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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엄은 박물관인가 미술관인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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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6호 18면

바우하우스 이야기 〈35〉 

‘뮤지엄(MUSEUM)’의 영문 스펠링을 활용해 그래픽을 만들었다. 1 국립현대미술관. [사진 윤광준] 2 국립중앙박물관. [중앙포토]

‘뮤지엄(MUSEUM)’의 영문 스펠링을 활용해 그래픽을 만들었다. 1 국립현대미술관. [사진 윤광준] 2 국립중앙박물관. [중앙포토]

‘뮤지엄(Museum)’은 ‘미술관’인가 ‘박물관’인가. 유럽 여행을 하다보면 항상 궁금했다. 그곳에서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이나 죄다 ‘뮤지엄’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해하기에 ‘박물관’은 역사적 유물과 자료를 전시하는 곳이고, ‘미술관’은 회화나 조각 같은 예술 작품을 전시하는 곳이다.

16세기 이탈리아의 저술가 바사리 #디자인을 뜻하는 ‘디세뇨’ 첫 제시 #‘장인’ 뛰어넘는 ‘예술가’ 개념 시작 #한국, 1991년 박물관·미술관 구분 #예술·미술·공예로 개념 세분화돼

실제로 정부의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에 따르면 박물관과 미술관은 아주 선언적으로 구분되어 있다. “‘博物館’이라 함은 文化·藝術·學問의 발전과 一般公衆의 文化享受 增進에 이바지 하기 위하여 歷史·考古·人類·民俗·藝術·動物·植物·鑛物·科學·技術·産業 등에 관한 資料를 蒐集·管理·保存·調査·硏究·展示하는 施設을 말한다.”

박물관의 개념이 이렇게 요란스럽게 아주 폭넓은 반면, 미술관의 대상은 박물관 중에서도 시각 예술자료에 국한되어 있다. “‘美術館’이라 함은 文化·藝術의 發展과 一般公衆의 文化享受增進에 이바지하기 위하여 博物館 중에서 특히 書畵, 彫刻, 工藝, 建築, 寫眞 등 美術에 관한 資料를 蒐集·管理·保存·展示·調査·硏究하는 施設을 말한다.”

미술관이 이렇게 축소된 형태로 규정된 것은 매우 ‘동양적’이다. 서양의 ‘뮤지엄’은 왜 한국에서는 ‘박물관’과 ‘미술관’으로 나뉘었을까.

정부의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이 제정된 것이 1991년이다. 그러니까 그 전까지 한국사회에서 ‘박물관’과 ‘미술관’의 명확한 분류는 없었다고 봐야 한다. 이 둘의 차이를 구분할 필요성을 인식한 한국사회의 집단적 ‘메타인지’는 유럽의 ‘뮤지엄’을 ‘미술관’과 ‘박물관’으로 구별하여 이렇게 법과 제도로 구체화했다.

‘분류’와 ‘분류의 제도화’는 메타인지의 매우 중요한 기능이다. 우리가 유럽의 문화를 무지하게 받아들여 그런 것이 아니다. 한국사회에서 ‘미술’ 개념은 유럽과는 전혀 다른 형성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18세기 중엽 ‘예술’ 개념 생겨

3 ‘디세뇨’ 개념을 처음 도입한 조르조 바사리의 자화상.

3 ‘디세뇨’ 개념을 처음 도입한 조르조 바사리의 자화상.

‘왜?’라는 질문이 없으면 ‘박물관’과 ‘미술관’의 구분은 원래부터 있었던 아주 당연한 구분이 된다. 내가 유럽의 뮤지엄을 다니며 느꼈던 그 질문은 이 ‘당연함’의 ‘낯설게 하기’가 된다. 창조적 사고의 시작은 ‘세상 만물이 원래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고 언젠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특히 우리가 아주 당연한 것처럼 사용하는 ‘개념’들을 의심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이를 나는 ‘구성주의적 사고’라고 부른다. ‘만들어지는 과정’에 관한 구성주의적 통찰은 창조적 재구성을 가능케 하는 ‘해체’의 작업이기도 하다.

