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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간녀 꼬리표 떼도 불행한 ‘부부의 세계’ 한소희를 어쩌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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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서 여다경 역을 맡은 한소희. [사진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서 여다경 역을 맡은 한소희. [사진 JTBC]

JTBC 금토드라마 ‘부부의 세계’가 고공행진 중이다. 불륜 드라마로 시작해 치정 멜로, 심리 스릴러 등 다양한 장르로 변신을 거듭하면서 비지상파 드라마 최고 시청률(24.3%)을 기록하고, 이 같은 관심에 힘입어 6주 연속 화제성 1위를 달리고 있다. 극 초반 남편 이태오(박해준)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된 지선우(김희애)에게 감정 이입을 하는 사람이 많았다면, 이혼 후에도 감정의 고리를 끊어내지 못하고 자꾸만 얽히는 두 사람의 모습에 지쳐가는 여다경(한소희)에게 공감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이태오와 결혼을 통해 ‘상간녀’ 딱지는 뗐지만, 여전히 이인삼각의 레이스를 펼쳐 나가고 있는 그에게 연민을 느끼는 것이다.

[민경원의 심스틸러] #모든 것 다 가져도 불안한 여다경 역할 #관계 틈새 벌어질 때마다 존재감 발휘 #김희애 등 기싸움에서도 밀리지 않아 #스무살 상경해 알바로 스스로 기틀 마련

덕분에 배우로서 한소희(26)의 입지도 달라졌다. 드라마가 시작할 때만 해도 뉴페이스를 낯설어했지만, 대선배들 사이에서도 밀리지 않는 존재감을 발휘하는 모습에 그를 보는 시선도 바뀌었다. 이태오와 함께 있을 때면 사랑에 달뜬 여인이 되고, 지선우와 신경전을 벌일 때면 강인한 승부사의 모습을 보이면서 적재적소에 맞는 얼굴을 꺼내 보였다. 지역유지인 아버지 여병규 회장(이경영)과 미인대회 출신 어머니 엄효정(김선경)의 장점을 고루 이어받아서 남편 회사에 심복을 심어두고 정보원으로 활용하는 치밀함을 보이기도 하고, 필라테스 강사로서 갈고 닦은 아름다운 외모를 십분 활용한 스타일링을 선보이며 보는 재미를 더한다.

이태오(박해준)와 불륜으로 시작해 결혼에 성공하지만, 결혼 생활은 순탄치 않다. [사진 JTBC]

이태오(박해준)와 불륜으로 시작해 결혼에 성공하지만, 결혼 생활은 순탄치 않다. [사진 JTBC]

가장 빛나는 순간은 역설적으로 불안함을 내비칠 때다. 관계의 틈새가 벌어질 때마다 흔들리는 눈빛을 통해 그 초조함이 고스란히 전달된다고 해야 할까. 처음 임신한 것을 알았을 때도, 남편이 박인규(이학주)의 죽음에 연루된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도 그는 흔들렸지만 무너져 내리지 않았다. 조용히 원하는 정보를 손에 넣었고,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일이 흘러갈 수 있도록 움직였다. 13회에서 준영(전진서)이 학폭위에 회부될 위기에 처하자 무릎을 꿇은 지선우와 달리 웃으며 사과하되 상대방에게 자신의 영향력을 상기시키는 모습이 대표적이다. 격정적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대신 집어삼키며 동력으로 삼는 셈이다.

지선우(김희애)와 나란히 선 모습. 스타일은 전혀 다르지만 닮은 구석이 있다. [사진 JTBC]

지선우(김희애)와 나란히 선 모습. 스타일은 전혀 다르지만 닮은 구석이 있다. [사진 JTBC]

영국 BBC 원작 ‘닥터 포스터’와 비교해도 인상적이다. 원작에서 젬마(슈란느 존스)가 전 남편을 곤경에 빠트리기 위해 꾸미는 계략에 케이트(조디 코머)가 속수무책으로 당한다면, 여다경은 오히려 그 반대다. 지선우의 유일한 약점이자 부부의 연결고리가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되려 이를 이용해 지선우를 고산에서 쫓아내려 하고 있으니 말이다. 박인규를 비롯해 많은 캐릭터가 원작에 비해 흑화됐지만, 여다경만큼은 보다 주체적인 여성으로 거듭났다. 가장 많은 분량을 함께 하고 있는 박해준은 기자간담회에서 “여다경은 부잣집 딸이지만 혼자 자립하는 느낌이 있는데 한소희라는 배우가 원래 가지고 있던 모습이 많이 보여서 더 잘 맞는 것 같다”며 “역할에 완벽하게 몰입해 있는 모습을 보면 저 자신이 부끄러울 때가 많다”고 말했다.

