능하다. 제대로 진단해서 환자에게 최선의 이익을 제공해야 하는데 그럴 수 없다"고 말한다. 환자 진료가 목적인데, 왜 경제적 동기를 갖다 대느냐고 반문한다. 의협은 15일 성명서에서 "비대면진료의 한계가 명확하다. 대면진료를 대체하지 못한다. 산업 키우자고 안전을 팽개치는 것은 주객전도"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의료계 내에서 대학병원은 원격의료에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편이다.

15일 오전 서울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열린 ‘코로나19 사회경제위기 대응 시민사회대책위’ 기자회견에서 시민사회대책위가 ‘원격의료를 즉각 중단하고 공공의료를 강화를 정부에 촉구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지현 참여연대 국장, 현정희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장, 박석운 코로나19 시민사회대책위 공동대표, 변혜진 간강과대안 상임연구원, 전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 이경민 참여연대 사회경제2팀 팀장, 이경민 참여연대 사회경제2팀 팀장. 뉴스1

15일 오전 서울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열린 ‘코로나19 사회경제위기 대응 시민사회대책위’ 기자회견에서 시민사회대책위가 ‘원격의료를 즉각 중단하고 공공의료를 강화를 정부에 촉구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지현 참여연대 국장, 현정희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장, 박석운 코로나19 시민사회대책위 공동대표, 변혜진 간강과대안 상임연구원, 전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 이경민 참여연대 사회경제2팀 팀장, 이경민 참여연대 사회경제2팀 팀장. 뉴스1

민주당과 시민단체는 왜 반대

참여연대를 비롯한 '코로나19 사회경제위기 대응 시민사회대책위원회'는 15일 기자회견에서 "원격의료가 여전히 안전·효과가 증명되지 않았다. 이런 현실에서 도입하면 결국 의료 영리화를 불러올 수 있다. 원격의료는 관련 제조업체와 통신기업, 대형병원의 ‘돈벌이 숙원’ 사업이다. 하지만 환자에게는 의료 수준의 향상 없이 의료비만 폭등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원격의료가 남발되고 장비 구입에 돈이 들면서 비용 증가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민주당도 그동안 18~20대 국회에서 같은 이유로 의료법 개정안에 반대해 왔다. 문 대통령도 2017년 대선 공약에서 반대를 분명히 했다. 하지만 이번에 우수한 IT를 바탕으로 코로나19 방어에 성공했고, 원격의료가 한몫 톡톡히 했다. 미래 먹거리로써 원격의료의 성장 가능성을 확인한 것이다.

어떻게 될 것 같나

원격의료를 도입하려면 의료법을 바꿔야 한다. 21대 국회 몫이다. 민주당은 아직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지만 청와대를 보조할 것으로 보인다. 남인순 민주당 외고위원은 15일 최고위원회에서 "앞서 당은 의료 접근성에 제한이 있ㄴㄴ 원양선뱍, 군부대, 교정시설, 도서벽지에 한해 1차 의료기관을 중심으로 대면진료를 대체·보완하는 방식의 의료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고 말했다. 21대 국회에서 논의를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미래통합당은 원래 자신들이 추진하던 것이어서 크게 반대하지 않을 듯하다. 의사협회 반대를 넘기 쉽지 않다. 의협은 원격의료 반대를 내걸고 2014년 집단휴진을 한 적이 있다. 의협은 "박근혜 정부에서 원격의료를 추진할 때 극렬하게 반대한 민주당이 집권 후 입장을 뒤집은 이유부터 해명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과 청와대가 의협의 이런 비판을 무마하고, 정치적 우군인 시민단체를 설득하는 게 관건이다.

정부 입장은 

부처에 따라 다르다. 기획재정부는 일관되게 원격의료를 주창해왔다. 산업부도 마찬가지다. 현 정부 들어서 중기벤처부가 가세했다. 주무부처는 복지부다. 전 정권 때 청와대의 주문에 따라 원격의료 도입에 앞장섰다. 이번에도 그리해야 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복지부는 의협을 안고 가야 할 입장이다. 현재 공식 입장은 "의료계와 충분히 협의해서 추진하겠다"이다. 김강립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1총괄조정관(보건복지부 차관)은 15일 브리핑에서 "국민안전과 의료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원격의료 논의가 진행되길 희망한다"며 "이를(원격의료) 통한 긍정적인 측면과 우려 사항을 종합적으로 논의해서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경제부처에서 산업 발전을 강조하는데, 원격의료를 도입해도 의사가 안 쓰면 뭐 하냐. 의사가 쓰는 게 중요하고, 쓸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19 2차,3차 유행이 온다는데, 감염을 예방하는데 원격의료를 어떻게 활용할지에 초점을 맞춰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원격진료 모습. 중앙포토

원격진료 모습. 중앙포토

외국은 어떤가

일본은 1997년 낙도와 산간벽지 주민에게 의사-환자 원격의료를 허용한 뒤 대상을 계속 확대해왔다. 2015년 8월 고시를 개정해 전면 허용했고 2016년 4월 스마트폰을 이용한 원격의료, 즉 포켓닥터를 도입했다. 미국은 90년대에 허용했고, 중국은 2014년 단계적으로 허용하기 시작했다. 영국은 올해 코로나19가 터지자 동네의원에 원격의료를 권고했다.

코로나19 원격의료 얼마나 했나

이번에 전화 진료를 예외로 인정했더니 26만건의 진료가 이뤄졌다. 2월 24일~이달 10일 전국 3853개 의료기관이 26만2121회 전화 상담과 처방을 했다. 34억원의 건강보험 재정이 투입됐다. 상급종합병원 28곳, 종합병원 154곳, 중소병원 344곳, 동네의원 2786곳 등이 참여했다. 상급종합병원 28곳이 4만여건 진료했고, 동네의원이 10만여건의 전화 상담을 했다. 한의원 416곳, 치과의원 27곳도 참여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