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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 왜 보도돼 북한 반발 샀나" 靑 추궁 받은 軍의 낙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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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진행된 군사훈련에 북한이 반발하고 나서자 청와대가 경위 조사에 나섰던 것으로 나타났다. 군사훈련이 보도돼 북한이 반발하자 청와대가 군 관계자들을 불러 이를 문제 삼았다는 것이다. 결국 군 당국은 “민감 사안에 대해선 청와대 등과 사전협의를 강화한다”는 결론을 내놨다. 이에 군 내부에선 청와대가 ‘북한 눈치 보기’를 강요하는 것 아니냐는 불만이 나온다

북한의 군사훈련 비난에 靑 "이게 어떻게 보도됐나" #軍, "앞으론 청와대와 사전협의 강화하겠다" 약속 #"정당한 훈련하고 나서도 눈치…사기저하 우려돼"

한·미 해병대가 2017년 백령도 일대에서 서북도서 기습강점 대비 연합항공화력유도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사진 해병대]

한·미 해병대가 2017년 백령도 일대에서 서북도서 기습강점 대비 연합항공화력유도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사진 해병대]

15일 복수 군 관계자에 따르면 국방부와 합참, 육·해·공군의 공보와 정책 담당자들은 지난 8일 오후 청와대의 호출을 받고 국가안보실과 회의를 가졌다. 예비역 육군 중장 출신인 김유근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의 주도로 열린 회의였다. 군 소식통은 “이 자리에서 최근 실시된 군 서북도서 합동방어훈련이 도마에 올랐다”고 말했다. 해당 훈련이 보도돼 북한이 반발하자 ‘어떤 경위로 보도가 됐는지’를 사실상 추궁받았다는 것이다.

문제가 된 보도는 국방일보의 지난 7일 ‘적(敵) 도발 원점 타격·작전능력 확인’이라는 제목의 기사다. 공군 공중전투사령부가 6일 서해 상공 작전구역에서 해군 2함대와 함께 F-15K, KF-16, F-4E, FA-50 항공기 20여대와 2함대 고속정을 동원해 훈련을 벌였다는 내용이었다. 국방일보 보도 후 일부 통신매체도 해당 소식을 다뤘다.

북한은 서북도서 합동방어훈련이 보도되자 다음 날인 8일 인민무력성 대변인 담화를 내고 “남조선 군부가 우리를 '적'으로 지칭하며 이러한 군사 연습을 벌여놓았다”며 “모든 것이 2018년 북남 수뇌회담 이전의 원점으로 돌아가고 있다. 북남 군사합의에 대한 전면 역행이고 노골적인 배신행위”라고 비난했다.

그러자 청와대가 움직였다. 국가안보실 측은 호출된 군 관계자들에게 해당 훈련이 국방일보에 보도된 경위를 물었다고 한다. 군 내부에선 이를 질책으로 받아들이는 기류가 감지된다. 전직 군 장성은 “교착 상태에 빠진 남북 관계에 돌파구가 절실한 상황에서 청와대는 북한의 반발을 불러온 국방일보의 보도가 ‘긁어 부스럼’처럼 여겨졌을 것”이라며 “그렇다고 해도 북한이 비난하자 몇 시간 만에 군 당국자들을 불러 질책하는 건 지나쳤다”고 말했다.

회의 결과 군 당국은 앞으로 재발 방지를 내걸었다. 국방부 정책실은 ‘향후 민감 사안에 대해선 청와대 등 관계부처와 사전 협의를 강화한다’는 결론을 청와대에 내놨다고 한다. 훈련 규모·시기·성격 등에 따른 홍보여부 및 방식에 대해서도 검토를 강화하고, 정책홍보계획 토의시 합참 및 국방부 훈련담당이 참여한다는 대책도 나왔다. 또 해당 훈련이 보도된 경위에 대해 국방부는 관련 보도자료가 공군에서 작성돼 국방일보에 제공됐으며 국방부에는 훈련계획이 보고되지 않았다고 보고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논란을 두고 군 내부에선 “우리 군의 당연한 훈련에 대해서도 청와대가 북한 편을 드는데 사기 저하가 우려되지 않을 수 없다”는 얘기가 나온다. 군 당국자는 “북한을 비롯해 청와대 눈치까지 보면서 외부에 알려지지 않게 ‘몰래 훈련’을 하라는 것으로 들린다”며 “우리 군 훈련에 사사건건 비난을 퍼붓는 북한의 행태를 언젠가 당연하게 여기게 될까 두렵다”고 말했다.

실제 북한은 최근 군 당국의 군사훈련을 꼼꼼하게 언급하며 비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서북도서 합동방어훈련을 비롯, '현무-4' 탄도미사일시험발사, 환태평양 연합훈련(RIMPAC·림팩) 등 군이 대대적으로 알리지 않은 훈련들도 한국 언론을 모니터링한 뒤 문제를 삼고 있다. 한국 정부가 저자세로 나오는 사이 군이 군사훈련을 주저하게 만드는 분위기를 노리고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청와대는 “질책을 한 사실은 없다. 군의 정책홍보라인 인사를 불러 정책홍보 점검회의를 가졌다”고 강조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은 군 통수권자로 대통령을 보좌하는 국가안보실이 군과 수시로 회의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북한이 긴장을 고조시키는 반응을 보인다면 원인이 무엇이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논의했다”고 말했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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