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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플]"금 캤는데 美가 막았다" 텔레그램도 뛰어든 新화폐전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텔레그램 창업자인 파벨 두로프가 암호화폐 '그램' 포기를 선언하며 미국을 비난했다. 사진 파벨 두로프 채널

텔레그램 창업자인 파벨 두로프가 암호화폐 '그램' 포기를 선언하며 미국을 비난했다. 사진 파벨 두로프 채널

“금광에서 금을 캐내 투자자에게 나눠주려는데, 미국 법원이 와서 막았다!” 비밀 메신저 텔레그램의 창업자가 암호화폐 사업을 접으며 이렇게 주장했다. 현금을 주고받지 않는 ‘언택트’ 시대, 가상화폐 주도권을 둘러싼 ‘신(新) 화폐전쟁’의 조짐이다.

무슨 일이야

텔레그램은 암호화폐 출시를 포기했고, 페이스북은 방식을 바꿔 출시할 계획을 밝혔다.
· 13일 텔레그램 창업자 파벨 두로프는 자신의 공식 텔레그램 채널에 “미국의 규제 때문에 블록체인 프로젝트 ‘톤’과 암호화폐 ‘그램’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텔레그램은 3년 전 암호화폐 출시를 선언, 총 17억 달러 이상의 투자를 유치했다. 그러나 그램의 운영 방식을 미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불허했고 미 법원이 이를 받아들였다. 두로프는 “글로벌 프로젝트가 미국 때문에 막혔다”며 반발했다. (파벨 두로프 채널)
· 지난달 페이스북은 암호화폐 ‘리브라’를 올해 안에 내놓겠다고 밝혔다. 기존에 계획한 ‘단일 디지털 화폐’가 아닌, 각국 화폐와 연동되는 여러 개 화폐의 방식으로 바꿨다. 지난해 미국 등 각국 금융 당국이 ‘페이스북의 통화 지배’를 우려해 규제 움직임을 보이자 내놓은 타협안이다.

이게 왜 중요해

‘현금 없는 세상’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한 걸음 더 다가왔다. 지폐와 동전을 대체할 가상화폐 주도권을 잡으려는 거대 기업과 정부, 나라와 나라 간 견제가 치열하다.
· 중국은 정부 차원에서 법정 디지털화폐(CBDC)를 내놓을 예정이다. 인민은행이 발행하고 관리하는 ‘디지털 위안화’다. 알리바바ㆍ텐센트 같은 중국 기업도 도입할 예정이다. 최근 외신에 중국 CBDC의 테스트 사진이 흘러 나오는 상황.
·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는 지난해 10월 미국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 청문회에서 “중국이 몇 달 내 디지털 화폐를 내놓을 것”이라며 “미국이 혁신하지 않으면 주도권을 잃는다”고 주장했다.

테크 기업은 왜 이걸 하고 싶나

전 세계인이 사용하는 메신저·SNS 같은 플랫폼에서 가상화폐로 송금·지불이 가능해지면 새로운 화폐 생태계가 만들어질 수 있다. 특히 통화 신뢰도가 낮거나 금융 인프라가 약한 신흥국에서 디지털 결제를 장악해 화폐를 대체할 수 있다.
· 텔레그램은 메신저 내 전자지갑에서 그램으로 결제·송금을 하려 했다. 텔레그램은 ‘회사는 전자지갑 비밀번호를 저장하지 않으니 잃어버리면 찾아줄 수 없다’고 미리 약관에 적었다. 텔레그램 메신저식 ‘완벽한 비밀’을 암호화폐에도 구현하려던 것.
· 페이스북의 메신저 왓츠앱은 인도에서 4억 명의 사용자를 보유하는 등 인도·동남아 시장을 장악했다. 지난해 인도 정부가 암호화폐를 견제하자 페이스북은 ‘인도에서 리브라를 출시하지 않겠다’고 한발 물러섰다. 그러나 지난달 인도 통신사에 7조원을 투자하며 ‘왓츠앱을 통한 전자 결제 서비스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가 지난해 10월 미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 청문회에 섰다. 사진 AP=연합뉴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가 지난해 10월 미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 청문회에 섰다. 사진 AP=연합뉴스

정부는 왜 경계하나

화폐는 권력이다. 디지털화폐가 보편화되면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의 금융·통화 정책이 힘을 잃을 수 있다. 암호화폐가 돈세탁이나 범죄조직의 자금 은닉에 악용될 우려도 있다.
· 리브라 같은 암호화폐로 자금이 모이면 시중 은행에서 돈이 빠져나가 지급 능력이 떨어질 수 있다. 신흥국에 금융위기나 외환위기가 발생할 경우, 자국 화폐에서 가상화폐로 갈아타는 ‘뱅크런’이 일어날 수도 있다. (한국은행 2019 보고서, ‘중앙은행 디지털화폐’)
· 지난해 7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암호화폐는 돈이 아니고 리브라는 신뢰성이 거의 없다”고 했다.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은 “암호화폐는 돈 세탁이나 테러리스트에 이용될 가능성 있다”고 주장했다.
· 페이스북은 최근 리브라의 방향을 바꿨다. 기존엔 비트코인처럼 누구나 운영에 참여하는 ‘개방형 블록체인’이었지만, 이젠 허가받은 업체만 참여하는 ‘폐쇄형’으로 바꿨다. 범죄에 악용될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서다.

CBDC는 암호화폐와 다른가

보통 가상화폐는 운영 방식에 따라 종류가 나뉘는데, CBDC는 방식보다는 주체가 다르다. 중앙은행이 법정 통화를 전자 형태로 발행해 가치를 보장하는 디지털화폐가 CBDC다.
· CBDC는 중앙은행이 강하게 통제할 수 있다. 보유 한도나 이자를 설정해 통화량을 조절할 수 있다. 거래 투명성도 현금보다 높다.
·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세계 중앙은행의 80%가 CBDC 관련 연구를 진행 중이다. 스웨덴같이 인구가 적거나 영토가 넓어 화폐 발행·유통 비용이 큰 나라들이 적극적이다.
· 국가의 CBDC건 민간의 암호화폐건, 기존 은행에는 위협이다. 당장 은행의 해외 송금 수수료 수익이 급격히 줄어들 수 있다.

나랑 상관 있나

국내에서도 코로나19 이후 전자지갑과 디지털 결제 사용이 급증했으며 가상화폐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네이버ㆍ카카오 같은 대형 IT 기업은 이미 금융에 진출했다.
· 한국은행은 지난달 ‘CBDC 도입 필요성이 높아지는 미래에 대응하려고 기술·법률 검토와 연구를 하고 있다’ 고 밝혔다. 한은 내 ‘디지털화폐 연구팀’도 새로 만들었다.
· 카카오의 블록체인 자회사 그라운드X는 다음 달(6월) 가상재산 플랫폼 ‘클립’을 내놓을 예정이다.

그 전엔 무슨 일이

· 페이스북은 지난해 11월 페이스북과 메신저에서 쓸 수 있는 전자 결제 ‘페이스북 페이’를 미국에서 내놓았다. ‘리브라와는 별개’라고 선언했다.
· 구글ㆍ애플은 기존 금융권과 협력해 금융·결제 시장에 우회 진입 중이다. 지난해 11월 구글은 씨티은행과 협력해 당좌계좌 서비스를 내놓겠다고 선언했고, 구글페이와 연동되는 직불카드를 곧 내놓을 것으로 알려졌다. 애플은 지난해 8월 골드만삭스와 손잡고 ‘애플카드’를 출시했다.

심서현 기자 shsh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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