이처럼 한소희는 세상 물정 모르고 곱게 자랐을 것만 같은 외모와 달리 처음부터 스스로 길을 개척해온 자립형 배우이기도 하다. 울산에서 나고 자란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단돈 30만원을 들고 서울로 올라왔다. 호프집부터 모델까지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을 정도로 닥치는 대로 일하며 배우로서 꿈을 키워나갔다. 맞벌이하는 바쁜 부모님 대신 할머니 손에서 큰 그는 과거 인터뷰에서 “TV를 즐겨보는 할머니는 막연하게 손녀딸이 TV에 나오길 바랐고, 그러한 기대를 받고 자라다 보니 자연스럽게 TV 속 나를 꿈꾸게 됐다”고 밝혔다.

2016년 화제가 된 리츠 크래커 광고. [유튜브 캡처]

2016년 화제가 된 리츠 크래커 광고. [유튜브 캡처]

2016년 샤이니의 ‘텔 미 왓 투 두’ 뮤직비디오를 시작으로 그 꿈은 조금씩 가까워졌다. 동서식품의 리츠 크래커, CJ 그곳에 가면 등 그가 출연한 광고를 눈여겨본 소속사(나인아토엔터테인먼트)와 계약을 맺게 되고 2017년 드라마 ‘다시 만난 세계’ ‘돈꽃’ 등 데뷔 첫해부터 제법 큰 역할을 맡게 됐다. 요즘도 틈틈이 글을 남기는 블로그를 통해 당시 그의 심경도 엿볼 수 있다. 2018년 1월 그는 5년 전 상경하던 때를 회상하며 “매일 눈을 뜨면 강남에 한 호프집으로 출근해 다음날 해가 뜰 때까지 일했던 제가 그 해를 견뎌줬기에 지금의 제가 있지 않나 싶다”고 적었다. “한 달의 월세와 생활비를 버는 것”도 아득했던 그가 “보증금을 모아 조그마한 주방이 따로 분리되어있는 집으로 이사”를 하고, “이제는 집이 축축하지 않아 좋다”는 고백마다 땀방울이 묻어난다.

과거 타투를 한 모습이나 담배를 피우는 사진이 공개됐을 때도 그는 움츠러들지 않았다. 으레 과거 논란이 따라붙었지만 “여자에게만 문제 삼는 건 차별”이라는 그의 측근 인터뷰를 통해 분위기는 반전됐다. 남자 스타에게는 “멋있다”는 찬사가 쏟아질 만한 모습이 여자라는 이유로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것 자체가 편견임을 일깨워준 것이다. “대학은 필수가 아닌 선택”이라는 지론에 따라 꿈을 좇길 택하고, “외모는 껍데기에 불과하다”며 내면에 집중하길 원하는 강단이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무기가 되어준 셈이다.

드라마 ‘백일의 낭군님’에서 세자빈 역할을 맡은 한소희. [사진 tvN]

드라마 ‘백일의 낭군님’에서 세자빈 역할을 맡은 한소희. [사진 tvN]

이제 그의 필모그래피는 ‘부부의 세계’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다. ‘돈꽃’에서는 인포데스크 직원으로 유부남을 유혹하고, ‘백일의 낭군님’(2018)에서는 세자빈이지만 다른 남자의 아이를 갖고, ‘어비스’(2019)에서는 사기 결혼을 계획하는 전과 4범 등 이른바 ‘금지된 사랑’ 전문 배우로 활약했지만, 다시 한번 도약을 꾀할 수 있는 순간을 맞았으니 말이다. 그가 쌓아온 단단함이 빛을 발하는 역할이면 더욱 좋을 듯하다. 이를테면 ‘닥터 포스터’로 기반을 다진 조디 코머가 현재 BBC 아메리카에서 방영 중인 ‘킬링 이브’ 시즌 3에서 킬러 빌라넬로 활약하고 있는 것처럼. 강인함과 부드러움을 동시에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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