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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플] 文 한국판 뉴딜 실체는…AI시대 '인형 눈알 붙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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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10일 오전 서울 용산 전자랜드에서 상인들이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3주년 대국민 특별연설을 시청하고 있다. 뉴스1

10일 오전 서울 용산 전자랜드에서 상인들이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3주년 대국민 특별연설을 시청하고 있다. 뉴스1

"한국판 뉴딜은 디지털 인프라를 구축하는 미래 선점투자입니다."

"데이터를 수집하고, 입력하고, 정리하고, 그것을 축적하고, 또 활용하는 방안을 만들고 이 작업에는 많은 수작업, 인력이 직접 해야 되는 작업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 일자리를 대폭 마련해서 지금의 고용 위기에도 대응하고, 그 다음에 디지털 경제에서 대한민국이 선도하는 나라가 되겠다라는 것이 우리가 지금 말하는 일자리 뉴딜, 한국판 뉴딜로서의 디지털 뉴딜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무슨 일이야?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일 취임3주년 대국민 담화에서 '한국판 뉴딜'을 발표했다. ▶데이터·5G 등 디지털 인프라 구축 ▶의료·교육·유통 등 비대면 산업 육성 ▶사회간접자본(SOC)의 디지털화가 한국판 뉴딜을 떠받치는 3개의 기둥.

· 문 대통령은 한국판·디지털 뉴딜을 통해 '일자리 창출'과 '디지털 선도국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고 했다. 콕 집어 강조한 것은 일자리. '데이터 수집, 입력, 정리, 축적'이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얘기다.

한국판 뉴딜 프로젝트.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한국판 뉴딜 프로젝트.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나랑 무슨 상관?

· 공공분야에서 기초 데이터 관련 일자리가 대규모로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지난 7일 '제2차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회의' 이후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은 "데이터 수집과 가공에 굉장히 많은 인력이 필요하다"며 "일자리 취업자가 줄어든 20~40대 청년층 일자리를 보완하는 측면에서 큰 기여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정부가 데이터 관련해 꼽은 분야는 자율주행, 스마트시티, 헬스케어, 금융정보, 생활환경, 재난 안전 등 6개 분야 46개 중점 데이터다.

정부 혁신성장 중점 데이터.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정부 혁신성장 중점 데이터.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무슨 일을 하는 건데?

· 공공분야 데이터 일자리는 일명 데이터 라벨링(Data Labeling)이다. 인공지능(AI)이 인식할 수 있는 형태로 인간이 데이터를 정리해서 컴퓨터에 입력하는 작업이다. 페트병 표면의 숫자와 문자를 식별해 입력하거나, 편의점의 음료 진열대를 사진으로 촬영하는 것 같은 일이다. 정부 관계자는 "디지털 지도를 만들기 위해 길거리 사진이 필요한데 사진 속 사람 얼굴을 모두 익명화하는 작업엔 인간의 손이 필요하다"고 예시를 들었다.

· 국내에선 IT 대기업이 사업 분야별로 '데이터 라벨링'을 직접 해왔다. 최근엔 데이터 전문 업체가 외주를 받아 수행하는 식으로 바뀌고 있다. 모빌리티 사업을 하는 업체의 '교통 빅데이터' 구축 사업을 라벨링 전문 업체가 수주하면, 이 업체가 건별로 일반인에게 아웃소싱하는 형태다.

· 빅데이터 업체 N사의 '데이터 라벨링' 채용공고에 따르면, 급여는 '도급'. 학력·경력은 무관하다. 작업 보수는 건별 20원, 월 작업 건수는 1만~3만건이다. 3만건을 하면 월 60만원을 받는다.

"한국판 뉴딜로 최적"이라는 입장

· 정부는 '정제된 생활 데이터'가 향후 AI 등 4차산업 발전을 위한 밑거름이 될 것이라 본다. AI 프로젝트 수행시 전체 소요시간의 80%가 데이터 수집·정제·주석 작업에 소비되고 있어, '데이터 인프라'를 구축하면 연구 효율이 높아지고 여러 산업에 활용될 것이라는 입장.