이 같은 구성주의적 사고의 심리학적 토대는 ‘메타인지’, 즉 ‘생각에 대한 생각’이라는 ‘고차원적 인지기술’이다. ‘메타인지’는 개인의 인지적 능력일 뿐만 아니라 해당 사회의 문화적 역량으로 작동하고 제도로 구체화된다. 한국의 ‘미술관’과 ‘박물관’의 분류나 독일의 바우하우스의 성립과정은 이 같은 메타인지의 사회문화적 제도화 과정의 아주 강렬하게 보여준다.

오늘날 우리가 너무도 당연하게 사용하는 ‘미술’이라는 개념이 1873년 일본 메이지시대의 번역관이 빈 만국박람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급조되었다는 것을 지난 호에서 설명했다. 한국의 경우, 이 같은 일본의 ‘미술’ 개념이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유사한 형태로 자리 잡았다. 한국의 근대사를 설명하려면 이렇게 매번 일제강점기가 어쩔 수 없이 얽혀 들어온다. 기분 나쁘다고 그저 외면한다면 학자로서 직무유기다. 이 같은 ‘미술’ 개념을 일제식민지 잔재, 혹은 ‘토착왜구’의 농간이라고 간단히 폐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시내 골목마다 존재하는 그 많은 ‘미술학원’은 어떻게 할 것인가) 오히려 그 개념의 형성과정을 정확하게 이해할 때, ‘그때 그 일본’은 극복된다.

‘예술’은 원래 ‘기술’이었다

‘아름다운 예술’이라는 뜻의 ‘미술’개념이 처음 사용된 샤를 바퇴의 논문 표지.

‘아름다운 예술’이라는 뜻의 ‘미술’개념이 처음 사용된 샤를 바퇴의 논문 표지.

일단 ‘미술’ 개념이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면 메타인지적 의심은 꼬리를 물기 시작한다. 동양에서 ‘미술’의 개념이 그렇게 급조되었다면, 서양에는 ‘미술’ 개념은 원래부터 있었던 것일까? 물론 아니다. 그럼 언제부터 생겨났을까?

우선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쓰이는 ‘미술’, ‘공예’, 그리고 ‘예술’의 구분을 간단하게나마 해둘 필요가 있다. 메이지시대에 ‘공예’에 해당하는 독일어 ‘Kunstgewerbe’의 번역어로 시작된 ‘미술’은 시간이 흐르면서 영어의 ‘fine arts’에 가까운 단어가 되었다. 즉 ‘공예’에 가까운 개념에서 회화를 중심으로 하는 ‘시각예술(visual arts)’ 분야를 가리키는 단어로 의미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한때 시각예술까지를 포함하는 포괄적 단어였던 ‘공예’는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미술’에 그 자리를 내주고, 실용성을 지닌 물건의 예술적 가치와 연관된 단어로 그 의미영역이 축소되었다. ‘미술’은 영어로는 ‘파인 아츠’, 독어로는 ‘빌덴데 쿤스트(bildende Kunst, 예전에는 schöne Kunst)’, 불어로는 ‘보자르(beaux-arts)’가 된다. ‘예술(art, Kunst)’은 ‘미술’을 포함하는 폭 넓은 개념으로 자리 잡는다.

‘예술’은 미적 가치를 갖는 인간의 모든 창조적 활동을 가리킨다. 그러나 맥락에 따라 자주 ‘미술’과 같은 의미로 축소되어 사용된다. ‘미술’ ‘예술’ ‘공예’와 같은 개념의 분화과정에는 일본 메이지 시대부터 시작된 ‘박물관’, ‘미술관’, 그리고 ‘박람회’라는 문화적 장치의 작동방식과 아주 깊이 관련되어 있다. 이는 서양에서도 마찬가지다. 예술작품의 분류와 개념화라는 메타인지의 실천과 제도화과정은 아주 보편적 현상이기 때문이다.

