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수업’ 진한새 “엄마 송지나 작가 밑에서 일하며 배웠다”

중앙일보

입력 2020.05.14 13:24

‘인간수업’에서 모범생 지수(김동희)와 2학년 짱인 기태(남윤수)가 대립하고 있다. [사진 넷플릭스]

‘인간수업’에서 모범생 지수(김동희)와 2학년 짱인 기태(남윤수)가 대립하고 있다. [사진 넷플릭스]

“전형적인 K드라마, 혹은 학원물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미 포브스는 지난달 29일 공개된 넷플릭스 ‘인간수업’를 이렇게 소개했다. 성매매를 알선하는 고등학생 포주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다크한 드라마에서 달달한 로맨스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일종의 경고인 셈이다. 대입 수험생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범죄에 뛰어든 이야기를 두고 “계급 갈등에 기반을 둔 ‘기생충’ 같은 하드보일드 드라마”라는 평도 나온다. 조선 시대 좀비물로 화제를 모은 ‘킹덤’을 시작으로 한국 작품에 대한 관심이 뜨거운 가운데 넷플릭스 오늘의 한국 콘텐트 1위에 오르면서 입소문이 빠르게 퍼졌다.

미성년자 성매매 다룬 문제적 데뷔작
입소문 타고 넷플릭스 한국 콘텐트 1위
해외서도 “전형적 학원물 탈피” 관심

이 문제적 드라마를 집필한 진한새(34) 작가에 대해서도 이목이 쏠렸다. 2017년 웹드라마 ‘아이리시 어퍼컷’으로 데뷔 이후 첫 장편 출사표를 던진 신인이지만, ‘여명의 눈동자’(1991~1992),  ‘모래시계’(1995),  ‘태왕사신기’(2007) 등 굵직굵직한 시대극을 쓴 송지나 작가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KBS 라디오 구성작가로 시작해 시사 교양 프로그램을 거쳐 드라마에 안착한 송 작가는 ‘추적 60분’ 담당 PD였던 진기웅씨와 결혼했다.

“재능 없어 대학원 중퇴, 보조작가 시작”

‘인간수업’으로 첫 장편 드라마에 도전한 진한새 작가. [사진 넷플릭스]

‘인간수업’으로 첫 장편 드라마에 도전한 진한새 작가. [사진 넷플릭스]

e메일로 만난 진 작가는 “방송 일에 종사하는 부모님 밑에서 자라서 영향을 받았다”고 솔직하게 인정했다. 그는 “당시 가정집에는 비디오 플레이어가 별로 없었지만 부모님이 구해온 디즈니 단편 시리즈 등을 보며 자랐다”며 “가장 좋아했던 ‘쥬라기 공원’은 수백번씩 돌려본 탓에 비디오테이프가 너덜너덜해져 어떤 장면은 통편집되기도 했다”고 밝혔다. 일찌감치 영상 문법을 익힌 그는 “20대 중반 어머니로부터 글쓰기 수업을 받고, 군 제대 후 보조작가로 일하며 많은 것을 배웠다”고 덧붙였다. “드라마 작가가 된 이유를 미사여구로 치장하고 싶지만 대학원 중퇴가 현실적인 계기였어요. 전공이 건축디자인이었는데 재능이 하나도 없었거든요. 그래도 뭔가는 해야 먹고 사니까 그나마 이해도가 있었던 일을 택하게 된 거죠.”

이번 작품은 뉴질랜드 유학 시절 경험에서 착안했다. “제가 작업 속도가 느리긴 하지만 그때부터 쓴 건 아니에요. 아이템을 찾다가 10대 청소년의 조직적 범죄에 관한 신문기사를 보고, 친구들에게 담배를 팔던 아이가 생각났어요. 같은 고등학생인데 사는 세계가 너무 달랐던 거죠. 리스크를 지면서까지 돈을 벌고자 했던 동기는 뭘까, 죄의 본질은 무엇일까 같은 고민이 이어지면서 우리 사회에서 가장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부분인 미성년자 성매매까지 가게 됐어요. 상처를 후벼 파는 것 같은 이야기를 만들게 된 거죠.” 민감한 소재를 다루게 되면서 지상파나 종편 및 케이블이 아닌, 심의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넷플릭스로 직행하게 됐다.