· 김학래 중앙대 문헌정보학과 교수도 "한국에선 즉각 활용이 가능한 일부 산업 데이터에 집중하다 보니, 해외에 비해 양질의 데이터를 확보한 산업이 제한적"이라며 "정부 주도로 과감히 투자한다면 일자리도 생기고, 장기적으로 미래 성장 동력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4차산업 시대의 '인형 눈알' 붙이기"라는 입장

· 데이터 라벨링이 단순 반복 작업이 많다는 점에서 프리캐리아트(프롤레타리아와 비정규직을 결합한 신조어, 불안정한 저임금 노동자)만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 월드이코노믹포럼(WEF)는 데이터라벨링을 "인공지능시대의 새로운 조립라인 노동"이라며 "저숙련 근로자, 개도국, 일자리를 구하기 힘든 이들에게 적합하다"고 했다. 실제 데이터라벨링 경험자 후기엔 "4차 산업혁명 시대 인형 눈알 붙이기"라는 댓글이 최다 공감을 받았다.

· 서울대 경제학부 김소영 교수는 "IT분야를 제대로 발전시키려면 고급 노동력이 필요한데, 데이터 라벨링 등 비숙련 분야가 단기 일자리 창출은 할 수 있겠지만 국가 성장력에 도움될지는 미지수"라며 "단기적 일자리 뉴딜과 중장기적 IT산업 발전은 구별해야 한다"고 했다.
반면, 김용범 기재부 1차관은 지난 7일 브리핑에서 "단순 일자리라기보다는 상당한 훈련이 된 사람들의 아주 괜찮은 일자리가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 정부 주도의 데이터 구축이 민간 시장과 중복될 가능성도 있다. 정부가 예로 든 전기·통신 요금 같은 비금융정보 기반 신용평가, 흩어진 개인정보를 모으는 마이데이터, AI 기반 상권 분석 등은 민간이 이미 활발히 투자하며 경쟁 중이다.

데이터라벨링 크라우드소싱 플랫폼 크라우드웍스에 올라온 최근 프로젝트 목록.

데이터라벨링 크라우드소싱 플랫폼 크라우드웍스에 올라온 최근 프로젝트 목록.

해외에서는?

· 코로나19 이후 '데이터라벨링'에 대한 관심이 높다. 미 브루킹스 연구소 "정부가 재택근무를 통해 보조금을 지불하는 형태로 데이터라벨링을 활용한다면 고용을 개선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 중국의 AI굴기의 배경도 데이터 라벨링이다. 중국은 AI기업들이제조업에서 밀려난 농민공을 데이터 라벨링에 투입, 데이터 인프라를 구축했다. 올해 중국정부의 직업분류(中华人民共和国职业分类大典) 최신판에 따르면 알리바바에서만 20만명 이상이 데이터 라벨링 업무를 하며, 2022년까지 500만명이 이 분야에서 일할 것으로 예상된다.

· 구글·페이스북·아마존 등 글로벌 IT기업은 인도·중국·아프리카의 저숙련·저임금 노동자를 통해 데이터 라벨링을 한다. 보수는 시간당 3~6달러 수준. 최근엔 데이터라벨링 자동화 기술이 개발돼, 이마저도 기술이 노동자를 대체하는 추세다.

앞으로는?

· 정부 주도 디지털 라벨링 사업으로 일자리 수십만개가 쏟아질 것으로 보인다. 국내 최대 데이터라벨링 업체 크라우드웍스의 경우 12만명이 데이터 등록·분류를 한다.

· 폴 로머 미국 뉴욕대 교수는 "일자리인 척하는 일자리는 인적자본을 파괴한다. 일에서 기술을 배워 또 다른 곳으로 옮겨갈 수 있는 일자리가 중요하다"며 "정부에서 일자리를 창출한다 하더라도 근로자의 생산성과 기술습득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2019년 '혁신성장, 한국경제가 가야 할 길' 세미나). 로머 교수는 기술혁신이 성장을 이끈다는 '내생적 성장이론'으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 정부는 12일 한국판 뉴딜 추진 태스크포스(TF) 킥오프 회의를 열었다. 다음달 초엔 세부추진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정원엽 기자 jung.wonyeo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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