서양에서나 동양에서나 ‘예술’의 의미에는 ‘기술’이 포함되어 있었다. 재주나 기술을 뜻하는 ‘술(術)’이 그리스어로는 ‘테크네(techne)’다. ‘예술(art)’의 어원인 ‘아르스(ars)’는 ‘테크네’의 라틴어 번역어다. ‘art’는 ‘기술’은 물론 오늘날의 ‘과학’과 ‘예술’을 모두 지칭하는 개념이었다. 원래 그림을 포함한 대부분의 예술이 수공예와 같은 ‘기술’의 영역이었다는 이야기다. 예술가를 특별하게 대우했다는 르네상스 시대에도 오늘날과 같은 ‘예술가’는 없었다. 손재주가 좋은 장인들만 있었을 뿐이다.

‘미술’과 ‘기술’의 분화가 처음 일어난 것은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 1511~1574)의 책에서다. 1550년 초판이 발행된 ‘르네상스 미술가평전’이다.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가 200여명의 작품과 배후의 이야기를 다룬 수천 쪽에 달하는 그의 책 덕분에 오늘날 우리는 레오나르드 다빈치, 라파엘로, 미켈란젤로와 같은 예술가들을 기억할 수 있다. 그가 중세의 미술과 자신의 동시대 미술을 구분하기 위해 사용한 ‘르네상스’라는 표현도 여기서 시작됐다.

‘르네상스 미술가평전’이라 번역된 엄청난 분량의 바사리 책의 원제목에는 ‘미술가’라는 표현은 없다. 이탈리아어로 된 원래의 제목은 ‘아레초 사람 조르조 바사리가 예술에 대한 유익하고 필요한 서문과 함께 토스카나어로 기술한 치마부에부터 우리 시대까지 가장 위대한 건축가, 화가 그리고 조각가들의 생애’라고 되어 있다. 건축가·화가·조각가로 불리는 ‘장인(artisan)’만 있었을 뿐, ‘미술가’ 혹은 ‘예술가(artist)’는 아직 없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 책에서 바사리는 이들 장인들의 기술과 관련해 아주 흥미로운 개념을 사용한다. ‘디세뇨(Disegno)’다. 원래부터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디자인’은 바로 바사리의 ‘디세뇨’에서 파생된 개념이다. ‘디세뇨’는 ‘드로잉’이나 ‘스케치’와 같은 손기술을 뜻하는 이탈리아어다. 바사리는 이 기술적 개념을 ‘예술가의 상상력과 지적 능력’까지로 확장한다. 건축가·화가·조각가는 자신의 예술적 상상력을 손이라는 구체적 수단을 통해 구현해내는 창조적 인간이라는 것이다. 기술자, 혹은 장인의 범주를 뛰어넘는 특별한 존재로서의 ‘예술가’가 바사리의 ‘디세뇨’ 개념에서 시작된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기술’과 구별되는 ‘예술’ 개념이 본격 시작되려면 이후 수백 년이 더 지나야 했다.

‘기술’로부터 우아한(!) ‘예술’의 영역이 본격 떨어져 나온 것은 18세기 중엽의 일이다. 1747년 프랑스의 철학자 샤를 바퇴(Charles Batteux, 1713~1780)는 ‘하나의 통일적 원리에 귀결되는 아름다운 예술’이라는 논문에서 ‘아름다운 예술’이라는 의미의 ‘보자르’ 개념을 만들었다. 바퇴는 회화·조각·음악·시·무용과 더불어 웅변이나 건축까지도 포함하는 ‘우아한’, 혹은 ‘고상한’ 예술영역을 ‘보자르’라고 칭한 것이다. 바퇴의 ‘보자르’는 영어로 ‘파인아츠’로 번역되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주로 시각예술 영역에만 국한되어 사용되며 오늘날까지 이르게 된다.

김정운 문화심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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