“다들 어른 되면 청소년 일 무관심해져”

여자친구가 조건 만남을 한 것을 알게 된 기태(남윤수)는 포주를 찾아 나선다. [사진 넷플릭스]

여자친구가 조건 만남을 한 것을 알게 된 기태(남윤수)는 포주를 찾아 나선다. [사진 넷플릭스]

주인공을 고등학생으로 설정한 것 역시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누구나 시간이 지나면 어른이 되고, 지난 일에 대해서는 무관심해지잖아요. 그래서 청소년의 목소리는 허무할 정도로 쉽게 묻히고, 외면당하는 게 당연시되는 것 같아요. 그들에게는 그것이 언제 지나갈지 알 수 없는 겨울이고 엄연한 현실인데 말이죠.” 교사인 친구의 도움을 받아 학부모 참관일에 견학을 가는 등 취재에 공을 들인 그는 “실제 학생들은 급식체를 그렇게 많이 쓰지 않더라”며 “그보다는 인터넷 비속어가 많이 섞인 말투를 쓰고, 관용구를 ‘밈’처럼 활용한다”고 전했다.

‘개와 늑대의 시간’(2007) 등을 연출한 김진민 PD와 호흡에도 만족감을 표했다. 대본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어서 오디션에 참석하지 못했던 그는 캐스팅은 전적으로 김 PD와 제작사 스튜디오329의 윤신애 대표에게 맡겼다고 했다. 김동희ㆍ정다빈ㆍ박주현ㆍ남윤수 등 대부분 신인 배우들로 꾸려졌지만, 힘의 균형이 어느 한쪽으로 쏠리지 않을 정도로 탄탄한 팀워크를 자랑한다. “제가 상상했던 그대로 나온 장면이 많았어요. 특히 지수(김동희)의 꿈 속은 ‘모든 감정이며 상황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 정도의 지문만 써놓았는데 몽환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인 느낌이 잘 드러나더라고요.”

남자친구 뒷바라지를 하기 위해 조건만남을 하다 위기에 처한 민희(정다빈). [사진 넷플릭스]

남자친구 뒷바라지를 하기 위해 조건만남을 하다 위기에 처한 민희(정다빈). [사진 넷플릭스]

원제 ‘극혐’을 “보다 중립적이고 윤리적 지향을 암시할 수 있는 ‘인간수업’으로 바꿔준 것도 감독님 아이디어”라고 밝혔다. 영어제목은 ‘교과 과정 이외의’ 과목을 뜻하는 ‘엑스트라커리큘러(Extracurricular)’다. 학교 안에서보다 밖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는 극 중 아이들의 이야기와도 맞아떨어진다. 가해자를 주인공으로 설정해 감정이 이입돼서 범죄를 묵인 혹은 옹호하는 측면이 있다는 일부 시청자의 지적도 수긍했다. 아이들끼리의 싸움에 조폭까지 연루되는 등의 장면에서 이들이 무사히 위기에서 벗어나기를 응원하는 마음이 생겨나는 탓이다.

“범죄자 미화하지 않게 줄타기 노력했다”

그는 “죄의 본질을 기초부터 이해하려면 죄를 짓는 주체를 타자화하는 것도 적확한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했다”며 “범죄자의 모습을 보여주되 지나치게 동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객관적인 톤 앤드 매너를 유지하면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10회 동안 지속하고자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최근 불거진 n번방 사건을 연상케 한다는 반응에 대해서는 “경악스러운 일이지만 관련자들이 제대로 법의 심판대에 서서 응당한 처분을 받아야 할 것”이라며 “끔찍한 현실에 대해 반추할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다.

부모 도움 없이 혼자 사는 지수(김동희)는 진학 자금 마련을 위해 범죄에 뛰어든다. [사진 넷플릭스]

부모 도움 없이 혼자 사는 지수(김동희)는 진학 자금 마련을 위해 범죄에 뛰어든다. [사진 넷플릭스]

차기작은 무엇이 될까. 그는 “시즌 2에 대해서는 아직 정해진 것이 없다”며 말을 아꼈다. “이제 고작 두 작품을 작업해본 초짜일 뿐”이라며 송지나 작가와 비교 혹은 계승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경계했다. 대신 “호러를 비롯해 여러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항상 지식이 부족해 좌절하곤 한다. 알면 알수록 어려운 분야인 것 같다”며 “아직 초기 단계이긴 하지만 청춘이라고 하기에는 이제 좀 간당간당해져 가는 나잇대의 주인공들이 일상을 살아가다가 어느 날 갑자기 엉뚱한 사건에 말려드는 이야기를 준비 중”이라고 귀띔했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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